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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섭의 링사이드산책] ‘한국 중량급 최고의 별’ 박종팔
1980년대 중국 바둑의 1인자 네웨이핑 9단은 바둑이 늘려면 우선 자기돌을 버릴 줄 알아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생살과도 같은 자신의 돌을 버린다는 것은 정말 아까운 일인데도 말입니다. 초급자들은 돌을 살리는 데 열중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쓰지 못합니다. 돌을 버린다는 것은 과감한 결단과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와 전략적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돌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고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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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첫 대면할 때의 박종팔(왼쪽).



필자가 박종팔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7월 그가 친구 이효필과 함께 제 체육관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58년 개띠 동갑인 두 분은 당시 화제의 대결을 앞두고 필자가 운영하는 둔촌동 문성길복싱체육관을 찾았고 이때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인연의 서곡이 시작되었습니다.

박종팔 선배는 두 시간남짓 필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체인스모커답게 줄담배를 연신 뿜어댔고, 구수한 전라도사투리로 분위기를 돋구었죠. ‘이 분이 정말 결전을 앞둔 선수인가’ 싶을 정도로 태연해 보였습니다. 반면 이효필은 외관상 단단해 보였고 필자에게 단발마 같은 한마디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이, 조 코치 동물의 왕국을 왜 보여주는지 아는가?" 이에 제가 "글쎄요"라며 운을 띄우자 이효필은 “동물세계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생태계 원리가 인간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성이 단단한 무서운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이효필에게 졌지만 ‘대인’이 된 박종팔

당시 박종팔-이효필의 격투기 대결은 장안의 화제를 몰고올 만큼 쇼킹한 일이었는데, 더듬어 보니 한 가지 에피소드도 떠오릅니다. 바로 그 시합이 개최된 이유죠. 박종팔-황충재-이효필 이 세 명은 58년 개띠 삼총사인데 어느날 술자리에서 황충재가 두 선수를 상대로 취중에 바람을 잡았죠. 이것이 진짜 경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효필이 ‘신발 신은 로우킥’을 앞세워 박종팔을 쓰러뜨린 경기 후 박종팔은 크게 서운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크게 이해하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줬습니다.

며칠전 아는 지인으로부터 박종팔 챔프가 체육관을 정리함과 동시에 남양주시로 본거지를 옮겼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화들짝 놀라 곧바로 아내분인 이정희(56년생. 합천) 씨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에 남양주로 향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모든 것을 정리하고 불암산 기슭에 위치한 3,500평의 넓은 임야((남양주시 별내동, 건평 120평)를 매입했고, 그 곳에서 박종팔힐링캠핑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개장은 내년 중순쯤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황토방도 만들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야영도 즐기는 등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랍니다. 이 캠핑장에서 두 분이 노후를 함께 하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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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체육관 주최 생활체육대회에 참관한 박종팔(왼쪽)과 아마추어 심판위원 이용장 씨.



특히 박종팔은 이곳에 샌드백을 서너 개 매달아 복싱을 배우고 싶은 젊은 선수들에게 한달에 열흘정도 복싱 레슨도 할 계획입니다. 앞서 박종팔은 서울 장안동에 체육관을 차린 바 있습니다. 선수육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일을 추진했지만 현실적으로 우수한 선수가 되기 위해 등록하는 회원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의욕이 크게 꺾였죠. 박종팔 챔프는 이런 현실속에서 챔피언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마 시냇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며 고래잡이를 꿈꾸는 것 같은 환상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내 분이 곧바로 방향전환을 시도했고, 남은 여생을 힐링캠핑장에 건 것입니다.

박종팔 힐링캠핑장


복서 박종팔은 우리나라 복싱 중량급 역사에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스타입니다. 53전을 싸워 46승을 거두었고 그 중 39번은 KO승이었습니다. 5패를 당했는데 그 중 4번은 KO패였으니 지든 이기든 KO로 승패가 결정되는 일이 많아 팬들이 열광했죠. 박종팔은 신인왕-한국챔피언-동양챔피언-세계챔피언까지, 마치 미장이가 벽돌을 쌓듯 차곡차곡 올라가 최정상을 밟았습니다. 이는 한국선수로는 최초였습니다.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백인철이 야구로 말하면 저스트 미트(just meet) 타법으로 서서히 침몰시키는 슬로우 스타터형이라면, 박종팔은 공이 울리자마자 홈런타자처럼 풀스윙(full swing)으로 상대를 초반부터 쓰러뜨리는 파워히터였습니다. 39KO승 중 무려 27KO승이 5라운드 이내에 나왔을 정도로 호쾌한 펀치는 박챔프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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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덜랜드를 11라운드에서 쓰러뜨린 박종팔(왼쪽).



