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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우리가 주도하는 과학기술 국제협력 모델 만들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진이 인간의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기후변화, 전염병, 식량부족과 같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차원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활발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반면, 국가 간 기술 보호와 기술패권 경쟁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각국은 우수 인력 양성과 핵심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자국에 이로운 새로운 규제 장벽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이를 ‘새로운 전략적 경쟁 시대(New Era of Strategic Competition)’라고 명명했다. 이제 국제협력도 경제, 사회, 정치, 외교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과학기술 국제협력은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서로 다른 문화, 역사 및 과학기술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의 다양한 전문 지식, 자원, 관점을 융합할 수 있어 과학적 진보와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보다 많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므로 연구 과정의 타당성과 연구결과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또한 국가 간 문화교류와 상호이해를 촉진하여 과학의 영역을 넘어 외교, 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와 협력을 증진할 수 있다. 국제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논문은 인용률이 더 높고 연구결과가 더욱 광범위하게 전파되는 등 영향력도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오 연구는 국제협력이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로, 감염병 대응에서부터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보존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초월한 학제 간 전문 지식, 자원, 데이터의 공유를 필요로 한다. 바이오 분야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 중 많은 것들은 국제협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인간게놈 전체를 매핑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한 인간게놈프로젝트와 크리스퍼 유전자교정기술(CRISPR-Cas9)이다. 이러한 글로벌 혁신성과들이 바이오 혁명을 이끌고 있다. 또한, 우리가 직접 경험했듯이 국민 생명은 물론,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감염병의 극복은 국제협력을 통해 병원균에 대한 신속한 생물학적 이해와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정부가 글로벌 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기존 국내에 집중된 연구를 국제협력 연구로 전환하는 내용의 ‘정부 R&D 제도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현재 1.9%가량인 국제협력 연구비 비중을 6~7% 수준까지 확대하는 ‘글로벌 R&D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과기정통부는 2024년을 글로벌 R&D 허브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특히,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중심으로 하향식 신규 글로벌 R&D 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며, 현재 범부처 사업단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급속한 국제협력 연구비 확대에 대한 기대 이면에는 많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들은 대부분 의학 분야 오픈 액세스 출판사인 PLoS(Public Library of Science)가 제시한 국제협력 관계 구축 십계명과 궤를 같이한다. 예를 들면, 국제협력을 하려는 이유와 협력 상대가 갖추어야 할 특성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실용적인 협력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추구할 협력유형을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주요 목표와 예상되는 결과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관계를 수립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초기부터 지식재산권과 성과공유 정책을 논의하고 정해야 하며, 공유할 자원을 고려하고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간 법적, 제도적 차이를 이해하고, 공동연구비 확보를 위한 대안들을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 수많은 항공사의 노선들이 허브공항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허브공항들 사이의 연결을 통해 세계가 하나의 항공망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국제협력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고도화를 달성하려면 거점화하고 그 연결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전략적 요충지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중심이 되는 신규 거점을 구축하거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존 해외 거점조직을 국제협력의 허브로 활용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생각할 때이다.

이러한 거점을 중심으로 분야별 국제협력의 전략과 방향을 설정하고, 협력관계 구축에서부터 법제 분석, 성과 분배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창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로 유입된 외국의 우수한 연구자들이 잘 정착하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지원정책과 법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정리하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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