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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무로후시와 이진택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에는 일본 최고의 스키선수였던 아버지와 역시 톱 스키어로 발돋움하는 그의 외동 딸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운동능력에 관여하는 ‘F패턴 유전자’ 연구, 그리고 딸이 사실 친 딸이 아니라는 의혹 등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히가시노 특유의 스릴러 소설이 된다. 본문 중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라는 대목이 나온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는 뻐꾸기 알에 빗대 ‘뻐꾸기 알(유전자)이 누구의 것인지와 그 뻐꾸기 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유전자 결정론? 환경 결정론? 참 오묘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철저한 유전자 결정론 신빙론자였을 게다. 육상 해머 던지기에서 1970년부터 1986년까지 아시안게임을 5연패했지만 세계무대에 나가면 입상이 벅찼다. 타고난 신체가 서구선수들을 따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게 신체의 ‘탈아입구(脫亞入歐)’. 달리 말하면 ‘종자개량론’이다. 내가 아니면 2세라도 꼭 세계를 제패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루마니아 여자 창던지기 대표 선수와 결혼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낳고는 이혼했다.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아들과 딸에게 걸음마를 딛기 전부터 해머를 가지고 놀게 만들었다. 그 아들이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2011년 대구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무로후시 고지다. 딸 유카도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대표를 지냈다. 이쯤이면 소설보다 더 극적인 실화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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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이진택-김미옥 높이뛰기 국가대표 부부의 가족사진. 가운데 왼쪽이 큰 아들 민우(9), 오른쪽이 둘째 민훈(7) 군이다. 오른쪽은 큰아들 민우가 호주에서 육상 원반던지기를 하는 모습.

#이진택 대구교대 교수와 김미옥 씨(초등학교 교사)는 높이뛰기 국가대표 커플이다. 태릉 선수촌에서 운동할 때 만나 2002년 결혼에 골인했다. 종목 특성상 외형이 ‘젓가락 부부’다. “결혼 후 3년 만에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지요. 너무 기뻤죠. 아내는 조심조심 산부인과에 다녔는데 갑자기 담당 의사가 ‘한 번 봐야겠다’고 전화를 해왔어요. 아내 몰래 제게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니 식겁하는 게 당연했죠. 상담하러 급히 병원에 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 의사분이 씩 웃더니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장난도 좀 심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뱃속 아이가 유난히 팔다리가 길고 말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담하려고 했는데 아빠 체형을 딱 보고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답니다.” 이진택 부부의 육아일기 첫 페이지에 기록될 내용이다.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심판으로 나온 이진택 교수를 만났다. 아내가 호주로 연수를 가면서 두 아들을 데려 갔는데 스포츠 천국인 호주에서 ‘높이뛰기 국대 2세’들이 작은 화제라고 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운동신경이 좋아 육상의 각종 세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육상 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인기 구기종목도 잘한다고 한다. 아직 종목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대를 이어 운동을 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무로후시 집안은 '오타쿠'처럼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진택 부부는 '운동 모범생'답게 자녀교육도 차분하고 내실을 추구한다. 이진택은 "아이들이 오는 12월 귀국하는데 어느 학교, 어느 운동부에 넣을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이쯤이면 유전자도 좋고, 환경도 최고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국가대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만 해도 가문의 영광, 동네의 자랑이다. 우리네처럼 금메달 못 땄다고 국민들에게 죄송해 하지 않는다. 어느 종목이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면 운동으로는 성공한 것이다. 17년째 한국기록(2m34)을 보유하고 있는 이진택과 같은 선수는 수십 년 만에 나온다. 운동선수 출신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스타 플레이어가 은퇴 후 힘들게 살면 2세를 낳고 가르치는 데도 버겁기 마련이다. 유전자가 중요하든, 환경이 중요하든 그래야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올 터이니 말이다. [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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