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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신인답지 않던' 롯데 안태경과의 유쾌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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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롯데 안태경.

2014년 8월 25일 르네상스 서울호텔. 야구팬들의 시선은 모두 이곳을 향해있었다. 2015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는 1라운드에서 투수 안태경을 지목한다. 2007년 화랑대기 우수투수상을 거머쥐었을 만큼 재능 있는 투수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고교졸업 후 미국에 진출했던 그가 가진 공백을 생각한다면, 높은 지명 순위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를 증명하듯, 롯데가 안태경을 지명한 직후 회의 장내는 술렁였다.

그리고 1년이 조금 더 지난 2015년 9월 1일. 안태경은 드디어 1군 콜업의 영광을 누린다. 퓨처스리그 성적이 좋았기 때문(7경기 2홀드 10.2이닝 평균자책점 1.69)이었다. 기쁨은 잠시. 단 한 번의 등판기회도 얻지 못한 안태경은 일주일 뒤인 7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가 되었다.

짧았던 1군 나들이. 안태경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보다는 희망을 봤다며 웃어넘긴다. <헤럴드스포츠>가 롯데 퓨처스 팀 홈구장이 위치한 상동에서 안태경을 만났다.

-최근 1군 콜업됐지만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물론 경기가 워낙 팽팽한 탓이었지만, 아쉬웠을 것 같다.
▲불만 전혀 없다. 전~혀 없다. 나도 불펜에서 경기를 보는데, 내가 등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 알고 있었다.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일주일 있는 동안 팀이 5연승까지 할 줄은 몰랐다. (웃음) 일반적으로 좋은 흐름인 팀도 일주일 중 4승 2패 내지 5승 1패 정도는 하지 않나? 지는 경기에 투입될 거라고 생각하며 항상 준비했다.

-처음 합류한 롯데 1군은 어땠나?
▲시즌 막바지 5위 싸움이 정말 치열하지 않나? 선배들부터 코칭스태프까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엄청나게 느껴졌다. 욕심들이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퓨처스 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있더라.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느꼈다.

-무엇인가?
▲바로 '나는 언제든 1군에 갈 수 있는 선수'라는 점이다. 코치님들께 여러 조언 들으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 용기, 그 자신감이 짧았던 1군행의 가장 큰 성과 같다. 자연스레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도 됐다.

-본격적으로 야구 이야기를 해보자. 올 시즌 퓨처스리그 기록이 화려하다. 8월 중순부터 7경기 10.2이닝을 소화했다. 특히 삼진 14개 잡는 동안 볼넷 2개에 그친 게 눈에 띈다.
▲사실 안태경에게는 늘 '제구력이 안 좋은 투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외부에서는 기록을 보고 나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제구는 투구 기술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 모두 작용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부분인가?
▲맞다. 흔히 ‘멘탈 붕괴’라고 하지 않는가? 고3때 평생 은사님으로 생각했던 감독님이 팀에서 나가게 되었다. 심적으로 흔들린 상태에서 미국에 가게 된 셈이다. 미국에서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었다. 운동 방식도 한국과는 아예 다르고. 어린 마음에 정신적 고통 때문에 힘들었다. ‘입스(YIPS)’에 대해 알고 있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야구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제구 난조를 겪는 증세) 아닌가?
▲맞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우니까 공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더라. 주위에서 입스를 겪으며 은퇴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두려움이 심해졌다. 물론 미국에서 신체 조건은 더욱 좋아졌다. 키도 크고 근육도 붙었으니까. 그러면 구속은 올라간다. 그럼 뭐하나.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는데. 내 생각에 피칭에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와 '볼을 던질 것 같은데?'하는 마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결과는 극과 극이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확신한다.

-그러던 안태경이 지금은 볼넷과 멀어졌다. 계기가 궁금하다.
▲팀에 합류한 뒤부터 지난 7월까지. 이용훈 코치님과 거의 매 순간 떨어지지 않았다. 투구폼부터 마인드까지, 안태경의 모든 것을 바꿔주셨다. 사실 원래 타고난 힘이 있는 편이라 투구 동작에서까지 힘을 싣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잡동작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잡동작이 생기면 제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자세를 간소화하기 위해 와인드업 대신 세트포지션으로 던졌다. 남들에 비해 신체적 조건이 좋은 점을 잘 이용했다.

-제구가 좋아지기 위해 구속을 줄이는 선수도 있던데.
▲최고구속은 152km/h까지 기록했다. 경기 중에는 보통 148km/h 전후해서 던진다. 제구를 잡기 위해 구속을 줄이지 않았다. 지금 자세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98마일(약 158km/h)까지 던졌었다. 하지만 그때는 군대에 가기 전이니 몸 좋을 때다. (웃음) 조금씩 그때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내년쯤 구속은 더 오를 것 같다.

-군대에서 몸이 나빠졌나?
▲몸을 많이 버렸다. 남들이 가지 않는, 철원 GOP에서 근무했다. 훈련이나 경계 근무 자체가 힘든 곳이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건 기본이다. 하루에 근무를 8시간씩 선다. 흔히 '군대에서 많은 걸 얻어왔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운동을 많이 못해서 마이너스 요소였다.

