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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샤갈이 휴식을 취하는 법

지속적인 우울감이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으면 코르티솔이란 호르몬 수치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데, 이렇게 되면 혈액 속 지방과 혈당수치를 높여 피로와 무기력증은 물론 비만, 고혈압, 당뇨병까지 초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방식대로 스트레스를 꼭 풀어주어야 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마르크 샤갈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샤갈은 지치고 힘들 때면 고향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샤갈의 고향은 당시 러시아 제국의 벨라루스 공화국이었는데, 작품 활동은 거의 프랑스 파리에서 이루어졌지요. 샤갈은 러시아인이었지만, 유대인의 핏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부당한 일을 겪었고 어쩔 수 없이 개명까지 하게 됩니다.

샤갈은 자신이 고향과 정체성을 부정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를 달래기 위해서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몽환적인 그림들을 그렸지요. 꿈에서도 그리운 고향을 그리는 화가, 아름다운 시를 읽는 듯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마르크 샤갈... 그는 러시아 민속을 담은 주제와 유대인의 성서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의 원초적인 향수와 동경,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 등을 눈부신 색채로 펼친 표현주의의 거장입니다.

파리에서 입체주의와 야수주의, 그리고 표현주의까지 골고루 영향을 받았지만 샤갈은 결국 자신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색채의 마법사’라는 별명답게 아름다운 색채들이 어우러져 있어서 언제나 샤갈과 그의 마을이 남겨준 향수, 즉 노스탤지어를 자아냅니다.

샤갈의 ‘나와 마을’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온 이듬해에 스물넷의 청년 샤갈이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그린 작품입니다. 곳곳에 뭉클거리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특이한 구성으로, 화면의 왼쪽에는 염소가, 오른쪽에는 샤갈의 초록색 얼굴이 있습니다.

눈망울이 그렁그렁한 이 염소의 눈동자는 사람처럼 친근하고 푸근하게 안부를 묻는 것 같습니다. 염소의 뺨을 면으로 나눠 한쪽에는 푸른색과 흰색, 붉은색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염소의 뺨에는 염소젖을 짜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림 상단에는 낫을 들고 밭으로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고 동생인지 애인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앞에 거꾸로 선 소녀도 보이네요.

샤갈과 염소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샤갈의 고향 마을이 보이죠? 건물들의 화려한 색감들과 이 모호한 공간들은 그리움으로 충만한 샤갈만의 고향을 보여줍니다. 유대인이자 러시아 출생인 샤갈은 프랑스에서 살아가면서 겪었을 이방인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이처럼 환상적인 고향을 그림으로써 조금씩 해소했을 것입니다. 뭉크처럼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화가가 있는 반면, 이렇게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함으로써 고통을 견뎌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샤갈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요.

우리에게 샤갈의 고향 같은 곳은 없을지 모르지요. 하지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무언가는 분명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장소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 혹은 반려동물일 수도 있죠. 스트레스가 여러분을 괴롭힐 때 눈을 감고 샤갈처럼 그려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만의 애틋한 고향을 말입니다.

안철우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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