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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스시장, 덩치 커졌는데 초등생 옷 입은 격…체리피킹, 구조상 불가능”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
“소모적 논쟁 끝내고 LNG 키워야”
LNG 가격 상승에 한전·가스공사 고전
민간 직수입사 ‘체리피킹’ 논쟁 재점화
“지시 내려오면 무조건 발전기 켜야…체리피킹 성립 안해”
“직수입 허용, 정부 에너지정책 중 가장 잘한 일…더 활성화”
“민간 직수입, 가격 경쟁력 차이…국가 전력비용 절감 기여”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대회의실에서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가 열린 가운데 정용헌(왼쪽부터) 아주대 교수, 조성봉 숭실대 교수, 손양훈 인천대 교수가 “체리피킹 같은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LNG를 하나의 산업으로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 기자]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저렴할 때만 사오고 비쌀 때는 안 사온다? 그렇게 했다가는 전력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체리피킹(Cherry Picking·선택적 구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민간 LNG 직수입사를 겨냥한 ‘체리피킹’ 주장에 대해 이는 현실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학계의 지적이 제기됐다. 국제 LNG 가격이 상승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시장이 요동치면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는 대규모 적자 및 미수금 사태를 겪는 반면, 민간 LNG 직수입사들은 역대급 영업이익을 실현했다는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스공사는 비쌀 때도 가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LNG 직수입사들이 LNG 가격이 쌀 때만 가스를 구매하고 비쌀 때는 수입량을 줄여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이른바 ‘체리피킹’의 요점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가스업계에서는 ‘체리피킹’의 진위여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에 참석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체리피킹’ 논란에 대해 “십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소모적 논쟁”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운영되는 국내 전력시장은 한국전력거래소가 다음날 필요한 전력량을 예측하고 이를 하루 전에 입찰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전력거래소는 시간대마다 발전비용이 낮은 발전소부터 전력을 생산하도록 지시한다. 이것이 ‘급전지시’다. 민간 발전사업자도 매일 입찰에 참여해야 하고 언제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LNG 재고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가스를 지속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의도적으로 입찰에 불참하면 사업허가가 취소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체리피킹’이라는 것은 사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야 성립되는데, 발전사업자는 무조건 급전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민간 발전사도 ‘중앙급전발전기’이기 때문에 전력거래소가 발전기를 켜라고 하면 반드시 켜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된다”고 강조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가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에서 “체리피킹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정용헌 아주대 교수 역시 “직수입사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무조건 체리피킹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약하다”며 “수익성은 SMP(계통한계가격)가 높을 때나 낮을 때, LNG를 들여오는 시점, 수요-공급 등 다양한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SMP는 전력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발전기 중 가장 비싼 발전기의 발전단가를 의미한다.

실제 가스공사·직수입사 LNG 발전기 열량단가 추이를 보면 대체로 국제 가스 가격에 따라 움직이며 직수입 발전기가 가스공사에서 연료를 공급받는 발전기 대비 높은 열량단가를 기록한 달도 있다.

정 교수는 또, “계약 관점에서 봐도 체리피킹의 근거가 희박한 이유는 (LNG) 가격이 싸다고 해서 바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母)계약이 있어야 하는 등 계약 자체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 DB]

LNG 직수입사들의 ‘체리피킹’으로 가스공사의 가스도입 비용이 증가해 국민부담인 가스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세명의 교수는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그동안 직수입 점유율과 물량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직수입 사업자들이 싸고 경쟁력 있는 천연가스를 들여왔다는 의미”이라며 “어차피 직수입은 자기소비용(산업용 발전)이기 때문에 도시가스 등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직수입 제도를 도입한 것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LNG 직수입사들이 발전가격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경제 전체에 바람직한 기여를 해왔다는 설명이다.

정용헌 아주대 교수는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에서 “LNG 직수입 허용이 정부의 에너지정책 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정부는 기존 가스공사 독점구조였던 가스시장에 2005년부터 ‘자가소비용’에 한해 직수입을 허용했고, 현재는 직수입 물량이 지난해 기준 약 930만t, 전체 LNG 수입량의 21%까지 증가한 상태다. 직수입 사업자도 22개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민간 발전사뿐만 아니라 공기업인 한전의 자회사 3곳도 직수입을 하고 있다.

