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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 봉화, 복더위 잊고 청량을 읊다
국내 3대 기산 청량산 자락 땀 씻고
내성천 은어 건져 올리며 더위 사냥
무섬마을 S라인 외나무다리 인생샷
국내 3대 기악(奇嶽) 중 하나인 봉화 청량산

쨍한 여름 햇볕에 초록과 빨강의 보색 대비로 ‘8월의 크리스마스’라 할 만큼 색다른 매력을 풍기는 봉화는 새로운 내륙 피서지로 청량산을 내놓았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여우천, 서쪽으로는 내성천·낙화암천이 흘러 ‘산자수명(山紫水明·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음)’한 청량한 명당 고을답게 여름의 청량감을 줄 만한 곳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원효대사 ‘소의 전설’ 깃든 청량산

청량산은 초입부터 실개천의 재잘거림이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들리고, ‘소의 전설’이 깃든 청량사 경내에는 여물통 여러 개를 계단식으로 엮은 샘물받이의 청아한 물소리가 청량감을 선사한다.

청량산은 기암괴석 열두 봉우리가 장관을 이뤄 청송 주왕산, 영암 월출산과 함께 국내 3대 기악(奇嶽·신기한 산악)으로 꼽힌다.

주봉인 장인봉과 금탑봉 등 12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있고, 8개의 동굴, 관창폭포·김생폭포, 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가 이곳에 있다. ‘남북국 시대’에는 최고 명필인 김생, 의상·원효대사, 고운 최치원, 조선 시대에는 퇴계 이황 등 숱한 명사가 찾았다. 세기의 명필을 탄생시킨 김생굴은 8개 동굴 중 으뜸이다.

청량산의 전망 좋은 12대(臺) 중 하나인 독서대에서 책을 읽던 최치원이 틈틈이 마셔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의 맛은 여전히 달고 시원하다.

김생굴 앞 퇴계의 강의실 오산당, 고려 시대 공민왕이 몽진 중에 쌓은 청량산성 외에 요즘 여행자에게 인기있는 곳은 세모난 소나무 그늘인 삼각우송, 청량산을 노래한 시문 특별기획전 ‘청량을 읊다’이다.

삼각우송과 석탑에 오르면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다. 원효대사가 농부로부터 성질 괴팍한, 뿔 셋 달린 소를 시주받았는데,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이 소가 절을 짓는데 필요한 자재를 다 나른 뒤 죽었다.

이 자리에 소를 묻어 삼각우총이라 했고, 그 자리에 자라난 소나무가 삼각우송이다. 이곳은 영화 ‘워낭소리’ 첫 장면 촬영지이다.

‘청량을 읊다’는 올해 11월 24일까지 청량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조선의 선비와 시인의 예능감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청량산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한 하늘다리, 청량산과 연결된 명호면 만리산전망대(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도 ‘여름 더위 사냥꾼’이 정복할 만한 명소들이다.

지난해 봉화은어축제 모습

축제에서 만난 ‘귀하신 몸’ 은어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해 영주시와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내성천은 맑고 푸른 물, 주변에 둘러친 백두대간 작은 봉우리의 조화가 아름다운 강이다.

해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봉화은어축제가 열린다. 아이들, 누나, 오빠, 아줌마, 아저씨, 어르신 할 것 없이 저마다 족대를 들고 은어잡이에 나서는 모습이 장관이다.

은어는 임금 수라에 오를 만큼 귀하고 영양 풍부한 민물고기로, 오염되지 않은 상류의 1급수에 서식한다. 올해 봉화은어축제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다.

봉화는 조선의 건국이념을 정립한 삼봉 정도전, 춘향전 이몽룡 도령의 실존인물 계서 성이성 등 많은 문신이 터잡았던 곳이다. 전국 600여 곳의 누각과 정자 가운데, 봉화에 가장 많은 103곳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신·선비·묵객·양반이 봉화에 머물거나 왕래했다는 뜻이다.

