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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겸의 MLB 클립] 최하위부터 지구 우승까지, 텍사스의 반전 스토리
시즌을 앞두고 텍사스는 휴스턴과 함께 지구 최하위 후보로 평가 받았다. 다르빗슈의 시즌 아웃과 홀랜드, 페레즈의 부상 이탈 등으로 선발진이 초토화된 것이 주요 배경이었다. 설상가상 시즌 초반 필더를 제외한 주축 타자들이 집단 슬럼프에 빠졌고, 불펜마저 흔들렸다. 텍사스의 첫 22경기 성적은 7승 15패로 최하위. 5월의 첫 날, 지구 선두와는 이미 9.5경기차까지 벌어져 있었다.

텍사스는 조금씩 분위기를 추슬러 나갔다. 닉 마르티네즈와 콜비 루이스등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선발진의 선전이 이어졌다.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노장 완디 로드리게스도 힘을 보탰다. 펠리츠 대신 톨레슨이 새 마무리로 등장해 자리를 잡았다. 추신수와 벨트레 등 주축 타자들도 조금씩 폼을 회복했다. 마틴을 제치고 중견수 자리를 꿰찬 드실즈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했다. 7연승 포함 5월에만 19승을 쓸어 담은 텍사스는 이내 5할 승률에 복귀했다.

하지만 대체 선발들은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불펜 역시 셰퍼스의 난조 속에, 켈라와 톨레슨을 제외하면 믿을맨이 턱 없이 부족했다. 살아나는 듯하던 벨트레는 슬라이딩 도중 손가락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됐고, 추신수도 6월 이후 다시 침묵에 빠졌다. 전반기 마지막 20경기에서 텍사스는 5승 15패에 그치며 5할 승률이 다시 무너졌다. 162경기의 장기 레이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텍사스의 선수층은 대권을 노리기엔 한 없이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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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한 텍사스 레인저스.


존 다니엘스

텍사스 우승의 일등 공신은 당연히 선수들이다. 시즌 막판 이해할 수 없는 투수 운영으로 많은 비난을 사기도 했으나, 어찌됐건 불과 +18점의 득실마진으로 지구 우승을 이끈 베니스터 감독의 공로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일인을 꼽자면, 단연 존 다니엘스 단장이다.

그는 그간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다니엘스가 2005년 단장직에 부임한 후 텍사스는 만년 약체 팀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며, 2010년부터 4년 연속 90승 시즌은 팀 창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단장 부임 후 그의 영입 성공작은 벨트레, 해밀턴, 크루즈를 비롯해 2010년 월드시리즈 멤버인 클리프 리, 콜비 루이스, 벤지 몰리나, 대런 올리버 그리고 2011년 월드시리즈 멤버인 나폴리, 마이크 아담스, 알렉시 오간도까지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다니엘스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챙겼다. 2007년 테세이라를 내주면서 영입한 앤드루스, 펠리츠, 해리슨의 유망주들은 텍사스 최고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2010-2011년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와중에도 주릭슨 프로파, 마틴 페레즈, 레오니스 마틴 부터 최근의 루그네드 오도어, 호르헤 알파로, 조이 갈로, 케오니 켈라까지 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니엘스의 입지는 전혀 흔들릴 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야구는 결국 순간순간의 결과론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감독뿐만 아니라 단장의 입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필더와 추신수의 영입은 실패작이 됐다. 뿐만 아니라 유례없는 부상 악령 속에 1985년 이후 최다인 95패를 당했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 속에 그가 남긴 오점도 하나 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해리슨에게 안긴 6년 계약은 실패로 귀결됐다. 앤드루스와 체결한 8년간 1억 2,000만 달러의 계약은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허리 수술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한 필더는 논외로 하더라도, 추신수와의 7년 계약도 다니엘스를 흔들고자 하는 언론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다르빗슈의 시즌 아웃에도 선발진 보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를 향한 성토가 줄을 잇기도 했다.

물론 정규시즌이 마무리 된 지금,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과연 다니엘스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이틀 앞둔 7월 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트레이드 뉴스가 전해졌다. 텍사스의 콜 해멀스 영입 소식이었다. 다니엘스의 의중은 크게 두 가지 심산으로 해석됐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림과 동시에 내년 시즌 돌아오는 다르빗슈와 강력한 원투펀치를 구축함으로서 향후 대권을 노리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텍사스는 지구 선두와 8경기의 격차를 보이고 있던 터. 이에 후자의 의견에 보다 힘이 실렸으나, 해멀스와 함께 디크먼을 데려오고 마이애미로부터 샘 다이슨을 영입하며 불펜 보강에 나선 점은 올 시즌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해멀스의 영입은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추신수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시즌 포기의 기로에 서 있던 선수들에게 새로운 동기 부여를 심어 준 것이다. 특급 에이스의 영입으로 구단 차원에서 선수들에게 올 시즌이 아직 끝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 된 것이다. 다니엘스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후에도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우타 거포의 갈증을 풀기 위해 나폴리를 영입했으며, 해밀턴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베나블, 스텁스 등 외야 자원을 대폭 영입하는 섬세함으로 베니스터 감독에게 선수기용의 폭을 넓혀줬다.

