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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니맨 시즌2, 정면돌파] 18. 저니맨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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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사진은 저니맨 사관학교의 웨이트트레이닝실 모습.


버티고 또 버티다

재정문제가 심각했다. 돈 들어올 곳이 없었다.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이하 저니맨 학교)에 2년 동안 지원을 해준다던 사업가가 부도로 인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렇다고 밑바닥에서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에게 많은 돈을 받을 수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돈 문제로 인해 평생에 한 번도 맞기 힘든 빨간딱지를 두 번이나 맞아봤다. 갑자기 들어 닥친 철거 팀이 학교를 부수기 일보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저니맨 학교를 포기한다는 생각을 품은 적이 없었다.

버티고 또 버텼다. 그저 매 순간 순간을 극복해나갔다. 선수들이 조금씩 늘면서 생긴 수입과 재능기부를 하며 약간의 수고비, 주변사람과 복지가의 지원으로 위기들을 헤쳐 나갔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회계를 맡아주는 친구는 “학교에서 말하는 경제학을 현실에서 본 유일한 케이스”다 라며 신기해한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 숫자로 풀지 못하는 걸 풀어나가는 것이 있어서 저니맨 학교와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누군가 물어본다. 지금까지 어떻게 저니맨 학교를 운영해왔냐고. 그럴 때마다 솔직히 난감하다.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저 그 순간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버티다가 여기까지 왔을뿐이다. 열심히 살다보면 목이 마를 때 가랑비가 내려 살만큼의 물을 주더라.

마지막 보루

저니맨 학교를 연 뒤 굳이 선수모집을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믿고 따라오라고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학교를 열기 전부터 함께하던 (민)경수와 (윤)동건이만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저니맨 학교의 존재를 알고 몇몇 선수들이 학교를 찾아온 것이다.

저니맨 학교를 찾아오는 선수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될 확률이 0%에 가까웠다는 것. 그들이 프로 진출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었다면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대체 무엇을 믿고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는 저니맨 학교를 찾겠는가? 중2, 중3 때 뒤늦게 야구를 시작하거나 프로에서 방출된 뒤 팀을 구하지 못한 선수들만 나를 찾아왔다.

난 그들에게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난 저니맨 학교가 마지막을 결정짓는 곳이 되길 바랐다. 프로선수로의 혹은 프로입단의 꿈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끝도 맺어주는 곳이 되려했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은 온 마음을 다해 꿈이 이뤄지도록,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은 꿈이 아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정리=차원석 기자 @Notimeover]

* 최익성
이름보다 ‘저니맨’이란 호칭으로 더 유명한 남자. 힘들고 외로웠던 저니맨 인생을 거름삼아 두 번째 인생을 ‘정면돌파’ 중이다. 현재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를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 쏟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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