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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골프장의발견] 몽베르CC - 산중코스 ‘풍광지존’
18번 홀 티잉 구역에서 맞은편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바라보며, 내기에서 혼자 돈을 따고 있던 친구가 건들거리며 말했습니다.

“저게 망무봉이라구 했지? ‘궁예 샷’으로 저기로 쏴 볼게!”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드라이버 샷은 왼쪽으로 크게 휘어 사라졌습니다. 그는 궁예 흉내를 내서 한 쪽 눈을 감고 티샷 했다고 구시렁거렸지요. 그러나 두 눈을 뜨고 다시 친 잠정구도 똑같이 사라졌습니다.
그 홀은 내기의 ‘세 배 판’이었습니다. 파 4홀이었고 그는 아홉 타를 치며 ‘전사(戰死)’ 했습니다. 그날 그가 잃은 돈으로 저녁밥을 먹으며 우리는 “궁예의 혼이 응징했다”고 놀려댔고, 그 뒤로 그는 “몽베르에서는 겸손하라”며 입을 다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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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1번홀과 9번홀(몽베르 사진).


1. 산정호수와 몽베르

궁예가 통곡한 자리
이 골프장이 앉은 자리는 후 삼국 시대 ‘궁예(弓裔, ?~918)의 사연이 서린 곳입니다. 철원에 도읍을 정했던 궁예가 자신의 부하였던 훗날의 고려 태조 왕건과 싸우다 이곳으로 쫓겨 와 서글피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하는 ‘울음산’ - ‘울 명(鳴)’, ‘소리 성(聲)’ 자 ‘명성산(鳴聲山921.9m)’ 중턱입니다.
왕건의 군사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지 부하들을 시켜 망을 보게 했다는 ‘망무봉(望武峰)’ 기암괴석 봉우리가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굽어보는 자리이지요. 망무봉 바로 너머에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김일성이 별장을 지었다는 - 지금은 ‘국민관광지’로 불리는 ‘산정호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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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베르CC 주변 위성사진.


‘산정호수CC’ 라는 옛 이름
이 골프장의 원래 이름은 ‘산정호수CC’였지요. 1989년 ‘(주)동우’라는 회사가 경기도로부터 골프장 사업승인을 받아 ‘국내 1세대 골프코스 설계 거장’이라 불리는 고(故) 임상하 님(1930~2002)에게 설계를 맡깁니다.
이 땅이 “이곳에 과연 골프장이 들어서도 되는가” 싶을 만큼 신령스러운 아름다움이 넘치는 산중이었으므로, 임상하 님은 골프 코스를 앉히는 데 특별히 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지요. 노력 끝에 “전체 홀에서 망무봉을 되도록 많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의 코스 설계 루트 플랜(Route Plan)이 완성되었고 실시 설계와 토목 공사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업주들은 ‘회원권 분양’의 성공을 위해서는 좀 더 상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듯합니다. ‘디스몬드 뮤어헤드(Desmond Muirhead)’라는 세계적인 코스 디자이너에게 코스의 조형 설계를 따로 맡깁니다.
뮤어헤드는 미국과 일본 등에 100여 개의 코스를 설계한 세계 최상위 급의 ‘천재 설계가’로 유명하며 잭니클라우스가 골프코스 설계가로서 첫 발을 딛는데 도움을 준 이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PGA <메모리얼토너먼트>가 열리는 명문 <뮤어필드빌리지>는 잭니클라우스의 첫 설계 작품으로 뮤어헤드와 공동 작업한 것이랍니다.

‘몽베르’라는 명문코스로
임상하 님의 루트플랜 위에 뮤어헤드의 조형설계를 앉혀서 골프장 이름도 '롱레이크힐(Long Lake Hill)'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회원권 판매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사업자인 ‘(주)동우’는 황해도에서 월남한 ‘이북 출신’ 재력가 실향민들이 중심이 된 회사인데, 이곳에 세계골프대회를 유치하겠다는 등의 포부를 내세우며 화려한 모델하우스를 꾸미고 돈을 많이 드는 마케팅을 펼쳤으나 92년 부도를 맞게 되고, 18홀만 시범라운드 형태로 운영되다가 공매와 유찰 등의 곡절을 겪는 가운데 이 골프장은 방치되어 코스의 상당 부분이 유실되기에 이릅니다.

