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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내 오른발이 아름다워요 - 주부 보디빌더 백은경 씨 이야기
#프롤로그. 취재를 하다 살짝 울컥했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이 많아진 까닭에 ‘감정팔이(사실 이런 표현은 참 고약하다)’에 약해진 것 아닐까? 애써 냉정하려고 기억을 되짚었는데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16년 전 당시 중앙대 1학년이던 농구선수 김주성(36)이 “저는 우리 엄마 아빠가 부끄럽지 않아요. 가서 인터뷰하시죠”라고 팔을 붙잡고 갈 때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흔 살 된 군산 아줌마의 달변에 목소리에 비음이 섞이고 말았다. “혼자 상상을 해요. 많은 관중 앞에 강사로 나가는 거예요. 정말 예쁜 드레스 입고, 멋진 힐을 신고요. 객석을 향해 ‘저 멋있죠?’라고 묻고, 제 얘기를 할 거에요. 그리고 한참 있다가 힐을 벗어 제 오른발을 보여드릴 겁니다. ‘저는 이 발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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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의 나이에 보디빌더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주부선수 백은경 씨.


#사고.
백은경 씨가 8살 때였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기 전이었는데 문구점에 가다가 동네 공장 앞에서 모래를 가득 실은 10톤 트럭에 치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세한 기억이 없지만 많이 다쳤고, 특히 오른발이 아팠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발의 앞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간 오른 다리의 끝이 이상했다.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졌지만 심한 절름발이가 됐고, 피부가 벗겨지면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붕대에 속의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자신의 오른발은 아예 보지를 않았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도 7년 동안은 남편에게 오른발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른발이 없는 삶. 오른발은 평생의 멍에였다. 얼굴이 예뻤지만 뒤뚱거리며 걸어야했고, 그것도 10분이 넘으면 벅찼다. 의족을 사용하면 통증이 심해 그냥 붕대로 감고 다녔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으니 만성적인 대사질환도 달고 살았다. 무엇보다 고작 발 한 쪽이 다를 뿐이었는데 남들의 시선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다. 미군방송에 패션쇼가 자주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 걸음걸이를 연습했다. 피나는 노력으로 많이 고쳤다. 그래도 발 자체는 숨길 수가 없기에 항상 치마는 롱스커트, 바지는 통이 큰 것만 입었다. 신발을 벗는 식당은 아예 가질 않았다. 또 발에 핸디캡이 있으니 외모에 더 신경 썼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 늘 스트레칭을 했다. 너무 뚱뚱해도, 너무 말라도 ‘발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스무 살의 나이에 자신의 오른발까지도 더없이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을 바꾼 보디빌딩. 2012년 4월이었다. 먼저 보디빌딩을 시작한 동갑내기 남편(김일두 씨)이 함께 하자고 권했다. 발도 성치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온몸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운동을 하느냐고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을 딴 남편이 틈이 날 때마다 동작을 가르쳐줬고, 모른 체 하고 따라하다 보니 조금씩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른발은 죽었던 신경이 살아나기까지 했다. 오른발 장애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운동을 그대로 따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공부를 하면서 운동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남편이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몸짱으로 거듭났다.

■ 백은경 씨가 밝힌 보디빌딩의 장점
-가족들이 자랑스러워 한다.
-웨이트를 시작한 후 생활에 활력이 넘친다.
-사람들이 나의 노력을 날아봐 준다.
-아픈 발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최대한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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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경 씨의 카카오톡 배경화면. 상태표시창에는 트레이너이자 남편인 김일두 씨의 이름이 적혀 있다.


#기적.
2013년 처음으로 정식 대회에 출전했다. 몸은 자신이 있었지만 발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경기 전 사회자에게 “발이 불편한데 이런 발로 무대에 서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 사회자는 발을 보여달라고 했고, 이어 발을 자신의 손에 올려놓으며 기도를 한 후 “소중한 발입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시라”고 격려했다. 첫 출전한 이 대회에서 백은경 씨는 52kg급에서 깜짝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후 백 씨는 더 이상 오른발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 스튜디오사진까지 찍었다. 30년 가까이 숨겨오던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운동도 잘 됐고, 성적도 보디빌딩계가 놀랄 정도로 경이적이었다. 미스터 전북 선발대회에서 2013년부터 올해까지 52kg급에서 3연패를 달성했고, 각종 대회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나오니 저도 신기했어요.” 백 씨는 지난 7월 인천 대회에서 발끝으로 강하게 지탱하는 포즈를 취하다 오른발 피부가 찢어졌다. 이렇게 고통이 따르는 대회출전을 꼭 해야 할까? “한 번 다치면 몇 달은 집에서만 운동해야 합니다. 피부가 잘 아물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계속 대회에 나갈 겁니다. 목적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데요.”

#꿈. 백은경 씨는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다. 군산 여성의 전화에 소속된 인권강사이기도 하다. 보디빌딩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행복해요. 경기에 나가고,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또 운동을 하면서 삶이 180도 달라졌어요. 운동하는 게 힘들지도 않아요. 전에는 10분 이상 걷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달리지만 못하지 오래 걷는 것도 가능해졌어요. 제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아이들도 많이 응원해요. 평생 제 오른발이 한이었던 부모님도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어요. 가슴에 맺힌 한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하셔요.”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바시’ 등의 프로그램에서 출연요청이 왔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2016년에 아시아대회 선발전을 겸한 미스터 코리아 대회가 있는데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무대에는 설 계획이다. 백 씨의 꿈은 인권강사의 경력을 살려 ‘토크 트레이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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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진. 다친 오른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스튜디오 사진이다. 더 이상 백은경 씨는 다친 발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에필로그.
백은경 씨는 운동을 잘하고, 또 장애가 있다는 걸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한 가지 메시지는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콤플렉스가 있을 때 그것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이다. 그러면 장애가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저는 이 발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앉아서 지낸 시간이 많은 까닭에 제가 힙이 좀 커요. 근데 이게 보디빌더로 제 매력 포인트이기도 해요. 결함을 장점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30년이나 감추고 살았던 발을 이제는 외모로 승부하는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내보이는 백 씨의 말인 까닭에 그 울림이 남다르다. 마흔살 군산 아줌마에게 한 수 배웠다. 다음은 백은경 ‘선수’의 주요 사진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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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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