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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의 50가지 비밀]내기 골프의 기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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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찰스 리가 그린 ‘대결투(The Grand Match)’. 올드 코스에서 벌어진 R&A 연례미팅에서의 투볼 포섬 대회.


흔히들 골프는 내기를 안 하면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내기에 아마추어나 프로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기에 장소의 차이도 없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내기 골프는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 사는 교포들도 숱하게 한다.

지역마다 특색은 있지만 내기는 다들 즐긴다. 시골인 남부 켄터키 주 한인들은 가볍게 홀 당 1달러짜리를 걸고 골프를 한다. 시카고에서는 전후반과 전체 18홀을 각각 5, 10달러씩 걸어 스트로크를 따져 저녁 값 정도를 만드는 낫소 게임을 많이 한다. LA는 홀마다 개인간 4명 모두에게 각각 내기를 하는데 좀더 황당하게는 더블 보기를 하면 그 전까지 땄던 모든 돈을 도로 토해놓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한국에 와보니 매 홀마다 일단 자기 스코어를 간직한 채 뽑기를 해서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내기를 많이 하고 있었다. 혹자는 단돈 1,000원이라도 일단 내기가 걸리면 마음 놓고 스윙도 못하고 움츠러든 플레이를 하니까 골프가 재미없어진다고도 한다.

기록에 나온 첫번째 내기 골프

내기 골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아마도 목동들이 600년 전 푸른 초원에서 나무로 돌을 휘둘렀을 때부터나 혹은 세인트 앤드루스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술 한 잔을 놓고 치던 때가 아니었을까? 인류 최초의 공식 내기 기록은 문헌상으로 500 년 전에 존재했다.

15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왕세자였던 제임스 4세는 골프를 무척 좋아했다. 그것도 절대 그냥 골프를 치지 않았다. 단 한 푼이라도 내기가 걸려야 했다. 그런데 그는 골프를 드러내놓고 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대 왕이던 할아버지 제임스 2세와 아버지인 제임스 3세가 대를 이어 골프 금지령을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2세가 전국에 골프 금지령을 내린 때가 1457년 이었다. 도대체 그 옛날 어두운 암흑 시절인 중세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라면 나라 전체에 골프 붐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병사들이 활쏘기 연습과 훈련을 게을리 하고, 오늘날의 풋볼인 퓨트볼(Fute-ball)과 고프(Goeff)에만 정신이 쏠려 있어 차후 이 두 가지 운동을 금한다’라는 스코틀랜드의 의회 문헌이 그것이었다. 병사들이 틈만 있으면 활 연습이나 창을 던지는 훈련을 하지 않고 골프를 더 치고 있으니 왕이 생각할 때는 당연한 칙령이었을 것이다.

남쪽 잉글랜드와의 수백 년 대치 상황이라는 시대에서 그나마 유일할 낙이었던 골프를 못 치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와중에서도 골프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국민들과 귀족들은 숨어서 몰래 골프를 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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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광이자 골프를 허락한 최초의 왕 제임스 4세.


선대왕들과는 달리 제임스 4세는 골프가 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귀족들이 몰래 치는 골프를 보고 ‘그까짓 것이 뭐 어렵기에’하면서 골프 스윙을 무시했다. ‘머리도 올리지 않은’ 그가 골프를 우습게보았던 것이다.

1488년 제임스 4세가 왕위에 오른 지 3년째 되던 1491년 어느 날, 그는 귀족들하고 내기를 했다. 건방진 자세로 그는 옆에 서 있던 캐디에게 드라이버를 달라고 했다. 어드레스 자세를 한 그는 멋진 자세로 전방을 힐끔 주시했다.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지만 거위 깃털로 만든 페더리 볼은 30야드 앞에 굴러 처박혔다. 무안해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는 다시 한 번 풀 스윙을 해보았다. 첫 번째 스윙보다 조금 멀리 나갔지만 역시 50야드 안쪽이었다. 함께 내기를 한 귀족들은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 키득키득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골프 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듣기로는 드라이버를 치면 평균 150야드에서 200야드는 족히 나간다고 했다. 은근히 화가 난 그는 골프채를 던져버리고 ‘귀족들에게 내기에서 진 돈을 지불하라’고 시중들에게 말하고는 머쓱해서 궁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스코틀랜드 왕실 문서에는 ‘제임스 4세가 내기 골프를 쳤고, 승부에서 진 뒤 3실링을 왕실 국고에서 지불했다’라고 공식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에 대한 분풀이는 아니었지만 그해 제임스 4세는 선대 왕들에 의해 만들어진 골프 금지령을 다시 한 번 재차 확인해야 했다.

훗날 그는 ‘2월 한 달 내내 에딘버러 골프장에서 골프만 쳤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내기와 골프를 무던히도 좋아했다. 왕세자 시절부터 몰래 골프를 치면서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골프채를 주문하곤 했다. 당시 골프채를 만드는 전문가는 따로 없었지만, 그는 물푸레나무 같은 재료를 가지고 전쟁에 쓰이는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의뢰하는 이른바 ‘왕세자 특별 주문판 골프채’를 만들곤 했다. 이들 장인들이 훗날 17세기부터 영국에서 골프채를 만드는 명인들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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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골프채와 장총을 든 작자 미상 그림. 17세기 초 발명된 플란드락 머스켓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는 롱노우즈에 페더리 가죽볼을 쓰던 시대였다.


골프광 제임스 4세 금지령을 해제하다


스코틀랜드 왕실 문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임스 4세는 퍼스 지역에서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골프클럽 세트를 주문하고 14실링을 지불했다.’ 제임스 4세에 의해 1502년 골프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골프는 대중이 즐길 뿐 아니라 왕과 귀족은 물론, 교회의 주교까지 즐기는 놀이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기는 액수의 크고 적음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있었다. 귀족이나 주교들은 큰 액수의 돈으로 내기를 거는 경우가 많았고, 일반인들은 빵이나 작은 규모의 물건을 내기로 걸기도 했다. 골프와 내기는 이 시기에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성행됐다.

그러나 제임스 4세는 금지령을 푼 후 불과 10년밖에 골프를 치지 못했다. 전쟁이 터진 때문이었다. 11년 만에 잉글랜드와의 평화 협정은 깨졌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손수 플로덴 전투에 출전했으나 전장에서 사망하고 만다.

광적일 정도로 골프를 사랑했던 제임스 4세는 골프 역사에서는 골프를 세상으로 나오게 한 왕이었던 동시에 현대인들이 내기를 걸고 골프를 치는 본보기를 보인 인물이기도 했다. 제임스 4세에 이어 제임스 5세가 즉위하면서 골프는 계속 유행됐고, 제임스 5세의 딸인 최초의 메리여왕 시절에 스코틀랜드의 골프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메리 여왕 역시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내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 여성 골퍼였다. 메리는 시녀들과 내기 골프를 친 뒤에 지면 가지고 있던 비싼 목걸이를 주기도 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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