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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timeover의 편파야구 거침없는 다이노스]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두 저니맨의 ‘데뷔전’
23일 경기결과: KIA 타이거즈 7-4 NC 다이노스

스포츠 세계엔 한 팀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 팀 저 팀을 전전하는 선수가 존재한다. 좋은 실력으로 많은 팀의 러브콜을 받는 선수도 있지만 대개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밀리는 애매한 위치의 선수가 많다. 그들의 이름은 ‘저니맨’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떠돌이’쯤 되겠다. 이날 두 떠돌이, 아니 두 ‘공룡가족’이 NC 데뷔전을 치렀다.

‘위너’를 꿈꾸는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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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와 선수단의 첫 만남. 이 사진을 본 팬들은 '예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본인은 잭 스패로우를 원한다지만... (출처: 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지난 5일 우리는 ‘개국공신’ 찰리와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했다. 100만 달러를 들인데다 슬로스타터 기질을 가진 찰리를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잘한다는 보장도 없었다(물론 NC만큼 외국인 선수를 잘 찾는 팀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NC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선발로테이션이 붕괴된 상황에서 ‘대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일 뒤 기다리던 소식이 날아왔다. 메이저리그 출신 우완투수 재크 스튜어트를 영입한다는 소식이었다. 젊고(28세), 안정적인 제구력과 높은 땅볼 비율을 가진 투수. 찰리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스튜어트의 야구인생은 다사다난했다. 초반은 너무 잘 풀렸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신시내티 레즈의 선택을 받은 그는 첫해 24경기 1승 4패 5세이브로 순조롭게 연착륙했다. 이듬해에는 원래 보직인 선발로 돌아와 놀라운 피칭을 보여주며 하이 싱글 A에서 트리플 A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이때 스튜어트가 첫 번째 이적을 경험한다. 그해 가을야구를 노리던 팀 사정에 따라 트레이드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었다. 호재가 된 트레이드였다. 다음해 미국의 권위 있는 야구 주간지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팀(토론토) 내 최고 유망주에 선정 되었고 2011년 감격스런 MLB 데뷔전도 치렀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를 맞는다.’ 야구계에서 많이 쓰는 격언이다. 이 격언은 스튜어트에게도 해당되었다.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86 피안타율 0.382로 부진하며 메이저리그 정착 기회를 놓쳤다. 토론토는 미련 없이 스튜어트를 삼각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고 이듬해에도 시즌 중 보스턴에 트레이드 되며 4년간 4팀의 유니폼을 입는 저니맨이 됐다. 이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LA 에인절스 트리플 A를 전전하다가 NC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NC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NC엔 그가 이끌어 낼 수많은 땅볼을 안전하게 처리해줄 탄탄한 리그 최정상 수비진(21일까지 DER 0.699 리그1위)과 경기당 5.78점(리그2위)을 지원하는 타선이 있었다. 거기에 7회까지 리드시 35경기 무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만들어낸 특급 불펜도 있었다. 막말로 ‘평균만 해도 본전은 챙기는 팀’이다. 토론토에서 한솥밥을 먹던 테임즈가 있어 팀 적응도 걱정 없었다. 사실 ‘저니맨’ 스튜어트는 NC라는 팀이 가진 ‘능력과 조건’보다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팀의 ‘정성’과 자신을 열렬히 반겨주는 팬의 ‘마음’에 더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에 스튜어트의 짤막한 영상메시지가 올라왔다. 단 3분짜리 영상이었지만 ‘에이스’ 느낌이 충만했다. “(한국에서)위너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승부근성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선수 말입니다. 항상 팀 승리에 기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해왔습니다. 선발투수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기를 완투한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많은 이닝을 최소실점으로 막아내 팀 승리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우승을 목표로 다이노스의 승리에 반드시 기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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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는 마운드 안에서도, 마운드 밖에서도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출처: 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메시지처럼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이종욱의 다이빙 캐치에 힘입어 첫 이닝을 삼자범퇴로 상큼하게 시작했다. 동료들은 무사히 첫 걸음을 뗀 스튜어트를 ‘완봉승’ 한 에이스 맞이하듯 열렬히 반겨주었다. 뜻밖의 환대를 받은 스튜어트는 긴장이 풀린 듯 미소를 지었고 3회 초까지 KIA타선을 퍼펙트로 막았다. 4회초 선두타자를 테임즈가 실책으로 내보내고 2사 후 필에게 안타를 맞으며 첫 안타와 실점을 동시에 허용했지만 조급함은 보이지 않았다. 5회를 삼자범퇴로 마치며 승리투수 요건을 채웠다.

6회는 다소 아쉬웠다. 신종길을 안타로, 나지완을 몸에 맞는 공으로 보내며 무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김주찬은 3루수 땅볼로 막았지만 필에게 또다시 적시타를 허용하며 추가점을 내준 뒤 김진성과 마운드를 물려줬다. 5⅓이닝 3피안타 3실점(2자책점). 마무리가 안 좋았지만 충분히 합격점 줄만한 데뷔전이었다. 속구가 최고 151km까지 찍혔고 제구력도 수준급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제구력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데뷔전임을 감안하면 심한정도는 아니었다. 기대했던 첫 승은 다음경기로 미뤘다. 김진성이 이범호에게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김진성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그아웃으로 돌아는 김진성에게 다가가 등을 두들겨줬다.

