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많아도 ‘너무’ 많은 한화 이글스 감독
이미지중앙

미국 농구의 전설적인 명장인 래리 브라운 감독. 사진=SMU Mustangs 페이스북



그에게 팀을 맡기기만 하면 성적이 오른다. 그것도 모자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킨다. 우승도 시킨다.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오해하지 마시라. 한국 지도자가 아니라 미국 농구계 명장 래리 브라운(76)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미프로농구(NBA) ‘최악의 팀’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LA 클리퍼스를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며, 당시 약체였던 캐롤라이나, 덴버, 뉴저지, 필라델피아, 샬럿 등을 강호로 변신시켰다. 2004년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미대학농구(NCAA) 감독으로도 활약, 1988년 캔자스대를 우승시켜 대학과 프로에서 우승을 맛 본 유일한 감독이 됐다. 당연 많은 팀들이 그를 모시기 위해 시즌만 끝나면 야단법석을 벌였다.

브라운 감독의 활약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2012년 남감리대(SMU)로 자리를 옮겨20여 년간 침체에 빠져있던 팀을 부임 2년 만에 콘퍼런스 챔피언에 올려 놓는 한편, NCAA 토너먼트에도 진출시키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번엔 진짜 우리나라 얘기. 한국에도 브라운과 비슷한 감독이 있다. 그가 맡기만 하면 성적이 오른다. 포스트시즌 진출은 물론이고, 우승까지 시키기도 한다. 그 역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74)이 바로 그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태평양을 3위에 올려놓은 것을 비롯, 역시 약체였던 쌍방울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2002년 LG 감독으로 하위였던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는 저력도 보여주었다. 2007년에는 SK 감독이 되어 전년도 6위였던 팀을 일약 우승으로 이끈 뒤 2008년과 2010년에도 정상에 올려놓았다. 올 시즌에는 좀처럼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화 이글스를 맡아 팀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렸다(승률 기준). 그 역시 브라운 감독처럼 계약기간이 끝나기만 하면 항상 영입대상 1순위로 언론에 오르곤 했다.

이들 두 노(老) 감독의 공통점은 또 있다. 열정과 책임감이다. 선수들을 혹독하게훈련시키기로 유명하다. 이기기 위해 매 경기 최선을 다 한다. 따라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한다. 스타급 선수라 할지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없이 제외시킨다. 팀도 자주 바꾼다. 브라운은 프로에서만 10개 팀을 옮겨 다녔다. 김성근 감독 역시 7개 팀에서 수장을 지냈다. ‘저니맨’ 최익성을 능가한다.


이미지중앙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마치 신처럼 대접해주는 팬이 있는가 하면 그를 싫어하는 팬도 많다는 점 역시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다. 선수 기용과 훈련방식은 단골 공격용 메뉴인 점도 같다. 특히 안티팬들은 ‘혹사하는’ ‘재미 없는’ 등의 수식어를 쓰며 이들을 비판한다. 기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뚜렷하다.

올해 유별난 시련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비슷하다. 브라운 감독은 소속 팀 선수의 학업 성적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시달렸다. 미국에서는 대학 선수가 경기에 나가려면 매 학기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규정을 어긴 채 그 선수를 기용했다는 것. 이에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는 브라운 감독에게 2015-16 시즌 9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브라운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연 미국 언론들과 안티팬들은 연일 그를 비난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 역시 시즌 내내 안티 팬과 기자들로부터 팀 운영과 관련해 공격을 받았다. 성적이 괜찮을 때는 그런대로 조용했던 이들은 한화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융단폭격을 하고 있는 것. 그 동안 하위권 팀을 맡자마자 포스트시즌에 올려 놓았던 감독이었기에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자 그의 리더십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국민을 상대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어느 박사에 그를 비유하기도 한다. 그의 야구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까지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라운 감독의 경우, UCLA와 캔자스대 시절에도 각각 부정선수 기용과 돈과 관련된 문제로 징계를 받은 바 있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난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100% ‘유죄’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그 경우가 좀 다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삶의 여정을 꼼꼼히 살펴본 후에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단정적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그저 추정할 뿐이다. 김 감독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섣불리 그를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 운영에 관한 그의 신념은 일종의 ‘종교’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는 그의 신념대로 팀을 운영해 우승, 그것도 3번씩이나 정상에 올려놓지 않았던가. 그런 감독에게 경기 운영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마치 그에게 ‘개종’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김성근 감독의 경기 운영이 ‘모범 답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의 결정을 존중해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렇게 설명해 보자. 영어 단어 외우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깜지’로 외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학생에게 그것은 구시대 방법이니 기계를 이용해 외우라고 한들 효과가 있겠는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하나. 만년 공부 못하는 학생이 1등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면? 답은 간단하다. 노력밖에 더 있겠는가. 이에 혹자는 방법론을 들고 반론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법도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야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말이다.

필자는 김성근 감독을 비판 또는 비난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이 한화 감독이라면 지금의 선수들로 어떻게 경기를 할 것인가? 한화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최고의 감독들을 영입해보았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김 감독이 주어진 환경하에서 그의 신념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그리고 나름 성공했다.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끝까지 경합을 벌인 것은 평가할 만 하다. 우리는 그가 있어 올 시즌 행복했다고 말하는 많은 팬들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화에는 감독이 너무 많다. Sean1961@naver.com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