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창업’ 늘어난다…“경쟁 심해지며 ‘레드오션’”
일자리 미스매치도…“제도 정비해 ‘묻지마 창업’ 줄여야”
일본은 ‘정년 연장’ 가속화…“조속히 은퇴 연령 높여야”
한 시민이 서울 시내 한 고용센터에 마련된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기업에서 ‘부장’ 소리 듣다가도 퇴직하면 결국 허드렛일해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 주변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없으니, 자존심에 ‘사장님’ 소리라도 들으려고 자영업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60대 자영업자 A씨)
1000만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 출생)가 법정 은퇴 연령에 진입하기 시작한 가운데, 자영업 시장과 관련한 불안감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전 추세대로 ‘은퇴 후 창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을 경우,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자영업 비대 구조의 부작용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이전보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된다.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교육·기술 수준을 갖췄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은퇴 후에도 근로를 계속할 의향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년 연장·계속고용제도 등 고용 개혁을 통해 자영업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
26일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BOK 이슈노트 : 2차 베이비부머 은퇴 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1964~1974년생의 수는 약 954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8.6%의 비중에 달한다. 이는 고령사회 진입을 주도한 1차 베이비부머(705만명)과 비교해서도 200만명가량 많은 수준이다. 이들은 향후 11년에 걸쳐 법정 은퇴 연령인 60세에 진입할 전망이다.
문제는 은퇴 후에도 지속 근로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23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중 향후 지속 근로를 희망하는 비중은 6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활동 참여를 막을 수도 없다. 노후 생계를 위해 추가적인 생계비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 탓이다.
심지어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1차 베이비부머와 비교해 교육 수준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적자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60세 이상 고령층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 대부분은 일용직 등 단순 노무 일자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55~70세 이직자의 현 근무 직종 중 단순노무직 비중은 35.5%에 달한다. 향후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할 경우 본인이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자영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서울시 50+센터가 만 40~64세 이하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8.5%가 서울시의 ‘창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창업에 대한 관심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미 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에 고령층 유입이 계속될 경우, 노인 빈곤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유혜미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향후 은퇴 세대가 자영업으로 전환될 경우, 경쟁이 심해지며 ‘레드오션’이 될 텐데 이 부분과 관련한 논의가 크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면서 “저출생 정책의 경우 20~30년 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은퇴 인구 활용은 당장 생산가능인구 하락을 늦출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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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2차 베이비부머 세대들에 적정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동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른다. 고령층에 가능한 한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를 제공해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다면, '은퇴 후 창업'에 몰리는 현상은 물론 경제활동인구 이탈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 등 부작용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정년연장, 계속고용제도 등이 논의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비용을 줄이고, 기존에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시기를 확장해 소득 불안정성을 줄인다는 취지다. 실제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생애현역사회(生涯現役社会)’를 정책 비전으로 내걸고 있다. 이에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데 이어, 2021년부터는 70세까지 고용을 확보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일본 기업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근로자를 우선 퇴직시킨 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형태의 계속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70세 이상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기업은 2023년 기준 41.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법정정년을 70세 이상으로 하는 기업은 전체 2.3%에 그쳤다. 이에 재고용 시 발생하는 임금 하락 등 부작용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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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임금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고용 연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문제도 수반되는 상황서, 대다수 호봉제로 정해져 있는 월급 체계를 손보더라도, 정년 퇴직을 늦추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서 “노동계와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덕배 가천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는 “고령자의 은퇴 연령을 높여 임금근로자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방안이 근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서 먼저 ‘연공성 완화’ 등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공공부문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정 기간 이후 연공서열에 대한 임금 상승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 상승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와 함께 자영업 진출 후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정책도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결국 자영업에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을 모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본다”면서 “중장년들에 대해 창업 교육 정책을 강화할 경우, 지금과 같이 사후 대책에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지원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 창업’을 관련 직무와 연관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와의 거래 관계 등을 규제하는 법안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양준석 교수는 “창업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일했던 산업에 종사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외국의 경우 회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 자영업 진출 양상을 보면 인적자본의 낭비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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