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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작가 되고픈 국문과 새내기 박요한 “취업비자는 못 이룰 꿈”
미등록 외국인에서 유학생 전환에 감격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취업 진로 제한적
“비자 신설·귀화 완화로 정착 유도해야”
박요한(가명) 씨가 축제 준비가 한창인 자신의 대학교 캠퍼스를 걷고 있다. 박혜원 기자
박씨가 1학기 수강 중인 국어국문학과 전공 수업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꿈이 작가여서 일단 국문과에 진학하기는 했는데.... 아시잖아요, 작가로 벌어먹기 힘든 거. 그래서 출판사 같은 데 들어가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작가를 할까 해요.”

인터뷰 시작부터 대한민국 국어국문학과의 우울한 미래를 토로하는 청년의 이름은 박요한(20·가명). 박씨는 2004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바깥으로는 한번도 나가본 적 없는 ‘K-청년’이다. 하지만 박씨의 법적 지위는 엄연히 ‘외국인’이다.

초중고교를 다닐 때에는 ‘미등록 외국인’이었다. 지난해 불법 체류 범칙금을 내고 유학생 비자를 받아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했다. 신분은 외국인이지만 평범한 ‘K-대학생’이다. 박씨는 “‘팀플(팀플레이)’ 하는데 유학생이 무임승차 해서 ‘하드캐리’ 했다”, “이번 학기에 족보 없는 교수님 수업이 있어서 성적이 두렵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웃기까지 했다.

박씨의 꿈은 한국에서 먹고 사는 것이다. 평범한 대학생의 평범한 꿈일 수 있겠지만, 사실 박씨에게는 사치다. 그가 원하는 출판사 취업, 웹소설 작가 모두 외국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두 차례 웹소설 출판 제안받았지만 포기=박씨의 부모는 모두 필리핀 사람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서로 만나 가정을 꾸렸다. 박씨의 아버지는 박씨가 다섯 살 때 필리핀으로 추방됐다. 박씨 아버지를 고용한 사업장의 사장은 박씨 아버지와 갈등이 생기자 ‘신고’를 했다. 미등록 상태로 근로 중이었던 박씨의 아버지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필리핀에서 목사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가 처음으로 자신이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초등학교 때다. 친구와 다투다 손가락이 부러져서 병원을 갔는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청구됐다. 박씨는 “(의사)선생님이 ‘너는 불법 체류자다’라고 말해주셔서 깨달았다. 치료비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고 미등록 신분인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였다”며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는 시비를 거는 친구가 있어도 무시하고 참았다”고 했다.

박씨는 초중고교 대부분을 ‘미등록 외국인’ 상태로 지냈다. 때문에 작가로 ‘데뷔’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고1 때 취미로 플랫폼에 연재한 웹소설에 대한 출판 제의가 두 번이나 왔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빙의물’을 썼는데 2개 회사에서 출판 제의가 왔다. 하지만 그때에는 ‘미등록’ 상태여서 계약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박씨는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웹소설, 장르 문학, 순문학 가리지 않고 즐기는 ‘문학 청년’이다. 그는 “사실 고전 소설을 더 좋아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최애’ 소설”이라며 “최근에 빠진 게임이 있는데 설정이 고전 소설 작품에서 따온 게 많았다. 무한한 창작의 원천이 된다는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미등록 외국인에서 ‘외국인 유학생’으로=박씨는 법무부의 ‘한시적 체류허가 제도’의 수혜를 입었다. 2022년 국내 출생 또는 장기 체류 미등록 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시작된 제도다. 2024년 4월 말 기준 해당 정책으로 801명이 체류자격을 받아 국내 체류 중이다. ▷국내 출생 또는 영·유아기(6세 미만)에 입국해 6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했거나 ▷영·유아기가 지나서 입국했어도 국내 체류 기간이 7년 이상인 미등록 외국인 중 국내 초․중‧고교 재학 또는 고교를 졸업한 학생이 대상이다. 고교 졸업 시까지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를 부여하고 유학이나 취업 체류자격 변경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 1년간 임시체류자격(G-1)을 준다.

요한의 대학 입학 자체가 제도의 유효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요한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22년학업 체류 비자(D-4)를 받아 처음으로 등록 외국인이 됐다. 지난해 초 잠시 임시체류자격(G-1)을 부여 받았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유학 비자(D-2)로 전환했다. 요한은 “학업 체류 비자(D-4)가 만료되고 나서 임시 체류 비자(G-1)을 받지 못했다면 다시 미등록 상태가 돼 대학 진학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유학 비자로 전환하려면 돈을 준비해야 됐는데 시간을 벌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25년 3월 31일까지만 운영되는 한시적 제도다. 제도가 상시 시행될 경우 아동을 수단으로 한 불법 이민 등 부작용을 우려해 기한을 정해뒀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책 종료 후 관련 통계와 아동 체류 실태 및 국민 여론 등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를 거쳐 후속 계획 수립 여부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 이후 진로된 진로...‘박사’ 또는 ‘공장’=대학 이후 진로는 또 다른 문제다. 더 이상 유학생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석사·박사에 진학해 유학 비자를 연장하거나 취업 비자로 전환해야 한다. 취업 비자의 경우 종류는 매우 한정적이다. 박씨가 원하는 프리랜서 웹소설 작가, 출판사 취업 모두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직 취업 비자는 교수(E-1), 회화강사(E-2), 변호사·의사·공인회계사(E-5) 등 자격 요건이 까다롭다. 비전문 취업 비자(E-9)는 제조업, 건설업, 농어업 등으로 직종이 제한돼 있다. 인력이 부족해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주만 외국인들한테 줄 수 있는 데다, 국내 대학 학사라는 ‘스펙’이 딱히 필요 없는 직종이다.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지원하는 강다영 용산나눔의집 활동가는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우선 취업 비자를 주는 회사에 다녀야 하는데 그런 회사가 흔치 않다”며 “결국 3D 직종으로 빠지고,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정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지도변호사는 국내 출생 미등록 외국인을 위한 별도 비자나 귀화 루트를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혈족을 기준으로 발급하는 재외동포 비자(F-4)처럼 국내 출생, 한국 교육 이수 등을 조건으로 ‘국내 출생 외국인’ 대상 비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중국 동포, 고려인 동포 등에게 주는 재외동포 비자(F-4)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같은 단순 노무 행위나풍속업 등을 제외하면 취업이 자유롭게 허용된다. 2019년에는 대상자를 4세대까지 확대했다.

전 변호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쭉 살았다면 사실상 한국이 고향인데, 성인이 돼서 한국에 정상적으로 정착할 만한 제도가 없는 상황”이라며 “국내 출생 미등록 외국인은 거주 기간, 한국 적응력 등 영주권이나 귀화 요건을 거의 다 충족시킨다. 이러한 절차를 원할히 받을 수 있도록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지영·박혜원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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