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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한의 사람人레슨](10)미소만큼 삶이 아름다운 골퍼-정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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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미(프로)는 불혹의 나이를 넘겼고 현재 대학교수(호서대학교)로 재직하고 있지만, 둘이 있을 때는 필자가 “일미야” 하고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서로 안 지도 오래됐다. 고향이 같아서 인지 내가 한창 선수생활을 하고, 정일미가 중고등학교-국가대표를 거치면서 계속 인연을 맺어왔다. 처음 만남은 정일미가 팬, 필자는 좋아하는 선수였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해서, 2000년 11월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열린 SBS 프로골프 최강전에서 나란히 남녀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그 때 이 대회는 남녀 대회를 동시에 개최했다). 팬과 프로선수로 만나 나중에 같은 대회에서 프로로 나란히 우승했으니 참 보기 드문 인연이라 할 수 있다.

글로 사람을 소개하다 보면 우리네 속성상 아무래도 자꾸 좋은 점만 강조하기 마련이다. 정일미와는 특별히 가까운 사이이니 칭찬보다는 듣기 싫은 소리부터 해야겠다. 지난 주 골퍼는 생각이 너무 많으면 좋지 않다는 레슨 포인트를 강조했다. 정일미가 좀 그런 스타일이었다. ‘스마일 퀸’으로 불릴 정도로 외모도 예쁘고, 노력도 많이 하고, 남을 배려하는 등 인성도 좋고, 골프 실력도 국내 1인자에 오를 정도로 빼어났다. 여기에 집안까지 좋으니 참 복이 많은 선수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생각이 너무 많아 사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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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필자(오른쪽)와 정일미가 SBS 프로골프최강전에서 남녀부 우승을 차지한 후 함께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미국진출은 아름다운 도전
1995년 프로 데뷔 후 KLPGA투어 통산 8승을 거두며 국내 여자골프를 평정한 정일미는 만 32세를 넘긴 200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도전했다. 일단 이것 자체가 ‘아름다운 도전’으로 부족함이 없다. 계속 한국에서 뛰거나 가까운 일본으로 갈 수 있었지만 결국 세계 최고 무대에 도전했던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등 후배들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까닭에 ‘잘해야 본전’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부담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선수 같았으면 ‘도전’보다는 ‘안주’를 택했을 것이다.

2003년이었을 것이다. 정일미 프로가 찾아와 자신의 미국 진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한국에서는 상금 1등도 했고, 이미 많은 것을 이뤘어요. 프로님, (박)세리가 미국 가서 잘하는데 저도 미국을 가야 하나요?”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내 대답은 확실했다.

“일미야, 미국으로 가라. 이유는 네가 한국 골프의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협회 일이나, 선수육성 등 한국골프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거야. 그렇다면 부담이 되고, 힘들다고 해도 더 큰 무대로 가서 선수생활을 직접 경험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상금왕을 3년을 한다 해도 미국에서의 경험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수많은 한국선수들이 미국 무대에 도전할 텐데 너도 그걸 직접 해봐야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다.”

“미국 가서 우승을 못하면 어떻게 하죠? 솔직히 그게 걱정이 됩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잘했는데…….”

“설령 우승을 못해도 세계 최고의 무대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결국 정일미는 Q스쿨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무려 7년이나 뛰었다. 이게 참 대단하다. 다른 선수들처럼 잊을 만하면 우승도 하고 그랬다면 7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최고였던 정일미는 우승 없이 7년을 미국에서 버텨냈다. 아마도 한국 상금왕 출신으로 미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선수는 정일미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절대 부끄러움이 아니다. 다른 선수는 전성기를 미국에서 보냈지만 정일미는 한국에서 전성기를 보낸 후 미국에 갔다. 한국에서는 최고였는데 미국에서는 새까만 후배들이 우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투어생활을 해 보고, 정상에 올랐던 선수라면 그 자괴감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알 것이다. 정일미는 그걸 7년이나 참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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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오른쪽)가 중학교 1학년일 때 당시 한국 최고의 여자골퍼였던 정일미와 찍은 기념 사진. 스마일퀸이라는 별명답게 정일미의 젊은 웃음이 참 보기 좋던 시절이다.


오히려 필자가 배운 자신감 특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다. 첫해 정일미는 미LPGA에서 완전히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대회에서 컷탈락을 당하는 등 정말 처참하리 만큼 성적이 나빴다. Q스쿨을 거쳐 다시 투어카드를 확보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할 무렵 미국에서 우연하게 정일미를 만났다. 필자도 미국에 아카데미가 있었고, 여기서 동계훈련을 하다가 조우한 것이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1년여 만에 골프장에서 얼굴을 봤는데 정일미는 필자를 보는 순간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면 보자 마자 울음부터 터뜨렸겠는가?

자세히 보니 그 예쁜 얼굴이 너무나 안돼 보였다. 한국 최고였는데 1년 동안 미국에서 최악의 시기를 보냈으니 마음은 물론 얼굴까지 상해 있었던 것이다. 딱 봐도 자신감 상실이 느껴졌다. 얼굴에 주근깨 등 이것저것 잡티까지 생겨 ‘나 정말 힘들어요’를 웅변하고 있었다.

