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에 대한 범행은 ‘살인죄’
대법원 |
[헤럴드경제(광주)=황성철 기자] 4억원 상당의 투자 사기를 당하자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두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친모에게 상고심에서도 원심대로 중형이 확정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14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는 지난해 3월 9일 오전 2시쯤 승용차 안에서 큰 딸(당시 24세)과 작은 딸(당시 17세)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2월 20년간 알고 지낸 지인 박모씨로부터 4억원 상당의 투자금 사기를 당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딸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범행 당일 광주 서구에 있는 자택에서 남편이 쓰던 넥타이를 챙겨 두 딸과 함께 평소 자주 놀러 다니던 전남 담양으로 큰 딸이 운전해 이동했다.
이씨는 죽녹원 부근 도로를 주행 중인 승용차 안 뒷좌석에서 보조석에 앉은 작은 딸의 목에 넥타이를 걸고 잡아당겨 숨지게 했다.
10분 뒤 한 빈터에 차를 주차하게 한 뒤 운전석에 앉은 큰 딸에게도 넥타이를 이용해 목을 졸라 사망케 했다.
두 딸을 살해한 이씨 역시 극단적 선택으로 자해했지만 수개월간 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졌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돼 전재산을 잃어버렸다는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피해자들을 더 이상 책임지기 어렵다는 절망감에 이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피해자들의 나이가 24세, 17세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성인이거나 성인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나갈 기회를 박탈한 채 생을 마감하도록 한 행동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점,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딸들에 대한 사랑을 표하는 등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점, 남편·친척·지인들이 수차례 선처를 탄원하는 등 가족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며 “이씨에게 두 딸에 대한 살인죄를 인정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는 특히 승낙살인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형법상 승낙살인죄는 다른 사람의 승낙을 받아 살해한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규정된 일반 살인죄보다 상대적으로 법에 정해진 형량 범위가 낮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징역 12년을 선고하면서도 세부 혐의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살해 전후 정황에 주목, 1심과 달리 사건 당시 24세였던 큰 딸 살해 혐의 부분에 대해 살인죄가 아닌 승낙살인죄를 인정했다.
이씨의 검찰 진술 내용을 보면, 큰 딸은 3월 초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자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살해 장소로 차를 운전한 것도 큰 딸이었고, 이씨가 살해 직전 “너도 세상에 미련 없지?”라고 묻자 “응”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큰 딸은 차량에 타기 전부터 죽음을 결심하고 있었다”며 “동생이 사망하는 과정에서나 본인이 죽기 전까지 모친과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등 급격한 감정의 동요를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큰 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갖췄다”고 비춰볼 때 승낙살인죄의 요건인 ‘자유의사에 따른 진지하고 종국적인 승낙’이 충족됐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인 딸에게서 일종의 동의를 받았다는 취지다.
다만 작은 딸에 대한 살해 혐의 부분은 “살해를 진지하고 종국적으로 승낙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1심과 같이 살인죄를 인정했다.
작은 딸의 경우 사건 직전에야 범행 계획을 알게 됐고, 오히려 엄마의 살해 행위 및 극단 선택을 거부하는 취지의 말을 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미성년자로서 엄마와 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던 딸이 저항을 포기했을 뿐 살해당하는 것을 승낙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와 검사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며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승낙살인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또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들과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및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