그러다가 2002년 ‘(주)원광’이 인수하여 '푸른산' 이라는 뜻을 담은 프랑스어 몽베르(Montvert)라는 이름으로 재정비하고, 2년간의 코스 리모델링을 통해 36홀을 완공하여 다시 문을 엽니다. 프랑스어로 산이나 언덕을 뜻하는 '몽(Mont)'과 푸르름을 뜻하는 '베르(Vert)'를 합친 이름이라지요. (주)원광은 환경처리업 전문회사로 소유주가 ‘에이스저축은행’의 대주주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 뒤 여러 골프 전문잡지로부터 ‘한국의 베스트 10 골프장’ 등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KPGA(한국남자프로골프협회) 정규대회를 유치하기도 하면서 명문 골프코스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2011년 이 골프장의 주인은 ‘대유그룹’으로 바뀝니다. 대유그룹은 카시트와 자동차 휠 등 자동차부품 회사로 성장하다가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를 인수하였고 최근에는 ‘스마트저축은행’을 운영하며 ‘대우전자’까지 품에 안은 기업 그룹으로 알려집니다. 이 골프장의 정식 명칭은 <대유몽베르컨트리클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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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스에 대하여

이 골프장은 경관의 아름다움과 코스 자체의 완성도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꾸준히 받아오고 있습니다. 골프 잡지사 등에서 선정하는 ‘한국 10대 코스’, ‘대한민국 베스트 코스’, ‘친환경 베스트 골프장’ 등의 평가에서 높은 순위로 평가되어 온 것이지요.

아름다운 사계(四季)
코스 평가기관들의 순위 평가가 절대적 객관성을 갖는지에 대해 이견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코스 경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거의 누구나 이견 없이 ‘최고’라 입을 모읍니다. 특히 ‘가을 단풍 속 몽베르’는 환상적인 골프장 풍광을 말하는 대명사처럼 알려지지요. 명성산의 수려한 영봉 줄기와 망무봉의 기이한 모습이 신령스런 기품을 자아내는 산세 속 낙락장송 군락 사이로 만산홍엽의 단풍이 울긋불긋 불타오르고, 그 아래 짙은 녹색으로 길을 낸 켄터키블루그래스 양잔디는 꿈길인 듯 환상적입니다.

가을뿐만이 아니지요. 봄에는 개나리, 벚꽃, 철쭉, 영산홍, 아리리스, 수국과 금계국, 홍단풍 등의 꽃이 차례대로 아우성 치고, 여름에는 녹음과 야생화가 농염한 기색을 뿜어내는 가운데 특히 장마 직후에는 계곡과 기암괴석 사이사이 곳곳이 폭포로 변하여 장관을 이룹니다. 골프장 측에선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도 홍보하던데 그에는 미치지 않더라도 골프만 하고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코스의 명칭도 계절의 이름으로 붙여진 듯합니다. 북코스는 쁘렝땅(Printemps 봄), 에떼(Ete 여름), 남코스는 오똔(Automne 가을), 이베르(Hiver 겨울)로 부릅니다. 북코스는 도전적이고 남성적인 취향이고 남코스는 편안하고 여성적인 느낌이지요.
코스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는 북코스가 높은 점수를 받고 있기에 이 탐사기에서는 북코스를 주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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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7번 '깜깜이홀'(몽베르CC 사진).


산중코스의 새로운 해석
2003년 ‘코스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설계와 공사를 맡은 곳은 ‘오렌지엔지니어링(대표 안문환)’이라는 골프코스 시공 전문회사였고, 그때 그 회사의 설계 책임자는 권동영 님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청평마이다스’, ‘블루원상주’, ‘힐드로사이’, ‘소노펠리체’ 등 아름다운 골프장들의 코스 설계자로, 이 골프장 최초 설계자 임상하 님의 수제자였다고 하지요. 임상하 님의 걸작으로 유명한 '화산CC' 등의 설계에서 실무를 맡았던 바 있고 이 코스의 루트플랜 작업에도 참여했었다 합니다.
오렌지엔지니어링은 산중 지형인 이 코스에 스코틀랜드 듄스 코스의 원형적 개념을 적용합니다. 권동영 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국내 코스들은 페어웨이가 평탄했습니다. 산의 원래 지형을 깎아내고 밋밋한 평지를 만든 거죠. 그런데 골프장의 원형이라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듄스코스들은 언뜻 평지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언듈레이션으로 굴곡져 있죠. 그런 것을 이 코스에 적용한 겁니다. 그런 언듈레이션이 오히려 산중지형과 더 조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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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 전략적, 샷 밸류 중심
디스몬드 뮤어헤드의 설계에 따라 조성된 코스의 조형들은 2002년 즈음에는 이미 쓸려 내려가서 되살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거의 다 새롭게 설계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 임상하 님의 루트플랜을 존중한 바탕 위에 더욱 도전적이고 전략적인 코스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당시 국내 코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샷 가치(Shot Value) 높은 코스’를 추구했다 하지요. (‘샷 가치’란 - 권동영 님이 쓴 글에 적힌 표현에 따르면 - ‘각 홀이 골퍼에게 얼마나 다양한 위험과 보상을 동시에 제공하는가. 샷의 길이와 정확성, 그리고 전략을 고르게 평가하는 변별성을 갖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플레이와 나쁜 플레이의 차이를 가려내는 지표라 하겠습니다.)

