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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니맨 최익성의 야구철학
최익성 대표는 갈 곳 없는 선수들과 야구 꿈나무들을 위한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오는 19일부터 본격적으로 개관한다. 선수 은퇴 이후 약 7년 동안 이 사업을 기획했고, 2012년 설립한 이후 3년 만에 최익성 대표의 야구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현역 시절 남들은 한 번 겪기 힘든 고생을 수 차례 겪어야 했던 최익성 대표의 애환이 담긴 사업이기도 하다.

이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까지 최익성 대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변변한 사무실과 훈련시설을 갖추지 않아 한강에서 모든 훈련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신사동, 장한평 등으로 사무실을 확장시켜면서 야구 사업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고 마침내 구의동에서 작지만 단독건물로 그 빛을 발하게 됐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오직 야구만을 바라봤던 최익성 대표를 만나 그가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야구철학을 들었다.

■ 이른 나이에 시작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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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 최익성과 '라이온킹' 이승엽. 둘은 선수시절 부터 매우 가까운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많은 야구 팬들이 알다시피 최익성 대표는 ‘저니맨’이라는 이미지 그대로 많은 팀을 겼었다. 그 누구보다도 스토리가 많은 야구인이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야구 배트를 잡은 까닭에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무렵까지 팀 훈련조차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개인훈련을 한 끝에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삼성 입단 이후에도 고생은 계속됐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주전 1번타자 자리를 꿰찼고, 20-20클럽을 달성하며 야구팬의 눈에 각인됐다. LG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최고의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쏘아 올린 역전 홈런포는 아직도 많은 야구팬들이 기억하는 명장면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야구지만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최익성 대표다.

최익성 대표는 “초등학교 때 벌써 자신의 인생을 야구에 올인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어차피 프로는 재능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에요. 재능만 있다면 중학교 때 시작해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단순히 이론만 내세우는 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최익성 대표는 이미 중학교 말미에 야구를 시작한 학생 3명을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시키는 쾌거를 맛봤다. 보통 선수들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 입문한다고 가정하면 약 4~5년의 격차를 따라잡은 것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과 절박함이 최익성 대표를 만나 꽃을 핀 것이다.

■ 야구는 팀만큼 개인이 중요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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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성은 선수시절 자신만의 폼을 고수하며 20-20클럽을 달성했다.

야구는 축구, 농구 등과 더불어 팀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9명의 선수가 모여 유기적인 조직력을 보여줄 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니맨의 생각은 달랐다. 최익성 대표는 “개인의 역량이 뒷받침 되어야 선수도 좋고, 팀도 좋다”며 뚜렷한 견해를 피력했다. 실력있는 선수를 마다할 팀은 없고, 개인이 있어야 팀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야구는 9대9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투수와 타자 간의 1대1 맞대결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역량이 발휘되지 않으면 팀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공을 발현할 수 없다. 최익성 대표는 한국야구가 너무 지나치게 팀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개개인의 능력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점에서 크게 안타까워했다.

이와 더불어 어렸을 적부터 개개인의 성향을 존중해주지 않고 일관된 폼을 요구하는 점 또한 한국야구의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최익성 대표는 선수 시절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했던 선수다. 그로 인해 팀을 옮길 때마다 타격 코치와의 사소한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익성 대표는 타격 코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폼을 고수하며 좋은 성과를 냈다. 1군 무대에 자주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출전할 때마다 한 방씩 터트려준 데에는 자신의 폼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다.

“양준혁 해설이 폼이 예뻐서 잘쳤나요? 아닙니다. 예쁜 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치는 폼이 예쁜 것입니다”

최익성 대표의 신념에 따라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에서의 트레이닝 방식도 개별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사람마다 타격을 할 때 편한 폼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세세한 부분만 고쳐주는 시스템이다.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추구하는 최익성 대표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통해 선수들을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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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성 대표의 첫 번째 작품인 민경수.

현재 최익성 대표가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가장 큰 일이 바로 갈 곳 없는 선수의 재기를 돕는 것이다. 수차례 1·2군을 오가면서 팀 내 입지가 탄탄하지 않아 뛸 팀을 찾아 떠나야 했던 자신의 아픈 과거가 밑바탕이 됐다. 후배들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고충을 대물림하기 싫은 것이다. 충분히 실력 있는 선수들이 여러 가지 다른 사정으로 야구를 그만 두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최익성 대표의 마음은 벌써 4명의 선수를 프로로 복귀시켰다. 훈련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 LG에서 방출된 민경수를 한강공원에서 트레이닝 시켜 SK로 입단시킨 것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다. 이후로 이원재, 윤동건, 최우석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프로로 복귀했다. 자칫 선수생명을 마감해야 했던 선수들에게는 한 줄기의 빛이 최익성 대표였던 것이다.

저니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큰 곳을 바라보고 있다. 최익성 대표는 “예술고등학교가 존재하는 것처럼 스포츠 전문 대안학교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선수들을 오랜 기간 지켜줄 수 있는 매니지먼트도 있어야 야구판이 조금 더 커질 수 있어요. 그 역할을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가 하고 싶습니다”고 꿈을 밝혔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로 정말 야구만 바라본 최익성 대표. 그의 제2의 삶을 준비하는 데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어려움도 따랐지만 차근차근 탄탄히 준비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기도 하다.

선수시절부터 소신을 지켜왔던 저니맨이 이제는 한국야구의 미래를 양성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자신이 원하다면 어디서든 하려고 하는 것이 ‘저니맨 정신’이라는 최익성 대표가 제2의 삶에서도 그 정신을 잘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헤럴드스포츠=임재원 기자 @jaewon7280]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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