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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치게 자유로운 영혼, 샤갈의 그림이 춤을 춘다[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벨로루시 출신인 샤갈(Marc Chagall:1887~1885)은 프랑스-러시아-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를 익혀, 자유로운 필치를 구사하는 화가이다.

자유는 그를 장수로 이끌었다. 연애도 지나치리만큼 자유로웠던 그는 조강지처 대신, 프랑스 생폴드방스 묘지에 후처와 사이좋게 묻혀있다.

빛의 벙커 샤갈展

미술대사전(인명편)은 샤갈에 대해, ‘벨로루시의 비데브스크에서 출생. 1910년 파리에 왔다. 이 시대의 작품에는 고향의 풍물이 추억처럼 나타난다. ‘나와 마을’(1911, 뉴욕, 현대미술관)등이 그것이다. 1914년 러시아에 돌아갔고, 공산당 혁명 후에는 미술 행정의 요직을 차지했다. 1922년 재차 파리에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도미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1947년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샤갈의 주제는 지상의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영원의 사랑이다. 샤갈에 있어서는 인간이나 동물들, 그중에서도 연인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데, 이 사랑의 신화를 지탱하는 것이 신선하고 강렬한 색채라고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이데올로기에 얽메이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것 저것 다 주워먹는 자유로움의 ‘산만함’도 보인다.

샤갈이 제주에 왔다. 이름난 여행지이니, 더 자유로워도 용인이 될수 있겠다. 군 통신 설비를 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제주 성산 ‘빛의 벙커’가 다섯 번째 몰입형 예술 전시 ‘샤갈, 파리에서 뉴욕까지(Chagall, Paris-New York)’전시를 22일 개막했다. 앞으로 1년간, 2025년 2월 21일까지 진행된다.

샤갈이 젊은 시절 매료되었던 예술의 중심지 파리, 고향인 소련(벨로루시 등지)에서 예술분야 고위직책을 얻더니 다시 자유의 중심지로 여겨 도착했던 미국 뉴욕에서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빛의벙커 샤갈展

어느 한 화파로 규정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가 샤갈의 업적을 소개하고 그의 여정을 따라 시대와 삶, 사랑과 예술을 되돌아볼 수 있다.

20세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목격자로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부터 가장 찬란한 순간까지 샤갈 자신의 예술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는지를 목도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샤갈의 손녀 벨라 마이어(Bella Meyer)가 내한하기도 했다.

샤갈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자유롭고 색의 리듬을 잘 구현했기에, 첨단 디지털 기술에 의한 빛의벙커 식 몰입형 예술로 재해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총 8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시퀀스 마다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동반된다. 빛의 벙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맞춰, 샤갈의 작품들이 전시장 내부의 벽과 바닥에 투사되어 역동적이고 몰입감 넘치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있는 샤갈의 무덤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있는 샤갈의 무덤

특히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와 뉴욕 링컨 센터 로비의 대형 벽화들같이,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를 아우른 작가의 작품들이 여러 장르의 음악과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다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아트디렉터 지안프랑코 이안누치(Gianfranco Iannuzzi)는 “샤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현대적인 색채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 전시의 마지막 시퀀스를 화려한 색채의 불꽃놀이처럼 연출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샤갈은 어릴적 고향친구였던 첫 부인 벨라와 묻히지 않고, 말년을 함께 보낸 바바와 생폴드방스에 묻혀있다.

첫 부인 벨라가 죽자, 바바와 살던 샤갈이 그린 헌정 그림

‘자유인’인 친구이자 남편, 샤갈과 동행하다가 그의 방종 어린 자유 날개짓을 제어하지 못한 채 떠나 보낸 뒤 고생 많았던 벨라가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남편 샤갈에게 들린다. 샤갈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벨라 신부의 모습 등을 그려넣은 헌정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남프랑스 아를엔 고흐가, 니스엔 마티스의 족적이 남아있는데, 생폴드방스, 영화의 고향 칸느, 프랑스 예술의 제2 본거지 마르세유 등 남프랑스 아트투어는 파리 시내 일부 지역에 국한된 프랑스 예술인문학 여행의 폭을 키워준다.

그러나, 예술한답시고, 샤갈 처럼 바람 피는 것을 당연시하고, 고갱 처럼 타히티섬에서 미성년자 다수를 번갈아 감언이설 성희롱 또는 템퍼링 동거를 해놓고 나중엔 나몰라라 하는 식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겠다. 특히, 고갱의 그림에는 15세 안팎 타히티 소녀(고갱이 추행한 것으로 확실시되는)의 화난 표정도 나오는데, 그런 모습까지 그림 그려넣은 점은 참 나쁘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진정한 인간의 예술을 할 수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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