-야구가 그리웠을 것 같다.
▲맞다. 야구가 정말 간절했다. 2년 내내 야구만을 생각했다. '난 나가서 꼭 야구를 하겠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흔히 군대에서 '짬이 좀 차면'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나? 야구에 대한 고민만 했었다.

안태경은 인터뷰 내내 '야구가 그리웠다'며 고백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갈망만큼이나 원 없이 야구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팀 동료들 모두 좋은 사람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내는 그의 표정에는 순수한 미소가 가득 담겨있었다.

-미국진출 후 메이저리그 땅을 밟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KBO리그의 1군 무대도 밟지 못했고. 미국 마이너리그와 KBO 퓨처스리그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을까?
▲우리나라는 퓨처스 팀(2군)과 재활군(3군)이 전부다. 반면 미국은 마이너 레벨만 다섯 개가 넘는다(루키~트리플A). 선수 풀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KBO 퓨처스리그의 강점도 분명히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미국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야구에 대한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모인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런 만큼 가진 재능은 많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편은 아니다. KBO 퓨처스리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기본기 위주로 만들어진 선수들이다. 하드웨어가 부족하지만, 노력으로 만들어진 기본기가 그 단점을 메꾼다.

-올 시즌도 신인드래프트에서 외국 출신 선수들이 강세를 띄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실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안타깝다. 자신만의 원대한 꿈을 갖고 미국에 갔지만 빛을 못 보고 돌아온 거니까. 그러나 그런 선수들이 미국에서 배운 야구를 한국에서 맘껏 펼친다면 KBO리그 발전에 큰 역할할 것 같다.

-외모가 잘생겼다. 이게 야구에 도움이 되는지?
▲에이. 아니다. 롯데에는 이미 (김)대륙이도 있고, (김)원중이도 있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다.

-팬들 사이 '실물은 안태경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기자님 생각도 그렇다면, 그렇게 써달라. (웃음)

-알겠다. 안태경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다.
▲팬들이 내게 관심 가져주시는 건 느끼고 있다. 일단 해외파라는 기대가 큰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퓨처스 팀에서 성적이 좋았던 점도 그렇고. 또 1군에 올라와서 한 경기도 못 뛰고 내려갔기 때문에 호기심이 더 강해지셨을 것 같다. '쟤는 대체 뭐지?'하는. (웃음)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선수가 있다면?
▲아주 많다. 부산고, 경남고 출신 선수들은 다 안다고 보면 된다. 최근 같이 재활군에 있었던 원중이, (석)지형이 형이랑 친해졌다. 지금 원중이는 1군에 있고 나는 2군, 지형이 형은 재활군에 있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언젠가 1군에서 함께 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야구 선수 안태경'의 꿈이 궁금하다.
▲아직 최종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1년 단위로 세우기 때문이다. 올해는 '원하는 공 맘껏 던지는 것'과 '아프지 않는 것' 이 두 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이룬 것 같다. 내년에는 '1군에서 팀에 보탬 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특별히 원하는 보직은?
▲몸 상태가 선발보다는 마무리나 중간에 맞는 것 같다. 어느 보직이든 옮겨다니지 않고 한 역할만 맡고 싶다. 마무리면 마무리, 중간투수면 중간. 그 자리에서 믿을만한 선수가 되고 싶다. 예를 들어 내 역할이 마무리라면 '안태경 나왔네? 이 경기는 끝났다', 중간투수라면 '안태경 나왔네? 이번 이닝 무사히 넘어가겠다'하는 신뢰를 팬들과 선배, 코칭스태프들께 안겨드리고 싶다.

-안태경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이제는 조금 더 절실할 것 같다.
▲정작 야구를 하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다. 3년 가까이 쉬면서 내게 야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참 많이 느꼈다. 여태 야구로 인해 친구, 가족, 인생까지 만든 셈이다. 내가 야구를 잘해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다. 앞으로 야구를 더 잘하지 못하면 여태껏 쌓은 게 다 무너질 것 같다.

-1군 등판 0회에도 팬들의 기대가 크다. 한마디 부탁한다.
▲인터넷 기사 다 챙겨본다. (웃음) 아무래도 볼넷에 대한 염려가 많으시더라. 팬들 만족시키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내 이미지를 '볼 안 던지는 투수'로 바꿀 만큼 노력하고 있다.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 많이 예뻐해주셨으면 좋겠다.

신인 선수들을 인터뷰 할 때면 유독 더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베테랑 선수들에 비해 재담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태경은 달랐다. 미국 진출 경험 덕인지 던지는 질문마다 능수능란하게 답하며 기자를 당황시켰다. 이제 그가 마운드에서도 '신인답지 않은' 투구내용으로 팬들을 당황시키길 기대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실물은 안태경이더라. [헤럴드스포츠(김해 상동)=최익래 기자 @irchoi_17]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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