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가계부채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짓누르고 있다는 국제기구 분석이 나왔다. 과거 부채가 성장을 촉진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다.
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발표한 정례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신흥국은 아직 민간신용 증가가 성장을 촉진하는 영역에 있지만, 한국과 중국의 경우 성장을 저해하기 시작하는 변곡점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민간신용은 금융기관을 제외한 기업, 가계 등 민간 비금융부문의 부채를 가리킨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말 222.7%(BIS 기준)에 달해 100% 선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이 중 가계부채가 100.5%, 기업부채가 122.3%였다. 한국은행은 적정 가계부채 비율을 GDP의 80%라고 보고 있는데 갈 길이 멀다.
BIS는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주택 수요가 느는 동안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업종에서 건설·부동산업으로 신용이 옮겨가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건설·부동산업의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해당 업종에 대한 과도한 대출 쏠림이 성장에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실제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 비중이 더 많이 증가한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과 노동생산성 감소는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BIS의 분석은 서울·수도권 요지의 집값 단기 급등에 ‘영끌’ 대출이 급증하고 과도한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서 내수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경제에 뼈아픈 일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그동안 가계대출 규제와 관련한 오락가락 발언으로 시장에 혼선을 준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도 상승기류에 올라탄 집값과 가계 빚의 연결 고리를 끊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대출총량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향 등 은행들을 다그쳐 일시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수요억제 효과는 단기적이다. 이전 정부와 같은 집값 고공행진이 지속되면 2금융권에서라도 돈을 빌리려는 ‘빚투’ 물결을 막기 어렵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집값을 금리만으로 잡을 수 없다”고 한 이유다.
한국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결국 집값 안정이 출발점이다. 지난달 8·8 대책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계획과 밑그림은 대부분 나왔다. 문제는 ‘희망 고문’에 그치지 않게 빨리 주택을 지어 시장에 실제로 공급하느냐다. 여기서 국회의 책임이 막중하다. 속속 올라오는 공급 확대 관련 법안을 여야가 적극 통과시켜 주택공급 확대의 길을 터주고 시장에 신뢰를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