차를 한 잔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비거리가 딸려서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 3대 교습가로 불리던 짐 매클레린 등 최고라는 사람들에게 레슨도 받아봤다고 했다. 하지만 짧은 비거리는 콘크리트 같은 콤플렉스가 돼 버렸고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거리에 대한 부담으로 더 많이 연습하고, 레슨도 받았지만 결국 생각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일미야, 나는 네가 지금보다는 훨씬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나도 시간이 있으니 여기서 한두 달 함께 운동하자. 그러면서 답을 찾아 보자꾸나.”

당시 정일미처럼 최악의 상태에서는 몇 가지 골프이론이나, 말 몇 마디로 해결할 수가 없다. 특히 잃어버린 자신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자연스럽고, 그리고 천천히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골프든 어느 종목이든, 아니 학업까지도 지도자(가르치는 사람)는 가장 먼저 선수(학생)의 마음을 잡아줘야 한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그 어떤 주옥같은 가르침도 효용이 떨어지는 법이다.

라운드를 해 보니 정일미는 기본적으로 쇼트게임과 퍼팅에는 문제가 없었다. 거리가 나지 않다 보니 자신감을 상실했고, 이로 인해 다른 플레이까지 다소 흔들린 것 뿐이었다. 스윙 자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자신감이 없으니 방향이 흔들리고, 그러다 보니 더 달래서 쳐야 하고 거리는 더욱 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거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꾀를 냈다. 정일미와 라운드를 할 때는 10달러짜리 내기를 했다. 그리고 드라이버 티샷을 할 때는 정일미보다 딱 10야드만 더 나가게 쳤다. 처음에는 눈치 빠른 정일미가 “아, 프로님, 저한테 맞춰 치시는 것 아니에요?”라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렇게 했다. “돈이 걸려 있는데 내가 일부러 살살 치겠느냐?”며 말이다.

몇 주 계속 그렇게 라운드를 돌았다. 그리고 슬슬 얘기를 했다. “일미, 너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나가네”, “내가 풀로 쳐도 계속해서 10야드밖에 차이가 나지 않네”, “너 이 정도로 치면서 왜 그렇게 거리 걱정을 하냐?”….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실제로 정일미의 거리가 늘었다는 점이다. 한 달이 지나니 필자가 풀로 쳐도 거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감이라는 게 중요하면서도 무서운 것이다. 그해(2005시즌) 정일미는 캐나다여자오픈 3위, 나인브릿지클래식 10위 등 전년도에 비해 현격하게 성적이 좋아졌다. 이는 2006년까지도 이어져 상금랭킹이 20위권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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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정일미의 모습.


골프에서도 자신감이 중요하다

정일미 편의 레슨 포인트는 바로 ‘자신감’이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자신의 스윙이나 샷에 대해 최소한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좋은 샷을 했을 때의 감각과 기억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거리가 짧다면 자신이 가장 멀리 친 샷의 스윙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를 신경 써야 한다. 프로선수가 될 정도라면 분명히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 기본적인 신체와 스윙 리듬이 있기에 짤순이가 장타자로 탈바꿈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투어를 뛰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비거리는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아마추어는 더 쉽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이걸 잘 살려야 한다.

사실 정일미하고 훈련하면서 필자도 배운 것이 크다. 선수에게 믿음을 주고, 자신감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 “거리가 좋다”는 내 말에 정일미는 처음에 “위로하려고 하시는 거짓말”이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장타를 펑펑 날려댔다. 굳이 수치로 따진다면 프로선수에 있어 70%는 실력이고, 30%는 자신감이다. 만날 밥 먹고 샷만 하는데 실력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는가? 골프를 멘탈 스포츠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퍼는 자신감을 잃으면 안 된다.

2014년 정일미는 만 42세를 넘기면서 여자 시니어투어에 출전해 첫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와 관련한 기사를 봤는데 이걸 보고 많이 놀랐다. 그리고 정일미가 많이 성장했구나, 정말 앞으로 한국 골프를 위해 많은 일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떤 프로는 내게 다가 오더니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던 네가 시니어투어에 나와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게 애처롭게 보이더라’고 했다. 나는 ‘그게 내 장점이다’고 답했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한다. 그러지 않을 거였다면 굳이 시니어투어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금 처해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것이 골프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대충’이란 없다.”

“아직도 교수보다는 프로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골프 선수에서 은퇴한 적은 없다. 대회 출전은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내 삶을 자극하고 활력을 준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다음이 내 공부고, 마지막이 투어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내가 1부 투어에 출전하면 자신들이 백을 메겠다고 벌써부터 난리다.”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살짝 필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일미,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다. 한국 최고의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가 7년 동안 우승 한 번 못하고 마음고생을 실컷 하고 왔는데 정일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애처롭게 보아도 최선을 다하는 게 자신의 장점이라는 정일미. 그가 좋은 교수, 좋은 지도자, 좋은 골프 행정가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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