이 코스에서 어느 날 70대 타수를 기록한 골퍼가 며칠 뒤에 간신히 보기 플레이를 했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흔하게 떠돕니다. 매 홀마다 최소한 5개, 많으면 8개의 티잉 구역이 설치되어 있어서 같은 레귤러 티에서 플레이 했다고 해도 그날의 세팅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골퍼가 어떤 티를 선택했느냐에 따라서도 현격하게 다른 코스를 경험하게 되지요. 벙커 하나를 넘느냐 못 넘느냐, 공 떨어진 곳의 디딤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서도 선명하게 다른 결과가 나오니, 매 홀 매 샷마다의 플레이 전략이 중요하고 다음 샷을 염두에 둔 정밀한 플레이가 필요한 것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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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렝땅코스 7번홀(몽베르CC 사진).


홀마다 뚜렷이 다르다
84만여 평(2,272,000㎡)의 넓은 산중에 36홀을 넉넉히 앉혔기에 모든 홀에서 자연 그대로의 경관 특성이 드러납니다. 특히 북코스는 홀마다 경관의 조망이 다르고 공략의 방법도 다릅니다. 어떤 홀은 먼 능선을 바라보며 치고 어떤 홀은 장대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칩니다. 이번 홀이 왼쪽으로 휘는 샷을 치는 것이 유리하다면 다음에는 페이드 샷이 유리한 홀이 나오고, 길고 어려운 홀과 짧지만 유혹적인 홀이 드라마틱한 리듬으로 이어집니다. 그린 또한 샷의 정확성과 골퍼의 공간 지각력을 골고루 시험할 만큼 다양한 형태이지요.

‘북코스(쁘렝땅, 에떼)’에서는 남자 프로 정규 대회가 많이 열렸고 지금도 매년 4월에 ‘DB손해보험프로미오픈’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대회의 우승자 스코어는 4라운드 합계 15언더파 내외였는데, 러프를 좀 더 길러서 난도를 높일 수 있는 계절에 대회가 치러지지 않는 것이 약간은 아쉽습니다. 적어도 5월 중순 이후가 더 좋을 것이며, 경관의 특장점이 잘 드러나고 그린 스피드도 가장 빠르게 낼 수 있는 가을철에 열리면 더욱 좋겠지요. 이곳은 상대적으로 겨울이 길어 추운 지역인데 봄에 대회가 열리니 골프장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합니다.

3. 인상적인 홀들

북 코스(쁘렝땅, 에떼) 18홀은 자연지형을 살려 홀들을 앉힌 모양새라 명성산의 호쾌한 산세를 그대로 느끼며 플레이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남성적인 ‘스릴’과 통쾌함이 있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긴 홀, 넓은 페어웨이와 도전을 부르는 그린 등...... ‘강자와 대결하는 느낌’을 짜릿하게 맛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각 홀마다 풍경과 지형, 코스가 요구하는 전략 특성이 다르기에 홀 하나하나가 선명히 기억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 홀들 몇 개를 살펴봅니다.

기나긴 쁘렝땅 5번, 에떼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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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3번 파5홀.


쁘렝땅코스 5번 파4홀은 오르막 459야드로 길어서 웬만한 장타자가 아니고서는 2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핸디캡 순위 1번 홀이지요. 언덕 위 요새처럼 위치한 그린엔 있고 굴곡도 많아서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프로들도 애를 먹는 홀입니다.

에떼코스 3번 파5 홀
도 무려 673야드로 길어서 국내 최장 파5홀로 유명합니다. 프로들에게도 ‘투 온’은 어렵다는 군요. 직선형으로 긴 홀이지만 티잉 구역에서는 중간에 바위와 둔덕이 있어서 그린 주변이 보이지 않습니다. 상상력과 정확성, 장타력이 필요하지요. 기나긴 페어웨이 왼쪽으로 명성산 봉우리들을 비롯해서 구름처럼 펼쳐진 먼산 겹능선을 감상하며 걸어가는 풍취가 일품입니다. 티샷부터 두 번째 샷, 어프로치 샷까지 모두 잘 맞아야 하는 홀입니다.

