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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한 지배구조 기업이 더 ‘밸류업’ 할 수 있다” [헤경이 만난 사람 - 밀리 버그 노르웨이 국부펀드 NBIM 애널리스트]
세계 최대 2200조원 운용 국부펀드
헤럴드경제 국내 언론 첫 단독 대담
한국기업 513곳 27조5433억원 투자
삼성전자 주식 9조6065억어치 보유
한국은 아시아서 전망 밝은 큰 시장
이사회 독립성 강화, ESG 성장 중요
영문 공시에 비재무 주효하게 담겨야
밀리 버그(Mille Bugge) 노르웨이 국부펀드 NBIM 애널리스트가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우리는 건강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이 더 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사회가 잘 관리되고 시장에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지 중요하게 따져볼 것입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중앙은행투자청(NBIM)에서 주주권리(Active Ownership) 분야를 담당하는 밀리 버그(Mille Bugge) 애널리스트는 헤럴드경제 단독 인터뷰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비재무공시가 주효하게 담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밸류업’‘은 PBR 등 재무 지표로만 증명되는 게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성장까지 화두로 삼아야 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는 이사회의 다양성·전문성·독립성 등을 점검한 내용을 ‘밸류업 공시’를 통해 성실히 알린다면, 이를 투자 판단 근거로 활용하려는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봤다. 다만,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는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영문 공시 운영 체계를 꼽았다. 현행 비재무정보가 담긴 영문 지속가능보고서 수준으로선 기업별로 정보 공개 편차도 매우 심할 뿐더러 국제적 정합성 측면에서도 상당 부분 뒤떨어진다는 지적이다.

▶“韓, 우리의 핵심시장...510여곳 투자”=1996년 설립된 노르웨이 NBIM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다. 1조6000억달러(2200조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며 전 세계 상장 주식의 약 1.5%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전 세계 70개국, 8800여개 기업에 자금을 투자했다. 이 중 한국 기업은 513곳에 달한다. 한국 투자 규모는 2121억 크로네(27조5433억원)로, 전체 보유액 중 1.3%에 해당된다. 채권은 158억4000만 크로네(2조569억원), 주식은 1963억 크로네(25조4915억원)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노르웨이국부펀드의 한국 채권 보유액은 2019년을 기점으로 줄어든 반면 주식 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NBIM이 가장 많이 투자한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로 739억7612만 크로네(9조6065억원)어치를 보유 중이다. 그다음은 SK하이닉스·현대자동차·네이버·삼성SDI 순으로 크다. 밀리 애널리스트는 “한국 기업은 우리의 핵심시장”이라며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질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전망이 밝은 큰 시장”이라고 주목했다. 또 “시장 챌린지(도전)와 기회에 잘 대응하면서 장기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기업을 찾아 포트폴리오에 담고 싶다”며 “해외 투자자로서 한국 시장을 자세히 이해하고 기업의 성장 여정을 ESG 관점에서 소통하며 ‘주주 관여 활동’(인게이지먼트)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NBIM는 2001년부터 20년 넘게 한국 기업의 장기 투자자임을 강조하며 국내 이해관계자들과의 직접 만나면서 신뢰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겠다고 강조했다.

▶“밸류업 논의, 흥미로운 발전”=올해 한국 증시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20년 넘게 지적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일본처럼 날아 오를지, 저평가의 굴레에서 갇혀 있을 지다. 일본의 거버넌스 개혁 사례를 경험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 ‘밸류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배경이다. 밀리 애널리스트 역시 ‘밸류업’이 논의 초기 PBR(주가순자산비율) 지표 개선을 넘어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개혁 차원으로 의제가 넓어지는 흐름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최근 한국에선 ‘흥미로운 발전’이 많이 보인다”며 “기업지배구조 기준을 개선해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정책 안정성까지 확보한다면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밸류업 논의 과정에서 “건강한 기업지배 구조를 갖춰야 기업 가치가 제고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대목이 반갑다”면서 “이는 수년 간 한국 기업과 소통해왔던 NBIM의 핵심 의견이자 우리의 관점과도 맞닿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영문 ‘밸류업’ 공시에도 비재무공시를 성실히 담아달라고 당부했다. 매년 1회 주기적으로 기업 밸류업 계획을 국·영문으로 공시할지 여부는 기업의 자율에 달린 상황이다. 밀리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다른 지역보다 영어 공시가 빈약한 편”이라며 “영어 공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중요한 투자 판단 근거다. 기업은 재무뿐만 아니라 비재무적 정보를 포함한 모든 중요한 주제에 대해 성실히 공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주들이 기업의 내재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얘기다.

