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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에 깨알같은 ‘커닝페이퍼’ …변호사의 특별한 나눔
“개척교회 목사 아버님 보며 나눔과 봉사 익혔죠”
[인터뷰] ‘매달 공익변론’ 김경은 인의 대표변호사
고려인마을•아너소사이어티 등 지역사회 공헌
장흥도가니, 대안학교성폭행 등 무료변론 주목
개업 후 ‘365일 매일밤 12시 월화수목금금금’

중요한 이슈들을 잊지 않기 위해 ‘커닝페이퍼’ 처럼 메모하는 그만의 습관이다.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제가 어렸을때부터 아버님이 개척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나눔과 봉사를 익히게 됐는데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가장 낮은자리에 있으려고 노력해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이권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매월 1건이상 공익변론을 목표로 내세웠고 지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집중호우와 끈적끈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17일.

법원과 검찰청, 수백여곳의 변호사사무실이 모여 있는 광주 지산동은 특유의 중압감과 압박감이 느껴진다. 범죄에 연루된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이곳을 찾으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분노, 두려움 등 억센 기운이 이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광주법원앞 법률사무소 인의 김경은 대표변호사를 계단앞에서 만났다. 방금 재판을 마치고 온 그의 양손에는 산더미 만한 소송서류가 가득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 맺혀 있었다. 오른손에는 ‘합의서 유이’라는 깨알같은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중요한 이슈들을 잊지 않기 위해 ‘커닝페이퍼’ 처럼 메모하는 그만의 습관이다.

김경은 변호사가 소송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한사람의 인생이 달려 있는 만큼 한장 한장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5살 아들이 자고 있는 새벽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 될 시간이라고 귀띔했다. 서인주 기자

그는 공익변론과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등 지역사회에서 나눔과 봉사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지방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른 늦은나이에 법 공부를 시작했다.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 로스쿨을 졸업했고 2015년 쪽방같은 작은 사무실을 얻어 개업했다.

‘월화수목금금금’

가진게 없고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은 그가 내세운 영업전략이다. 매일밤 12시까지 일했고 주말과 연휴를 생략한 채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

‘진정성’이 최고의 무기였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사건에 매달렸다.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가 몸을 낮추고 경찰서까지 동행하다 보니 재판에 패소했더라도 그의 팬이 됐다.

“한사람의 인생이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로 달라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소송서류들을 접할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밤부터 새벽시간 공부하듯 재판을 준비하곤 해요”

장흥 도가니, 대안학교 성추행 사망, 세종시 3자매 성폭행, 화순 PC방 노예사건.

한때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사건들이다.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다. 범죄피해를 입었지만 지체 장애가 있어 실체적 진실을 소명하지 못한 케이스로 자칫 법망의 그늘 속에 묻힐뻔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공익변론과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등 지역사회에서 나눔과 봉사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서인주 기자

총대를 짊어졌다. 방어권이 취약한 피해자들을 만나 정황증거를 찾아 모았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국민청원에도 도움을 청했다. 사연을 접한 유명 연예인들이 발벗고 나서면서 국민청원 20만명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얻었다.

논문 수준의 의견서를 만들어 담당 검사를 설득했고 결국 재수사를 이끌어 냈다. 장애인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법무부와 교육부에 재발방지 정책도 이끌어 냈는데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

“사회적 약자 특히 청소년, 장애인들이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그냥 묻히는 경우가 많아요. 가해자들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2차 피해로 이뤄지기 하죠. 그래서 결심했죠. 공익변론을 꾸준히 하자고...”

기자와 김 변호사의 첫 만남은 2년여전으로 기억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고려인 후손들이 광주로 집결했는데 그때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함께 숙소를 둘러보고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는데 함께 땀을 흘린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난민들이 광주입국을 희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난민구호 모금운동에도 동참해 10억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고려인 1000여명이 고향땅을 밟게 됐다. 알고 보니 대학때부터 한국어 강사로 꾸준히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대학생때 탈북 이탈주민과 고려인,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일을 해왔어요, 그때 통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유엔 채용 관문인 유엔평화대학에도 합격했어요. 마침 로스쿨 법안이 통과되면서 법률전문가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는 평소 장애인, 청소년 등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위해 무료변론을 펼쳐왔고 미얀마 아동청소년, 광주교도소 재소자 등을 대상으로 후원을 지속해 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2009호 회원으로도 가입했다.

광주교도소 교정위원으로 오랜기간 봉사하고 있다. 광주지검 형사조정장으로 수많은 분노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갈등을 보며 화해와 조정을 시키기도 했다.

“재판이라는 것은 누가 이기든 지든 승패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정은 서로 원한을 풀고 서로 한발 양보해 마무리하는 사건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진게 없고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은 그가 내세운 영업전략은 매일밤 12시까지 일했고 주말과 연휴를 생략한 채 오로지 사건에만 매달렸다는 점이다.

상복도 터졌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하는 2022년 우수변호사 선정과 2023년 법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나눔과 봉사로 선한 영향력을 입증받은 것이다.

법률사무소 인의는 상담부터 재판까지 모든 과정을 변호사가 직접 진행한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맞춤형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현장은 변호사가 함께 해요. 교도소, 감사원은 물론 경찰서를 가더라도 변호사가 동행을 해요, 법률은 변호사가 가장 잘 알지만 사건은 의뢰인이 가장 잘 알거든요. 그래서 늘 소통하려고 합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저녁에도 의뢰인과 함께 곰탕으로 유명한 나주경찰서를 찾는다. 경찰 조사에 잔뜩 긴장했던 의뢰인의 몸과 마음에도 곰탕 한그릇의 여유가 생겼다.

‘진한 국물’ 같은 따뜻함이 비처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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