부족한 2%를 200% 채워줄 용덕한

NC의 전력을 평가할 때 항상 빠지지 않았던 약점 포지션이 있었다. 바로 포수였다. 초창기엔 베테랑 포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김태군이 크게 성장한 지금은 백업포수의 부재가 아쉬웠다. 올해는 경기 수가 늘어나고 휴식일이 사라졌기에 백업포수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많은 후보 중에 프로 2년차 박광열이 간택 받았지만 아직은 어린 유망주였다. 물론 어린선수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밀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업’을 노리는 NC는 수준급 백업포수(?)가 필요했다.

‘백업포수’. 애석하지만 용덕한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다. 프로선수로 12년을 보내는 동안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단 한 번도 없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투수리드와 블로킹은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도루 저지율도 통산 0.290에 달했다.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수비형 포수’. 하지만 허약한 공격력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통산 타율 0.224 7홈런 62타점에 불과했다.

용덕한과 비슷한 타격을 보여주던 김태군이 ‘무서운 9번타자’로 성장한 것처럼 용덕한도 꾸준히 기회를 받았더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라이벌이 너무 많았다. 신인 시절엔 국가대표 공격형 포수 홍성흔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홍성흔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갑작스러운 심리적 문제로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하는 상태)으로 인해 포수미트를 놓은 2008년 잠시 기회가 왔지만 부진한 타격 탓에 채상병에게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2010년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능력 있는 ‘백업포수’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 덕분일까? 강민호의 백업포수를 구하던 롯데 레이더망에 들며 김명성과 트레이드 되었다.

용덕한은 롯데에서 확고한 주전인 강민호의 자리는 뺐지 못했지만 백업포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특히 2012 포스트시즌 1차전에서 10회초 선두타자 2루타를 때린 뒤 결승득점을 올리고, 2차전엔 홍상삼을 상대로 역전 결승 솔로홈런을 쏘아 올리는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시즌 초반 꾸준히 주전으로 나섰지만 롯데에서 트레이드된 장성우에게 밀려 또다시 백업포수가 되었다. 여기에 LG에서 건너온 윤요섭까지 백업포수 자리를 위협했다.

용덕한이 3년 만에 3번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지난 21일. 은사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이 팀의 부족한 2%를 메울 선수로 용덕한을 택했다. 8년 동안 두산에서 직접 가르친 제자였기에 100% 확신이 담긴 선택이었다. 그 대가로 2차 드래프트로 영입한 오정복과 좌완스페셜리스트 홍성용을 아쉽게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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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비해 오랫동안 빛보지 못한 용덕한, NC에서 그동안의 설움을 다 풀어내길 바란다.(출처: NC다이노스 공식홈페이지)


이날 경기는 용덕한의 가치를 보여주는 한판이었다. 5-3으로 역전당한 6회말 1사 1,2루에서 김태군 타석이 돌아왔다. 평소라면 남은 이닝 수비를 생각해 김태군으로 밀고나갈 상황. 이날은 과감하게 조영훈을 대타로 내세웠다. 뒤를 받쳐줄 용덕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선수 운용의 족쇄 하나가 풀렸음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가슴 뛰게 하는 적시타도 쳐냈다. 8회말 선두타자 이종욱이 볼넷으로 걸어 나가 2루를 훔쳤다. KIA는 윤석민을 조기 투입했고 지석훈과 모창민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경기 흐름이 완전히 넘어갈 수 있는 위기였다. 하지만 우리에겐 용덕한이 있었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수많은 공룡가족들이 큰 환호성으로 그를 반겼다. 그는 3·유간을 뚫어버리는 시원한 적시타로 환호에 응했다. 스튜어트 못지않게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데뷔전’이란 단어에는 ‘처음’이라는 뜻과 동시에 설렘과 기대가 담겨있다. 하지만 ‘저니맨’에게 있어 데뷔전은 더 이상 섞이기 싶지 않은 단어다. 또 다시 데뷔전을 치른다는 말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팀 메이트를 사귀고, 팀 사인을 배우고, 연고지에 적응하는 과정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서글퍼진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보면서 기자는 스튜어트와 용덕한의 ‘또 다른 데뷔전’이 곧 ‘마지막 데뷔전’이 될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아니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웃으며 다시 만나고픈 찰리와 오정복, 홍성용의 앞날에도 축복을 빈다.

*Notimeover: 야구를 인생의 지표로 삼으며 전국을 제집처럼 돌아다는 혈기왕성한 야구쟁이. 사연 많은 선수들이 그려내는 패기 넘치는 야구에 반해 갈매기 생활을 청산하고 공룡군단에 몸과 마음을 옮겼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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