▶“밸류업하려면 이사회 독립성 강화해야”=그간 NBIM는 국내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며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이사회가 주주들을 대신해서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데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면 주주가치도 훼손시킬 수 있어서다. 이에 이사회의 경영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밸류업 원년인 올해 NBIM은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잇달아 들어주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JB금융 지분 2.92%를 갖고 있는 NBIM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제안한 이사에 전원 찬성했고, 이사회 추천 인사는 전원 반대했다. 표 대결 끝에 얼라인파트너스 추천 이사 중 2명이 신규 이사로 선임됐다. 국내 금융지주에서 주주제안 이사가 선임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밀리 애널리스트는 NBIM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언급하며 “우리가 투표하는 안건의 95%는 이사회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만일 이사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주주의 권리가 적절하게 보호되지 않을 경우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의결권은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행사하는 게 중요하다”며 “투표 원칙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기업지배구조,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기대와 입장을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사회 다양성 역시 기업가치 제고에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성별 다양성은 전문성·경험·관점 측면에서 이사회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이에 올해 NBIM은 기업 이사회들이 성별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했다”면서 “한국 기업의 이사회에도 최소한 1명의 여성 임원이 포함되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 역시 오는 2025년 주주총회부터 의결권 행사 기준에 성별 다양성을 반영하기로 했다.

▶“AI 리스크·반부패 이슈 대비해야”=NBIM은 ESG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투자하는 대표 국부펀드로 꼽힌다. 최근 주시하는 ESG 현안을 묻자 ‘AI(인공지능) 이용’과 ‘반부패’ 등을 꼽았다.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산업과 일상 영역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는 AI의 성장을 낙관하고 가속해야 할지, 오남용과 부작용을 서둘러 규제할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AI의 잠재력과 함께 규제 필요성, 정책적 합의, 윤리적 의제 등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한국에는 기술·통신 산업에서 AI 기술이 발전한 기업들이 많다”며 “잠재적인 시장 기회도 많겠지만 그 만큼 리스크도 뒤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위험을 대비하면 좋을지 묻자 “AI 기술이 사용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데이터는 어떻게 보호할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AI 산업군은 빠르게 변화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장기적으로 데이터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AI를 사용할 때 어떤 부분에 이점이 있고 각 기업에서 해당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 소비자의 데이터 민감성에 대해 깊이 고려하고 투자자들에게도 세밀히 안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NBIM은 2008년부터 아동 권리·기후변화·인권·세금 투명성·해양 지속가능성 등 ESG 의제를 추려 ‘기대 보고서’(Expectations of Companies)를 작성해 투자 원칙을 따르고 있다. 특히 2018년에는 반부패를 6번째 ESG 분야로 선정할 만큼, ‘부패’를 시장왜곡·기업운영 효율성 저하·법적 및 재무적 리스크·주주가치 훼손의 주범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에 부패 리스크 관리 책임은 경영진과 이사회에 있다고 보고 기업 리더십 차원에서 활발한 반부패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게 NBIM의 생각이다.

이달 방한한 NBIM은 지난 17일 유엔글로벌콤팩트와 함께 ‘기업 청렴성 포럼’을 개최할 만큼 국내 기업의 반부패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한국 기업들에게 반부패 요소를 포함한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한국 기업들이 반부패 규정을 자사 정책 및 거버넌스 구조에 맞게 맞춤형으로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며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 등도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혜림 기자

fo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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