조 교수는 “직수입 물량이 늘어나고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직수입자들이 싸고 경쟁력 있는 천연가스를 들여왔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며 “(직수입이) 2022년에 SMP를 킬로와트(kWh)당 6원 떨어뜨리고, 한전의 전력구입 비용을 1조1000억원어치 절감할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또한 직수입은 갑작스러운 국가 차원의 가스 물량 부족분에 대한 대비도 가능케 한다. 국내 가스시장은 추운 겨울에 가스를 많이 쓰고 여름에는 적게 쓰는 ‘동고하저’가 특징이다. 그러므로 겨울철에 직수입 LNG 물량을 가스공사에 빌려주는 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 18만9000t ▷2021년 58만2000t ▷2022년 94만3000t의 물량을 직수입사가 가스공사에 빌려줬다. 또 2022년 러-우 전쟁의 여파로 LNG 수급대란이 일어났을 때 직수입물량 총 50만t 규모를 가스공사에 판매하기도 했다.

[헤럴드경제 DB]

정 교수는 “과거 독점구조의 경직적인 시장에서 (LNG 수입에) 유연성을 준 것이 직수입”이라며 “세계가스 시장이 미국 셰일가스 등장 등으로 더욱 유연화되고 있는데 직수입 제도를 더욱 확대해 경쟁력 있는 LNG를 도입하는 것이 국민경제에는 물론,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가 연탄에서 도시가스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스공사 등이 역할을 잘해서 아주 부드럽게 넘어왔고 이제는 시장이 더욱 진화하고 있다”며 “문제는 그 당시에 입었던 옷(가스공사 시스템)이 조그마한 초등학생 옷이었다면, 이제는 덩치가 커져 고등학생이 되고 외부환경도 추워졌는데 예전의 옷을 그대로 입겠다고 하다 보니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 교수는 무탄소 전환의 가교로서 성장성이 큰 LNG를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스공사와 민간 발전사가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을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상호 협업을 통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글로벌 LNG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영국 에너지기업 셸이 최근 발표한 ‘LNG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까지 글로벌 LNG 수요는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을 필두로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석탄에서 천연가스로의 산업용 에너지원 전환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가스시장 발전방안 좌담회’에서 “직수입이 한전의 전력구입 비용을 1조1000억원어치를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정 교수는 “체리피킹과 같은 모순된 주장이 민간 발전사와 가스공사를 대립적 구도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는 서로의 롤(역할)을 찾지 못한 채 조그마한 파이를 가지고 누가 더 차지하느냐의 싸움을 시키는 꼴”이라며 “민간과 가스공사가 상호 협력해 해외자원개발을 하거나 LNG 관련 기술을 개발해 해외에 진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도 “천연가스는 무탄소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브릿지 연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정부가 민간은 물론 가스공사에도 유연하게 사업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주면 민간과 가스공사가 함께 성장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한국도 싱가포르를 대신할 동북아의 LNG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에너지 자원 경쟁력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우리나라만큼 높은 일본이 지속적인 해외자원개발 추진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한국과 비슷한 약 94% 수준이며, LNG 수입량만 비교하면 더 많다. 그러나 일본이 안보와 전략물자 차원에서 해외자원 확보에 적극 나서면서 현재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021년 기준 우리나라(11%)보다 29%포인트 높은 40%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게다가 일본의 미쯔이, 미쯔비시 등 에너지 기업은 LNG 포트폴리오 회사로서 유사시 공급을 결정할 수 있는 물량을 보유하고 트레이딩 사업을 통해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손 교수는 “세계 가스시장에서 우리의 역할은 왜소한 데, 우리나라만큼 수요를 가지고 있으면 그 수요를 기반으로 더 나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LNG 시장을 확장해 민간 기업이 LNG 포트폴리오 사업자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yuni@heraldcorp.com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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