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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택 관전평] SK-동부, '농구=흐름의 스포츠'라는 평범한 진리
17일 경기 결과 : 서울 SK(28승 8패) 72-67 원주 동부(23승 1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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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서울 SK가 17일 원주 동부를 72-67로 꺾고 단독 선두 자리를 지켜냈다.


SK가 파죽의 6연승을 달리며 단독 1위를 고수했습니다. 올시즌 동부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SK로서는 기분 좋은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1-3라운드 SK는 동부만 만나면 득점, 리바운드, 야투성공률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팀 평균 기록에 크게 못미쳤습니다. 특히 동부전 평균득점(62점)은 팀 평균득점 75.3점보다 무려 13점 차이가 날 정도로 동부의 짠물 수비에 고전했었는데, 이날은 72득점을 뽑아내며 SK다운 공격력을 보여줬습니다.

'탈(脫)KBL' 김선형 - 'KBL특화형' 헤인즈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 SK는 동부의 지역방어를 빠른 템포의 공격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그 중심에는 역시 김선형이 있었습니다. 김선형은 근래 보기 힘든 '탈(脫)KBL' 유형의 선수입니다. 엄밀히 따졌을 때 포인트가드의 범주에 넣기 애매할 뿐더러 특정 포지션의 역할에 가둬놓기보다는 어느 정도 풀어줘야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직력을 강조하는 한국농구의 특성 때문에 이 선수를 어떤 틀에 끼워맞추려고 한다면 그의 특출난 기량은 발휘되지 못할 것입니다.
동시에 너무 풀어져 오버페이스가 되면 오히려 리딩가드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경기를 망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나, 김선형은 스스로 완급조절을 잘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40분 내내 자신이 공격을 이끌려는 모습이 보였다면, 최근에는 초중반에 템포를 조절하다 경기 막판 승부처에서만 해결사로 등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무서운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죠.

애런 헤인즈 역시 4쿼터에 고비마다 6득점을 해주면서 승리의 수훈갑이 됐습니다. 헤인즈는 참 '여우 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선수입니다. 벌써 7시즌째 KBL무대를 누비면서 그 어떤 베테랑보다도 영리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KBL 특화형 용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농구는 '흐름의 스포츠'
지난 15일 모비스를 꺾고 기세를 이어가려던 동부는 결국 초반 제공권의 우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경기를 내줬습니다. 흔히 4쿼터 막판 동부의 잇따른 턴오버가 승부처라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2쿼터 막판 동부가 SK의 지역방어를 극복하지 못하고 추격을 허용한 대목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SK가 수비를 갑작스레 대인방어에서 지역방어로 바꾸면서 동부의 득점을 묶어놓은 사이 SK 국내 선수들의 득점이 터졌고, 2쿼터 한때 11점까지 벌어졌던 점수차가 3점까지 좁혀진 것입니다.

지역방어는 그 자체의 견고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기 흐름을 바꾸는 승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무기입니다. 대인방어와 지역방어를 깨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수비가 바뀔 경우 상대팀 입장에서는 분명 공격 전개 방법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데, 이 대목에서 한 번 말리게 되면 주도권을 금세 빼앗기게 됩니다. 특히 요즘 프로농구에서 사용하는 지역방어는 전통적인 존 디펜스에 매치업의 요소를 가미하는 등 결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제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동부는 전반 막판의 흐름을 SK에 내줌으로서 후반전 양상을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농구가 축구, 배구 등 다른 스포츠에 비해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유는 시간의 제약을 촘촘하게 받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어떤 플레이를 하던 간에 쿼터당 10분과 24초라는 공격시간은 흘러갑니다. 촉박한 시간의 흐름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경기를 하다 미세한 실수 하나가 나오면 그게 경기 흐름을 한순간에 바꿔놓게 되는 것이죠.

4쿼터 막판 접전 상황에서 동부의 턴오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턴오버는 상대에게 쉬운 득점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동시에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연속적인 속공 찬스에서 득점이 나오면 선수들은 신이 납니다. 코트를 수바퀴째 뛰어다니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승부처에서의 실책은 선수들에게 '맥 풀린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듭니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처지게 하고 팀 분위기를 저해시켜 결국 팀 조직력 전체를 흔들리게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게 바로 턴오버라는 녀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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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은 스타일이 서로 다른 동부의 두 외국인선수 사이에서 완벽한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주성이 위대한 이유
동부의 김주성은 이날도 34분06초를 뛰며 17득점 10리바운드로 제몫을 해줬습니다. 매경기 30분 정도 코트를 지키며 동부산성의 기둥으로 건재히 남아있는 김주성입니다. 김주성이 대단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 선수가 스타일이 서로 다른 동부의 두 외국인선수 사이에서 완벽한 가교 역할을 해낸다는 점입니다.

김주성은 정통 포스트맨 사이먼이 뛸 때는 기동력 있는 4번으로서, 반면 상대적으로 외곽에서 플레이하는 비중이 높은 리처드슨과 호흡을 맞출 땐 리바운드 싸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당연히 외국인선수에 따라 매치업 상대 선수도 수시로 바뀌는데, 어떤 선수가 붙어도 김주성은 훌륭하게 수비를 해냅니다. 뛰어난 경기운영능력은 물론이고, 이처럼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김주성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김주성은 시즌 개막 전 "이제는 (윤)호영이 중심으로 팀이 재편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김주성 없는 동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시즌도 후반으로 향하면서 체력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 있지만 김영만 감독은 지혜롭게 대처해내고 있습니다.

김주성이 굳건히 골밑에서 버텨준 덕분에 윤호영은 3-4번 포지션(스몰포워드-파워포워드)을 넘나들면서 좀더 폭넓은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모비스전에서는 3점슛 3개를 터뜨리며 승리의 주역이 될 만큼 장신 슈터로서의 능력도 뽐내고 있는 윤호영인데요. 190cm만 넘어도 외곽에서 슛을 던지면 혼쭐이 났던 저의 선수 시절을 생각하면 세월이 참 많이 변하긴 한 것 같습니다.

윤호영은 프로 데뷔 초기만 해도 외곽슛을 그렇게 많이 던지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강점을 잘 찾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처럼 때로는 외곽에서, 때로는 트리플포스트의 한 축으로서 제몫을 충분히 해준다면 윤호영의 '유니크(unique)함'은 계속해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최근 물오른 3점슛 감각은 "아빠는 슛이 왜 이렇게 안 들어가?"라는 일곱 살 배기 아들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충격을 받아 연습한 결과라고 하는데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한참을 웃었습니다. 가족의 힘이 무섭긴 한가봅니다. [전 중앙대 감독] (정리=나혜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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