박종팔은 중량급 선수답지않게 유연한 몸놀림과 발군의 센스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국내복서 중 가장 정교하게 구사하는 레프트 보디블로는 ‘역대급’이었습니다. 이 주무기를 가지고 전무후무한 '동양타이틀 15차 방어 올(all) KO승'의 위대한 업적을 쌓았죠. 이어 1984년 머레이 서덜랜드라는 강타자를 상대로 IBF 슈퍼미들급 타이틀매치를 벌여 11라운드에 KO승을 거뒀습니다(세계챔피언 등극). 서덜랜드는 강타자 토마스 헌즈와의 경기에서도 판정까지 끌고갈 정도로 내구력이 단단했지만 박종팔의 레프트 보디블로 필살기에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박종팔은 이 타이틀을 8차까지 지켜낸 끝에 반납했고, 다시 WBA 슈퍼미들급 초대챔피언 결정전에서 멕시코의 가야르도를 2라운드 KO로 제압하며 투타임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박종팔은 2012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IBF 총회에서 ‘IBF 30년을 빛낸 복서’로 선정되어 특별상을 수상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반면 그 유명한 마빈 헤글러와의 타이틀매치가 무산된 것을 지금도 아쉬워했습니다. 헤글러와는 구두계약을 맺었고, 뉴욕까지 날아가 경기 전 링위에 올라가 다음 상대로 소개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투 타임 세계챔피언

그리고 가장 인상깊은 경기는 1986년 4월, 88전을 싸우는 동안 단 한차례도 다운 당하지 않은 미국의 비니 커토를 15라운드 KO승을 거두고 미국 원정사에 유일한 1승을 거둔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한국선수의 미국 원정경기 결과는 28전 1승 27패입니다. 그러니 박 챔프가 이 경기를 가슴에 단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경기에서 해프닝도 하나 발생했습니다. 6라운드가 끝난 직후 갑자기 스트리퍼가 비키니 차림으로 링위에 올라가 박종팔 앞에서 춤을 추는 쇼를 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당시 비니 커토가 나이트 클럽에서 지배인으로 일했던 모양인데, 이 여자는 수세에 몰린 직장 상사에게 반전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링에 올라가 추태를 부리는 촌극을 연출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기 때문에 이 광경을 기억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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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기슭에서 박종팔 문성길 챔프와 김충수 관장(왼쪽부터).



가장 가슴 아팠던 추억은 1991년 동아체육관을 인수하여 서서히 프로모터로 자리매김을 하던 중 1994년도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던 최재원의 세계타이틀 전초전이 권투계의 분열로 인해 당일 아침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취소된 것이라고 술회했습니다. 당시 박종팔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피해액만 3억 5,000만 원에 달했고, 분을 못 이긴 박종팔은 권투위원회사무실을 찾아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는 바람에 37일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박종팔은 프로모터사업을 정리하고 여러 차례 다른 사업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현역 시절 스승인 김현치가 “너는 정신 차리고 열심히 권투하면 돈팔이가 될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똥팔이가 될 것”이라고 자조섞인 농담을 내뱉곤 했는데, 박종팔은 한때 부동산만 27개를 소유할 정도로 진짜 돈팔이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돈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바퀴벌레(?)들이 몰려와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끊임없이 청탁을 했고, 이를 거절하지 못한 박종팔은 그 많던 부동산을 모두 날리고 결국은 똥팔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복싱계에서는 ‘박종팔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박종팔은 정말 순수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팔이와 똥팔이

이에 박종팔은 수락산에 올라가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지만, 2008년 아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인 부동산사업가 이정희 씨를 만났습니다. 수렁에 깊이 빠진 인생길에서 이 씨가 내려준 동앗줄을 잡고 다시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두 분은 비슷한 시기에 사별을 한 동병상련의 입장이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죠. 박종팔 인생에 딱 맞는 표현인 듯합니다.

저는 두 분에게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새로운 아내를 만난 박종팔은 불우한 환경 탓에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하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공부를 아내에게 한글 받침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신바람 나는 강의를 통해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살고 있으니 참 사람일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박종팔의 강의는 삶의 진솔한 모습을 포장없이 풀어놓기에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또한 박종팔은 방송해설가로도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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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평강공주로 불릴 만한 박종팔의 아내 이정희 씨.



예전에 박 챔프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술만 마실 줄 알았다면 욱 하는 성격에 나는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확실한 것은 박종팔이 길고긴 방황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지금의 아내와 재혼하면서부터입니다. 다시 말해 박종팔 인생은 한 여인으로 인해 거듭 태어난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박종팔은 노래방에 가면 왼손에는 마이크를 잡은 채 오른손을 펴서 다정하게 아내를 가리키며 1970년대 문주란의 히트곡 <꼭 필요합니다>를 부른다고 합니다. “꼭 나는 당신이 꼭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내 당신이 있어야 두려움이 없어요”라고 시작되는 노래를... 그리고 앵콜이 들어오면 가수 이수미의 노래에 나오는 '나는 니가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지'로 시작되는 <내곁에 있어주>라는 노래를 열창한다고 합니다.

세상을 정복한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정복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것 같습니다. 내년 여름쯤께 녹음이 우거진 불암산 기슭에서 박종팔-이정희 커플의 힐링캠프를 방문해,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때로 쉼 없이 바쁘게 달려온 일상에서 잠깐의 멈춤은 새로운 설계를 시도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나무가 ‘마디’라는 매듭을 통해 더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처럼 박종팔도 이러한 전환점을 통해 거듭 태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두 분이 운영하는 힐링캠프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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