‘전설의 홀’과 ‘솥뚜껑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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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6번 파3홀(몽베르CC 사진).


쁘렝땅코스 4번 파3홀은 213야드로 길어서 공략이 쉽지 않습니다. 언뜻 평범한 듯하지만 호쾌한 도전을 부르는 홀이지요. 어느 사업가가 이 홀에 매료되어 회원권을 10개나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몽베르CC에 전설로 남았다고 합니다.

에떼코스 6번 파3홀
은 ‘솥뚜껑 홀’이라고도 부르며 아마추어들이 가장 어려워 한다는 군요. 그린이 솥뚜껑처럼 솟아 있어 그린에 정확하게 올리지 못하면 경사를 타고 깊은 내리막으로 내려오기 일쑤입니다. 특히 ‘앞 핀’일 때 공략이 어렵지요. 이 홀에서 어려움을 겪고 난 다음의 7번 파4홀은 일명 ‘깜깜이 홀’로 불리는데, 비교적 짧아서 전 홀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욕심을 내기 쉽다는 군요. 코스 디자이너가 이러한 골퍼의 심리도 염두에 둔 듯합니다.

‘궁예의 활’과 에떼 5번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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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5번홀 전망대.


‘DB손해보험프로미오픈’ 대회 TV 중계에서 에떼코스 3,4,5번 홀을 ‘궁예의 활’이라고 부르더군요.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활 모양이라 중계진이 흥미를 돋우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합니다. PGA투어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아멘코너’처럼 극적인 구간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5번 홀은 이 골프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풍치가 뛰어난 곳이라 티잉 구역에 전망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지요. 티잉 구역에 섰을 때 오른 쪽에는 명성산의 웅장한 산세가, 뒤로는 망무봉의 기이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북 코스의 5개 홀을 내려다 볼 수 있고 먼 아래쪽엔 날개를 편 독수리 모양의 클럽하우스도 보입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오르막 파5홀이라서, 장타자들에게는 두 번 째 샷에서 ‘투 온’ 공략의 유혹과 오비(아웃오브바운즈)의 위협이 교차할 수도 있습니다. 도전에 대한 보상, 만용에 대한 응징이 함께 하는 홀입니다.

에떼 9번 파4홀 - 마지막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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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떼코스 9번홀.


이 글의 첫머리, 제 친구가 9타 친 사연을 말했던 홀입니다. 이 홀에서는 망무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티샷을 합니다. 망무봉에는 거북머리와 사람이 누워있는 형상, 두꺼비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모습 등이 다 들어 있다는데 제 눈은 그런 모습을 보지는 못하는 군요. 기묘한 신령스러움이 감도는 것은 누구에게나 느껴질 듯한 모습입니다.
왼쪽으로 다소 굽어 도는 459야드 도그레그 홀인데 그린에 해저드에 둘러싸여 있고 티잉 구역에서는 그린이 보이지 않아서 티잉 구역에서 페어웨이를 바라 볼 때의 느낌과 페어웨이에서 그린을 공략할 때의 느낌이 다릅니다. 마치 2개 홀을 플레이하는 듯한 느낌도 들지요.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보내는 것이 두 번째 샷을 짧게 남기는 최선의 공략법이지만, 그러다가 실수가 빚어지기 쉽기에 이 마지막 홀에서 승부가 뒤집히는 변수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4. 잔디, 조경, 관리, 시설

선명한 양잔디 코스
이 코스의 페어웨이와 러프 잔디는 켄터키블루그래스 양잔디입니다. 이 양잔디는 한국잔디라 불리는 ‘야지’나 ‘중지’에 비해 짧게 깎을 수 있고 잎 넓이가 좁습니다. 그래서 아이언 샷을 칠 때 풀잎이 채의 면과 볼 사이에 끼이지 않기 때문에 타감이 좋으나, 추운 지방이 고향인 '한지형' 품종이라 우리나라의 무더운 여름날씨를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나마 바닷가 골프장은 바닷바람 덕에 열대야가 오지 않기에 관리의 어려움이 덜하지만 내륙지방에서 이 잔디를 사용한 골프장들은 여름마다 잔디 관리에 ‘초비상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골프장은 강원도 철원과 인접한 경기도 포천군의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하여 여름 기온이 서울보다 5도 정도 낮은 편입니다. 그러니 양잔디를 관리하기가 그나마 나은 편이지요.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선명한 녹색을 띠는 양잔디는 이 골프장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명성산에 가을 단풍이 불타오를 때 푸른 양잔디에서 골프하는 느낌은 이 골프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환락지경’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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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소나무와 꽃나무들
약 86만평 골프장 면적에서 페어웨이를 제외한 숲이 차지하는 비율이 7할 정도라 합니다. 이 명성산 숲에 자생하는 소나무와 잣나무들은 크고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1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는 가운데 전나무와 구상나무 들도 간간이 보입니다. 그 풍성한 숲에 코스를 조성하면서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목련 등을 덧심었습니다. 배나무, 자두나무 등 유실수 교목들도 눈에 띄고 영산홍과 자산홍, 흰말채 등의 관목류들이 철마다 꽃을 피우는 가운데 패랭이, 양귀비 등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흐드러졌다가 사라지곤 하는군요.

