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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또 돔 구장 건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잠실에 제대로 된 돔구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야구를 좋아하는 중학생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4,000억 원 줄게. 이 돈으로 돔 구장 하나를 만들래, 아니면 1,000억 원짜리 일반 야구장 4개를 만들래?” 답은 즉시 돌아왔다. 후자였다. 멋진 돔 구장이 있으면 미세 먼지, 비 걱정 없이 경기를 할 수 있으니 더 좋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우리나라에 야구장이 턱 없이 부족하잖아요. 그 돈으로 야구장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돔 구장은 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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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 돔구장.


내친 김에 또 다른 질문을 해보았다. 유럽 축구가 강한 이유는? 미국 야구가 강한 이유는? 미국 농구가 세계 최강인 이유는? 미국 골프가 강한 이유는? 학생의 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경기장이 많잖아요. 경기장이 많으니 선수들도 많아질 것이고, 선수가 많아지니 수준이 높아지잖아요.”

야구의 경우만 살펴보자. 미국에는 웬만한 중학교에 야구팀과 야구장이 있다. 고등학교 야구팀 수는 무려 1만 5,000개이다. 등록된 선수는 45만여 명. 대학에도 400여 개 팀에 1만 명이 넘는 선수가 뛰고 있다. 프로에도 수백 개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수 많은 선수들이 미래의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일본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4,000여 개의 고교팀을 비롯해 350개가 넘는 대학교 팀과 역시 350여개의 실업팀이 있다. 당연,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야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야구를 하고 싶어도 경기장이 턱 없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팀 수도 중학교는 40여개, 고교는 50여개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팀이 없으니 경기장이 있을 필요가 없다.

상황이 이럴진대, 돔 구장 건설에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미국의 경우 돔 구장은 대부분 날씨 때문에 건설되었다. 최초의 돔 구장인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은 더운 날씨와 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역시 태풍 등 날씨 때문에 돔 구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여름에 우천으로 경기가 순연되는 경우가 있으나, 날씨가 전체 일정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날씨가 문제라면, 경기 수를 줄이면 된다. 솔직히 현재의 팀 당 144경기는 너무 많다.

돔 구장 건설에는 비용도 너무 많이 든다. 적게는 4,000억 원에서 많게는 8,000억 원이 필요하다. 시설 유지비와 연간 100억 원이 소요된다. 이에 돔 구장 건설 찬성론자들은 돔 구장에서 야구와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음은 물론, 부대시설을 이용한 임대수입 등으로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도쿄돔은 이 같은 행사들을 거의 연중무휴로 개최하고, 호텔, 쇼핑몰, 놀이공원 등의 부대시설로 방문객을 유치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리가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수익성만 놓고 따지자면(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된다면) 돔 구장의 건설이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다만, 필자는 지금 돔 구장 건설의 찬반과 수익성을 논하는 게 아니다. 야구의 인적, 물적 인프라 구축이 더 시급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위 학생의 말처럼, 구장이 많아야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하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하게 되면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언급한 ‘제대로 된 돔구장’은 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서울에는 이미 고척동에 돔 구장이 건설되어 있다. 박 시장의 말대로라면, 고척동 돔구장은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고척동 돔구장에는 여러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또 하나의 돔구장을 건설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한 두 푼도 아닌 4,000억 원을 들여서 만든 돔 구장을 그냥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한국 야구는 이상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 팀 창단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정작 중요한 인적, 시설 인프라 구축은 등한시하고 있다. 겉 모양만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를 흉내 내는 일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수준 향상에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가지만, 결코 일본과 미국을 넘어설 수는 없다. 단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자축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한국 야구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돔 구장과 같은 외형적인 면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인적, 기본 시설 인프라 확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야구는 평생 미국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일부에서는 싱글A+로 평가하기도 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돔 구장 건설은 야구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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