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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 설경구 “늙어보인다는 말,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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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박스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한동안 뜸했다”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손에 꼽히는 설경구는 스스로에게 참 박했다. 영화계에서 강인한 인상을 남긴 ‘박하사탕’부터 3편의 시리즈를 탄생시킨 ‘공공의 적’, 1000만을 돌파한 ‘실미도’ ‘해운대’ 등 필모그래피만 봐도 많은 작품을 했지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다.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새롭고 싶다. 새로운 캐릭터를 남기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영화를 하면 그 캐릭터로 남는 게 많았으면 한다. 강철중처럼. 은근 만든다고 만든 사람인데 한동안 뜸했다.”

데뷔 25년, 나이는 벌써 지천명이다. 설경구는 수많은 작품 속에서 자신에게 큰 기억을 남긴 작품으론 처음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영화배우로 살게 해 준 ‘박하사탕’, 강철중이라는 역할 이름으로 나이트클럽 웨이터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 준 ‘공공의 적1’, 그리고 올해 개봉한 ‘불한당’을 꼽았다. 앞선 작품들이 필모그래피에 큼직한 획을 그었다면 ‘불한당’은 칸영화제에 초청받긴 했지만 흥행면에선 실패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설경구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연기로만 승부를 걸었던 설경구에게 직접 광고까지 제작해주는 아이돌급의 팬덤까지 생겼다. 설경구는 “아이돌에게 그런 광고를 해주는지도 몰랐다. 너무 과분하다”며 멋쩍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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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은 반복되는 모습 때문에 힘들었을 때 감독, 스태프들 등 젊은 사람들 덕분에 뭔가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그들의 집요한 면들이 자극을 줬다. 개봉하기 전에도 이 영화가 잘되든 못되든 ‘불한당’ 하면서 자극을 받고 도움을 받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 전단계라면 먼저 촬영한 ‘살인자의 기억법’이 시작이긴 하다. ‘불한당’은 그 연장전 같은 느낌이다.”

프로레슬러 역을 위해 급히 살을 찌우고 운동을 마스터했던 설경구다. 이외의 작품에서도 편안해 보이는 캐릭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 김병수 역할 역시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마, 쉬운 역할이 아니다. 어려운 길로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설경구는 “간만이었다”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 못했지만 한동안 비슷한 모습이 꽤 나왔다. 이번에 살도 정말 간만에 뺀 거다. 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캐릭터에 쉽게 접근했던 것 같다. 고민을 그렇게 많이 안 한 것 같고 캐릭터에 긴장감이 없었다. 그래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이 많았다. 이러다가 ‘한방에 훅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 책이 왔다. (선택에)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타이밍에 제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와줘서 고마웠다. 이 영화는 얼굴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살까 좀 더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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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읽고 나니 소설 안 읽고 못 참겠더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혔던 살인 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보다 시나리오를 먼저 읽어본 설경구는 참지 못하고 소설책을 들었다.

“원신연 감독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소설과 다를테니 안봤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근데 시나리오를 읽고 못 참겠더라. 바로 소설을 읽었다. 책이랑은 비슷한 듯 다른 캐릭터였다. 소설을 그대로 따와서 영화화했다면 볼거리가 없을 것 같았다. 제 캐릭터에도 정당성을 부여해준 것 같고 사람을 만들어줬다.”

터널 앞에선 김병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설경구의 눈빛만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몇 개월 전 개봉한 ‘불한당’과 비교해봤을 때 외형적인 변화도 상당해 오프닝부터 놀랄지도 모른다. 설경구는 김병수의 나이대를 소설보단 조금 낮게 설정하면서 부분 가발을 붙이고 분장으로 잡티를 만들어냈다. 특히 노인 설정을 위해 살을 쫙 빼서 피곤한 듯 섬뜩한 얼굴을 보여준다.

“특수 분장은 이 영화에 안 맞는 것 같았다. 분장을 하면 피부를 막아야 하는데 제 표정을 제대로 못 쓴다.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어서 초반부터 열외를 시켰다. 소설 속 건조한 모습을 가지고 오고 싶어서 일차원적으로 몸에서 기름기를 뺀 상태를 만들었다. 테스트 때 촬영 감독이 제 목을 보고 늙어보인다고 하는데 너무 반가웠다. 제가 원하는 대로 안 보여질까봐 강박이 심했다.”

영화 속 김병수는 딸 은희(설현)과 일상을 공유하고 이웃들 가운데에서 일반적으로 살아간다. 원작보다 조금 친절해진 설정이다. 설경구는 여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서 김병수를 만들어갔다.

“소설에서 나온대로 쾌감을 가지고 살인을 했다면 전 막연했을 것 같다. 근데 영화화 되면서 감정을 쓰는 게 다르지만 보편적인 사람처럼 그려서 나았다. 은희랑도 아우르고 태주의 존재를 끌어내는 부분이 있어 전형적일수도 있다. 상업 영화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병수에겐 딸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첫 살인 후 병수가 ‘가족이 행복해졌다’라며 정당화를 시키는데 그건 병수의 정당화지 일반적인 정당화는 아니다. 감독은 병수가 응원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전 응원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분명히 있는 인물, 내상은 있지 않을까 싶다.”

설경구에게 한동안 흥행작이 없었다. 개봉 시기와 맞물려 원작자인 김영하 작가가 예능에 출연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게 ‘살인자의 기억법’에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은 설경구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길 소망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밥 먹으면서, 술 마시면서 이야깃거리가 되면 좋겠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치매, 내 속에 있는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도 좋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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