우리나라에서 코스의 조경에 이곳보다 훨씬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골프장은 많지만, 이보다 경관이 수려한 산중 골프장은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린관리와 이종잔디의 위협
그린 빠르기를 관리하는 기준은 평소에는 스팀프미터 계측 기준 2.8미터 정도이고, 프로 대회 때는 3.2미터 정도라 합니다. 명문임을 내세우는 골프장 치고는 빠르지 않은 편이지요. 다만 산중 골프장 특유의 경사가 두드러지고 그린의 굴곡이 보이는 것보다 심하여, 실제로는 더 빠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한편 페어웨이의 켄터키블루그래스 잔디 중간 중간에 이종의 잔디들(주로 들잔디)이 섞여서 번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잔디 전문가인 노경식 님에게 여쭈어 보니 여름철 고온기에 켄터키블루그래스 잔디가 고사한 자리에 임시방편으로 들잔디를 심은 것 같다는데, 우리나라의 여름 기온이 갈수록 높아져서 들잔디가 점점 더 넓게 퍼지거나 제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군요.

앞으로 남코스는 퍼블릭으로 전환하면서 한국형 중지 잔디로 교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북코스는 양잔디를 유지한다 합니다. 두 코스가 각각의 특성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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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클럽하우스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 모양의 클럽하우스는 ‘알바트로스’ 새에서 모티브를 딴 모습이라고 합니다. 해발 345미터 높이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북코스는 해발 420미터까지 높은 쪽에 있고 남코스는 해발 210미터에 이르는 낮은 쪽에 있습니다. 뒤로는 명성산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에떼 코스 마지막 홀을 비롯한 여러 홀들을 조망하는 배치입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마지막 홀이 보여야 한다”는 원칙이 잘 지켜진 모습이군요. 명성산과 망무봉, 그리고 코스의 동선과 잘 어우러진 배치로 보입니다. 최근에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몽베르CC는 수도권에서 훨씬 가까워졌고 내장객도 많아진 모습입니다. 회원제 클럽 치고는 클럽하우스가 제법 붐비는 편입니다.

덧붙이는 감상 - 가슴 메이는 아름다움

이곳의 가을 풍경은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답습니다. 궁예가 피를 토하며 울자 산새들도 슬피 울고 산도 따라서 울었다는 전설 때문일까요. 선연히 불타오르는 단풍은 피울음이 섞인 것처럼 붉으며, 여름철 비올 때 온 산에 쏟아져 흐르는 폭포수는 명성산이 목놓아 우는 것 같기도 합니다. 궁예는 산속에 숨어 있다가 나와 결국 백성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알려지지만, 철원 사람들은 궁예가 죽창에 찔리면서도 말 위에 꼿꼿이 앉은 채 최후를 맞았다고 믿는다 합니다.
골프에서 영웅심은 자멸을 부르기 쉬우나, 이 골프장에 오면 꼿꼿이 전사하고픈 결기와 호승심이 일어나는 것은 저만의 과민함일까요. 아니면 이곳의 웅장한 지형이 마음의 역동을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이곳에서 라운드 하다 보면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이 되어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고 이곳의 자연을 차고 앉아 골프장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이런 곳에서 단 한번이라도 골프하는 이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싶은 안도감도 들고...... 공덕을 많이 쌓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또한 간단없이 밀려듭니다.

글과 사진 류석무 / 골프 스토리라이터
이 탐사기에 대한 의견은 글쓴이에게 이메일(smyou21@naver.com) 보내 주셔도 감사히 받아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컨텐츠는 계절마다 업데이트하여 재발행 되며 책으로도 발간될 예정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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