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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스포츠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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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 박웅현의 책 '여덟 단어'.


# 박웅현 TBWA코리아 대표는 본업인 광고 외에도 강사로, 저자로 인기가 높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와 같은 그의 책은 청소년 및 성인들이 읽어도 참 좋다.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명 카피를 만든 사람이라고 간단히 소개하면 된다. 다음은 박웅현 대표가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밝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카피 탄생의 배경이다.
‘1997년 뉴욕 유학 시절에 첫 수업을 앞두고 어느 교실에 문이 열리더니 60대 백인 아저씨가 5권의 책을 들고 들어와 당연히 교수인 줄 알았는데, 강의를 들으러 온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편집장이었다. 조금 있다가 30대 동양인이 들어왔는데 강단에 서더니 본인을 ‘Professor Wang'이라고 소개했다. 30대 동양인이 그 수업의 담당 교수였던 것이다.’

# Age is nothing but a number. 좀 어색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를 직선적으로 영작하면 이쯤된다. 좀 고급스러운 표현으로는 어모털리티(amortality)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의 유럽 총괄편집장인 캐서린 모어가 만든 것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이라는 의미다. ‘영원히 살 수 없는(혹은 죽을 수밖에 없는)’이라는 뜻의 단어 모털(mortal)에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사 ‘어(A)’를 붙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새로운 현상을 뜻하니 ‘숫자에 불과한 나이’와 딱 맞아떨어진다. 참고로 ‘불멸’을 의미하는 임모털(immortal)과는 다른 의미이고,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신조어로 ‘어모털족’도 있다.

# 사실 ‘어모털리티’의 사례는 허다하다. 맥도널드 신화를 일군은 레이 크룩이 맥도널드 형제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 스타트를 끊은 것은 53세 때의 일이다. 조선 숙종 때 허묵은 65세의 늦은 나이에 출사해 84살에 우의정을 지냈다. 가깝게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이 그 유명한 ‘거북선 세일즈’를 한 것도 58세 때의 일이고, 출중한 외국어 능력으로 유명한 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은 50살이 넘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훈도 우리나이 마흔일곱에 등단했다. 이런 현상은 평균수명의 연장과 함께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난 12월 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 수명은 남자와 여자 각각 79.0년, 85.5년(평균 8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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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깎신' 최근 현역으로 복귀해 화제를 모은 김경아. 사진=월간탁구


# 스포츠는 어떨까? 건강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력이 상징인 만큼 스포츠는 그 자체로 젊음을 소재로 한다. 물론 건강을 위한 생활체육에서는 장노년층이 중요하지만, 전문영역 즉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10대부터 30대까지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평균 수명의 연장과 스포츠 과학의 발달에 따라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나이에 플레이어로 나서는 직업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두 아이의 엄마이자 서른아홉 살의 주부 김경아가 탁구선수로 복귀, 국내대회에서 소속팀(대한항공)을 정상으로 이끌며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앞서 ‘국민마라토너’ 이봉주는 마흔살까지 한국 최고의 마라토너로 최고의 자리를 지키다 은퇴했다. 또 지난 11월 21일에는 오십여덟 살로 환갑을 앞둔 이효필이 김종왕과 격투기 대결을 펼쳐 승리하기도 했다. ‘투혼의 복서’로 유명한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최용수는 마흔다섯을 앞두고 컴백을 준비 중이다.

# 외국은 더하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59)는 33세에 윔블던 단식에서 우승했고, 2006년 50세의 나이에 US오픈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 7월에는 세리나 윌리엄스가 윔블던 정상에 올라 33세 289일로 나브라틸로바의 메이저 대회 최고령 단식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프로복싱에서는 2014년 4월 버나드 홉킨스(미국)가 만 49세 3개월의 나이에 WBA라이트헤비급 획득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앞서 홉킨스가 2011년 5월 WBC 동급 챔피언에 오른 바 있고(만 46세 4개월), ‘할아버지 복서’로 유명한 조지 포먼(미국)은 헤비급에서 만 45세 10개월의 세계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심지어 TV <서프라이즈>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던 듀이 보젤라는 52세의 나이에 복서의 꿈을 이뤘고,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격려 전화를 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 이처럼 엘리트스포츠에서도 ‘나이 허물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논의를 조금 확장하면, 골프의 시니어투어(현 챔피언스투어, 미PGA는 1980년 창설)와 같은 장노년층을 위한 종목별 토너먼트도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100세 시대에, 그리고 내 나이가 이미 지긋한데 스포츠는 노상 ‘젊고 예쁜 것들의 경기’만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도 다양성 확보 원칙에 어긋난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주니어 대회는 있지만 시니어 대회는 없다. 어차피 경기력은 어리거나, 늙었거나 전성기에 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름의 ‘의미’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왕년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어쩌다 한 번 이벤트성 경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골프의 시니어투어나, 바둑의 시니어대회처럼 별도의 장을 마련하면 좋지 않을까?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만끽할 수 있고, ‘아, 저 나이에도 저렇게 건강하고, 멋진 플레이를 할 수 있구나’라는 귀감이 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8세에 늙고, 어떤 사람들은 90세에도 젊다. 시간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본 여성인 오노 요코(82)의 말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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