트레이드 데드라인 이후 다니엘스가 던진 승부수는 대부분 들어맞고 있다. 해멀스는 지구 우승이 걸린 최종전 완투승 포함 12경기에 나서 7승을 따냈으며, 팀은 그가 등판한 최근 10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디크먼과 다이슨의 영입은 해멀스에 못지 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 각각 필라델피아와 마이애미에서 건너온 그들은 동기부여의 힘을 보이고 있는 중으로, 텍사스가 9월 불펜 평균자책점에서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힘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했다. 나폴리는 이적 후 .295의 타율과 5홈런 10타점으로 다니엘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으며, 베나블과 스텁스는 경기 막판 수비 강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단장의 역할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으며, 올 시즌 텍사스의 반전 행보는 다시금 그 중요성을 확인해 준 시간이었다.

베테랑의 힘

새로 영입된 선수들의 힘도 중요하지만, 지구 우승이라는 열매는 결국 기존 선수들의 활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추신수와 벨트레는 텍사스의 역전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9월 4할 타율과 5할 출루율을 기록한 추신수의 반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며, 벨트레 역시 9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많은 29타점을 쓸어 담으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최근 다소 부진하고 기대만큼의 장타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필더는 시즌 내내 큰 기복 없이 팀 타선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마운드에선 콜비 루이스가 시즌 내내 노익장을 과시했다. 4.66의 평균자책점은 투고타저 시대에서 결코 인상적인 숫자는 아니며,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탓에 제구가 흔들리는 날에는 난타를 당하는 약점도 노출했다. 하지만 17승이라는 숫자는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그가 받은 풍족한 득점 지원을 물고 늘어지지만, 루이스는 17승 중 13승이 2실점 이하를 기록하고 따낸 승리였다. 특히 5월 이후 매달 3승 이상씩을 기록하는 등 시즌 내내 제 몫을 해낸 유일한 선발 자원이었으며, 35세의 나이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04.2이닝을 기록한 것도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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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3출루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디비전 우승을 이끈 추신수.


이 같은 베테랑들의 힘은 텍사스가 가진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텍사스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인 휴스턴과 차별화를 둘 수 있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중순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만난 추신수는 이 같은 베테랑들의 경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추신수는 "결국 베테랑들은 해 줄 때는 해주는 선수들이다. 필더와 벨트레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우리가 휴스턴보다 앞서는 것은 경험이다. 그 점을 잘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휴스턴과의 시리즈를 펼치고 있던 텍사스는 4연전 스윕에 성공하며 지구 선두에 등극했다. 5일(한국시간) 최종전인 162번째 경기에서야 우승을 확정지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4연전은 올 시즌 텍사스 우승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마지막 원 스트라이크

너무나도 유명한 2011 월드시리즈. 텍사스는 세인트루이스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9회말 마지막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겨 두고 데이비드 프리즈에서 동점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그리고 해밀턴의 홈런으로 리드를 잡은 10회에는, 다시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겨두고 랜스 버크만에게 동점 적시타를 내줬다. 이어진 11회말, 팍스 캐스터 조 벅의 ‘We will see you tomorrow night’이라는 멘트를 이끌어낸 프리즈의 끝내기 홈런으로 6차전을 내준 뒤 7차전에서도 허무하게 패하며 우승 트로피를 세인트루이스에 내줬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차례나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겨두고 우승에 실패한 것은 당시 월드시리즈 6차전의 텍사스가 처음이었다.

이듬해 텍사스는 와일드카드 단판승부에서 볼티모어에 패했다. 2013년엔 와일드카드 단판승부 진출을 위한 타이브레이커에서 템파베이에 무릎을 꿇었다. 우승의 적기를 놓치자 하락세가 시작됐고 지난해 최악의 참사로 팀의 침체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다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게 됐다.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은 분명 순탄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 야구에서 무서운 기세를 보인 캔자스시티나, 현재 최고의 전력으로 평가받는 디비전시리즈 상대 토론토 모두 텍사스가 결코 넘어서기 쉽지 않은 팀들이다. 만약 월드시리즈까지 간다고 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내셔널리그 팀들 모두는 텍사스와 비교해 훨씬 견고한 선발 로테이션을 자랑하는 팀들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텍사스의 2015시즌. 과연 그 마지막 종착역이 2011년 찾지 못한 마지막 원 스트라이크와 함께 마무리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헤럴드스포츠=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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