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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공희 대주교, 5·18 기억 증언
집무실 재현한 전시실도 관람
지난달 30일 기록관 세미나실에서 윤공희 대주교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헤럴드경제(광주)=서인주 기자] 한국 가톨릭교회 생존 최고령 주교인 윤공희(99) 대주교가 43년 전 광주에서 맞이한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증언했다.

2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록관 세미나실에서 윤공희 대주교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윤 대주교를 수행한 엔다 수녀, 이기홍·윤광장·김준태 역대 5·18 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윤 대주교는 1980년 5월 19일 금남로에서 발생한 공수부대의 진압 행위를 떠올리며 "6층에서 골목길을 내다보니 젊은 신사가 피가 나더라고요. 저 사람 빨리 응급치료해야겠는데, 나도 겁이 나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그 이야기의 사제와 같구나'라며 사실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요"라고 회고했다.

1981년 3월 31일 대법원에서 5·18 관련자인 정동년, 배용주, 박노정 등 3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던 사건을 언급하며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만나 사면 요청을 했던 일도 윤 대주교는 증언했다.

결국 이들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윤 대주교는 1980년 7월 신부 훈방과 관련된 사건도 소개했다.

윤 대주교는 광주교구 소속 4명의 신부를 훈방할 테니 신병을 인도해 가라는 통보를 받고 보안대에 갔다.

그러나 훈방 조건으로 쓰기로 한 각서 첫머리에 내란죄라는 죄목이 적힌 것을 보고 서류를 던지고 일어났다고 했다.

윤 대주교는 이후 보안대장에게 항의해 죄목을 삭제한 신병 인도 서류에 사인하고 신부들과 함께 돌아왔다고 전했다.

간담회 후 참석자들은 5·18 기록관 6층 상설전시실이자 윤 대주교가 봉직하던 당시 모습을 재현한 집무실을 둘러봤다.

윤 대주교는 광주대교구장 때 작성한 메모지, 기록물, 집기류, 손때 묻은 가구들과 '윤공희 대주교의 일생' 사진 전시물을 관람했다.

윤 대주교는 2000년 광주대교구에서 정년을 맞아 은퇴했으며, 지난해 8월 27일에는 천주교 염주 대건 교회에서 백수(白壽·99세) 감사 미사가 한국 최초로 봉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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