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시접수로 신입생 선발 절차가 시작된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의제로 포함시킬 것인가 여부가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의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의료계가 참여 전제조건으로 내년 의대정원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엇갈린 메시지를 내면서 협의체 출범이 더 난항을 겪고 있다. 여당은 내년 의대 정원을 포함해 어떤 의제든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미 모집 요강이 확정돼 입시가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내년 정원만은 손볼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통령실에선 내년 정원 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의제를 제한하자는 말은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다. 의료 공백에 입시 혼란까지 우려된다.
당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의 말이 엇갈리고 있다. 한 대표는 지난 10일 의료계가 요구하는 내년도 증원 백지화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요구를 논의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화 할 수 있다”며 “전제조건을 걸어 (협의체) 출범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한 총리는 12일 응급의료 종합상황 브리핑에서 “2025년은 의대 지원 경쟁률이 상당할 정도로 입시가 진행되고 있어 모집 요강을 바꾸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그것은 그것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와 한 총리는 같은날 열린 당정협의에서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회의참석자들 전언에 따르면 한 총리는 “내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재조정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 상황이 한가한가”라고 되물었고, 한 총리는 “지금 상황은 정부가 관리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현실 인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대통령실도 똑부러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같은날 라디오에 출연한 장상윤 사회수석비서관은 의료계의 의대정원 백지화 요구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전제조건 없이 (협의체에) 들어와서 자유롭게 대화해보자는 게 저희(대통령실) 입장”이라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뉴스 보기가 겁난다. 의료 공백으로 인해 응급실을 돌다가 중태에 빠지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프면 안된다”는 다짐뿐이다. 이제 수험생조차 의대 정원과 관련해 내일 무슨 얘기가 나올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의료개혁 첫 단추를 잘못 꿴 탓이 크지만, 본분을 잃고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의료계 책임도 못지 않다. 의료계는 무리한 요구를 철회하고, 정부·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신속 결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