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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필] '사랑타령' 속에 묻혀버린 여성의 자아찾기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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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궁합' 스틸컷 (사진=CJ 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흔히 결혼은 사랑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과거로 거슬러갈수록 더욱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가부장제 하에서 살았던 조선 시대의 여성, 그 중에서도 뭐 하나 제멋대로 할 수 없는 왕가 처녀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영화 ‘궁합’은 바로 그런 여성, 순수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주변에 의해 이러저리 휩쓸려 올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이야기다. 또한 이런 여자의 인생에 드디어 사랑을 이뤄줄 한 줄기 빛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궁합’은 극심한 흉년이 지속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왕은 음양의 조화를 맞춰 가뭄을 해소하고자 딸 송화옹주(심은경)의 혼사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부마 간택을 명한다. 이에 역술가 서도윤(이승기)이 부마 후보들과 송화옹주의 궁합풀이를 맡게 된다. 남편감이 궁금한 송화옹주는 몰래 궐을 빠져나간 뒤 우연찮게 자꾸만 그와 마주친다. 야심가 윤시경과 역대급 카사노바 강휘, 그리고 효심 지극한 남치호까지. 영화는 서도윤을 통해 부마 후보들을 차례로 만나는 송화옹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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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궁합' 스틸컷 (사진=CJ 엔터테인먼트)



배우 심은경과 이승기의 투톱 케미는 ‘궁합’의 가장 큰 매력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두 사람의 첫 만남 이후 이어지는 해프닝들은 연신 큰 웃음을 유발한다. 궐을 나간 송화옹주가 남장을 하거나 책비로 신분을 위장한 채 남편감들을 만나는 장면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유쾌하다. 서도윤이 이런 그녀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에피소드들에서는 청춘 남녀 특유의 풋풋하면서도 미묘한 ‘썸’이 엿보여 달콤한 내음까지 풍긴다.

다만 사극 장르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궁합’의 만듦새는 다소 아쉽다. ‘국가적 위기’를 걸고 거창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송화옹주 개인의 ‘사랑타령’으로 흘러가며 용두사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픽션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란 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캐릭터 묘사 역시 감동보다는 실소를 자아내기 일쑤다. 송화옹주와 서도윤을 제외한 인물들이 별다른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 채 영화적 도구로만 그치는 건 연출과 편집의 패착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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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궁합' 스틸컷 (사진=CJ 엔터테인먼트)



‘궁합’은 궁에서 바깥세상으로, 그리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송화옹주의 로드무비이자 성장 스토리다. 이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이병헌이 연기한 하선의 여정을 연상시키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에서 영웅으로 변모하는 하선과 달리, ‘궁합’의 송화옹주는 끝끝내 큰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 영화 막바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그녀의 선택은 ‘궁합’이란 소재의 의미도 정의와 선에 대한 가치 판단도 어느 하나 구체적으로 드러내 주지 않는다.

‘관상’으로 시작된 역학 소재 사극영화의 바통을 넘겨받은 ‘궁합’은 결국 소재와 서사, 연출의 삼박자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이는 자본과 마케팅에 의해 기획된 대규모 영화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내는 데에 있어 때로는 여러 사람의 협업보다 한 사람의 창작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을 곱씹게 한다. ‘궁합’에 이어 개봉할 역학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명당’만큼은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2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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