산이면 산, 물이면 물, 청정생태가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정화시키는 곳, ‘물의 흐름 대로 간다(水+去)’는 뜻의 ‘자연법(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봉화는 과거 정·관계 리더들이 파당과 쟁투로 점철된 중앙정치를 뒤로 하고 안빈낙도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해뜨는 아침, 삼층석탑에서만 보이는 ‘황금 부처 5좌’

‘황금 부처 5좌’의 마법, 부석사

이웃 영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어느 기행문처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본다. 봉화 북서쪽, 태백산 자락 남쪽이다. 내게 경배하는 듯한 천촌만봉에 자신감이 솟는다.

태백산에서 뻗은 산줄기는 구룡산·옥석산·선달산으로 솟구치다가 소백산으로 이어져 형제봉·국망봉·비로봉·연화봉을 이룬다. 부석사는 선달산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뻗은 줄기인 봉황산 아래에 계단식으로 착상했다.

이곳의 진풍경은 아침에 가야 볼 수 있다. 입구인 3층 석탑 앞에서 서면 햇살이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드는데, 다포식 지붕 이음 사이로 황금 부처 다섯이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처럼 좌정해 있다.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을 걸어 도달하면 황금부처는 사라진다. ‘골드 부다 5좌’의 마법이 지나간 자리엔 정교하게 끼워진 채, 1000년을 버틴 다포 목재 모듈만 보인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곳의 신비로운 지세와 속시원한 전망을 감상한다. 동쪽으로는 문수산‚ 남쪽으로는 학가산의 맥이 휘어들고 서쪽으로 소백산맥이 휘어 돌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룬다. 그 중심에 부석사터 봉황산이 자리한다. 그래서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면 태백산 남쪽 수많은 봉우리가 일제히 이곳을 향해 경배한다. 단순히 ‘뷰 맛집’이 아니라, 뿌듯함과 자신감이 여행자의 가슴에 파고든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 보물 6점, 경북도유형문화재 2점 등을 보유한 국내 10대 사찰 중 하나다. 이곳에 살던 봉황 중 한 마리는 봉정사로 날아갔다. 두 곳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이라 부르는데, 이 바위의 모양에서 부석사(浮石寺)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이 곳 부석사에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동편 지장전 기둥에 기대 서서 북쪽을 보면, 아이를 품은 어미 형상의 ‘캥거루 전각 한쌍’이 나온다. 바로 무량수전과 안양루이다. 창조적 심미안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한다.

무섬마을 ‘S라인 외나무다리’

‘전인 교육’ 실천, 국내 제1호 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소수서원은 1543년 지어진 국내 첫 서원이다. 솔숲과 백운동 계곡을 끼고 자연법과 공경심을 가르치던 인성 교육기관이다.

설립자인 신재 주세붕은 알았다. 인성교육이 교육의 전부라는 것을. 그리고 백운동계곡 바위에 공경할 경(敬)자를 새겨둔 채, 탁청지와 취한대에서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탁주·청주 먹고 취한다’는 뜻이 아니다. 탁한 것을 맑게 하는 연꽃 못은 ‘소수’의 본딧말인 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地·무너진 학문을 다시 닦다)의 정신과 통하고, 취한대는 계곡의 시원한 물빛을 벗삼아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곳이란 뜻이다.

이곳은 전인교육장이다. 시문·예학·음악까지 가르쳤다. 음악에도 능했다는 회헌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강학당(보물 제1403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등 중요 유물이 많다. 지금은 인근 죽계천, 백운동계곡과 솔숲이 내·외국인의 놀이터가 됐고, 선비촌으로 이어져 볼거리를 더한다.

봉화에서 시작된 내성천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예쁜 명당을 만들었다. 한반도 지형 같은 물돌이마을 ‘무섬’이다. 풍수로 보면 매화꽃이 떨어진 모습을 닮은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하부수 모양의 명당이다. 이곳 ‘S라인 외나무다리’는 인생 샷을 선물한다.

영주와 봉화가 충북 제천·단양, 강원 영월·평창과 ‘중부내륙중심권 행정협력회’를 만들어 대승적으로 6개 시군이 한 살림을 꾸려가는 모습이 정겹다. “참 괜찮은 양반들”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봉화·영주=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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