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마련 지적에도 대비 제대로 못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5일 오후 버스편으로 전북 부안군 잼버리장을 떠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부안)=황성철 기자]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파행한 것을 두고 대형 국제행사에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가 없었던 것이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7년 8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최지로 새만금이 선정된 후, 무려 6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는데도 대회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는 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특히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집행을 맡은 전라북도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3개 부처 공동위원장 체제 탓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
5일 정부에 따르면 세계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은 총 5명인데, 이 가운데 3명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한 부처에서 총괄조직위원장을 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는데, 세 명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다 보니 누구도 나서서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돼버렸다.
특히 여가부는 2020년 7월 잼버리 조직위가 출범했을 때부터 정부 부처 자격으로 조직위원장을 맡아온 만큼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잼버리 조직위 최창행 사무총장도 2020년까지 여가부 정책기획관을 지냈다.
행안부 장관, 문체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는 지난 2월 말 공동위원장으로 추가 선임됐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정부 입장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동안 주로 여가부와 전북도가 주축이 돼서 추진했다”면서 “앞으로는 중앙정부가 직접 선제적으로 나서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5일 전북 부안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장 프레스룸에서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 관련 정부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덕수 국무총리도 “앞으로 중앙정부가 잼버리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기본적으로 세계잼버리가 민간 행사라는 입장을 취해 와 너무 뒤늦은 결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조직위 사무국에도 부처 파견 공무원보다 민간인이 많다.
그러나 국가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행사인 데다가, 예산이 1000억원가량 투입됐다는 점에서 중앙정부가 진작에 책임을 지고 전면에 나서야 했다는 지적이다.
행안부도 국가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라는 점에서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아쉬웠다는 여론이다.
◇ ‘폭염·폭우’ 우려 있었지만 묵살…여가부·전북도 책임 커”
앞서 잼버리를 새만금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정치권과 시민단체 측에서 꾸준히 제기됐지만, 사실상 모두 묵살됐다.
전북 부안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원택 의원은 작년 10월 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 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대회가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며 “대책을 적극 강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때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 의원의 지적에 “저희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아서 보고드리겠다”고 답했지만, 결국 행사 당일까지 마련한 폭염 대책은 덩굴 터널과 수도시설에 그쳤다.
제공되는 냉수와 얼음도 턱없이 부족했고, 행사 초기에는 냉방시설도 전무해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온열질환자가 수백명 발생했다.
제공되는 급식과 간식도 부실하거나 상해 있어 빈축을 샀고, 화장실과 샤워실 시설도 지저분하고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 여름 세계잼버리의 문제점을 점검해볼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던 ‘프레잼버리’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취소됐다.
이후에도 프레잼버리만 개최됐어도 지금 현실로 나타난 문제점을 상당수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1일 공동성명을 내고 폭염으로 인해 야영지 행사를 취소하거나 대회를 아예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3일 잼버리 델타구역 내 덩굴터널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행사기간 폭염이 예상됐지만 조직위가 내놓은 대책은 덩굴터널이 사실상 유일했다.[연합] |
전북도 또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당시 대회를 유치한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는 “전 세계인이 새만금을 야영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며 “(스카우트 대원들이) 몸만 와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잼버리 부지는 당초 농업용지로 조성된 탓에 ‘물 빠짐’이 원활하지 않아 침수 우려가 이전부터 제기됐다.
학생들의 여름방학에 맞춰 대회가 열리므로 일정 변경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기반 시설은 제대로 정비했어야 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에 책정된 예산은 1000억원에 이르렀지만, 제때 쓰이지 못해 다음 해로 이월되는 일이 잦았다.
전북도는 부지 침수와 폭염 문제 해소를 위한 기반 시설 확충을 위해 관련 부처에 원활한 예산 집행을 줄곧 요구했다는 입장이지만, 충분한 준비 기간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잼버리의 주관 주체는 잼버리 조직위원회이고, 여가부를 중심으로 운영하게 돼 있다”며 “도 입장에서는 어떤 사안이 결정 나면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조직위 차원에서 폭염 안전대책 매뉴얼을 갖추고 있지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부처들과 전북도 중 누구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아 초기 실행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중앙정부가 나서겠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누군가 주도적으로 대책을 집행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