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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사전청약 본청약 약속 절반도 못지켰다…거세지는 무용론 [부동산360]
사전청약 공공주택 7398가구 본청약 일정 연기
집값 하락·고금리에 사전청약 당첨자 무더기 이탈
민간 사전청약 45개 단지도 본청약 줄줄이 밀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정부가 조기 주택 공급 효과를 위해 도입한 사전 청약 제도가 예정된 본청약 일정을 지킨 비율이 절반을 채 넘기지 못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사전청약 제도가 곳곳에서 파행을 빚으며 제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청약 일정이 줄줄이 연기된 것은 물론, 추정 분양가보다 확정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사전청약 당첨자가 대거 이탈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공사비 급등, 고금리 지속 등이 맞물리면서 민간 사전청약 아파트 중 처음으로 사업을 취소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전면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헤럴드경제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전청약 주택 공급 계획을 분석한 결과 정부는 2021년 7월부터 현재(올해 1월 22일)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95개 단지 5만425가구의 사전 청약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15개 단지 7398가구의 본청약 일정이 예정일보다 연기되면서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예정대로 본청약을 완료한 지구는 12개 단지 6611가구, 본청약 일정을 앞두고 있는 지구는 68개 단지 3만6415가구다.

이 분석대로라면 본청약 일정이 도래한 1만4009가구 중 예정대로 사전청약을 진행한 단지가 6611가구에 불과해, 본청약 이행률은 47%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53%가 본청약 일정이 밀린 것이다. 이에 남은 3만6415가구 또한 본청약 일정의 지연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사전 청약은 일반적으로 착공 시점에 하는 청약을 1~2년 전 앞당겨 하는 제도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적용했다 흥행에 실패하며 폐기된 제도였다. 사전청약 후 본청약 시기까지 수년이 걸려 본래 취지와 달리 시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젊은 층의 ‘패닉 바잉(공황 구매)’를 잡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이 제도를 되살렸다. 당시에도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본청약 예정일을 맞추지 못한 단지는 수개월 이상 일정을 미룬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본청약 예정이었던 인천계양 2개 단지(A2·A3)는 건설사업관리(CM) 업체 선정이 2회 유찰되면서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오는 3월 감리 용역을 선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또다시 유찰될 경우 2026년 초로 예정됐던 입주일은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본청약 일정이 도래했던 남양주진접 4개 단지(A1·3·4, B1)는 문화재 발견, 의왕월암(A1·3)는 법정보호종 맹꽁이 발견으로 미뤄졌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연합]

공공아파트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무더기로 이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실시된 공공 사전청약 4만4352가구 가운데 실제 본청약 신청자수는 2819명(6.4%)에 불과했다. 아파트 값이 고점을 찍었던 2021년 시세를 기준으로 추정 분양가를 책정했지만, 집값이 하락하면서 주변 시세와 비슷해지는 현상이 발생해 가격 매력이 떨어져서다.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도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2021년 11월 공공분양 아파트를 대상으로 시행하던 사전청약 제도를 민간 아파트로 확대했다. 그러나 건설사들의 참여가 저조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지자체 인허가 지연, 공사비 급등에 시장 침체까지 겹치면서 자금줄이 말라버린 건설사들은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심우건설은 사업성 저하를 이유로 인천 서구 가정2지구 ‘우미 린’ 사업 취소를 결정했다. 민간 사전청약 단지 중 사업을 중단한 첫 사례다.

현재 전국적으로 민간 사전청약이 진행 중인 곳은 45곳이다. 본청약 일정이 도래한 단지는 29곳인데, 이 중 일정대로 본청약을 실시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본청약 예정일을 수개월 넘긴 후에야 확정한 곳은 12곳이다. 나머지는 본청약 일정이 잡히지 않아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우미 린과 비슷한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청약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서진형(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 경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수요자 입장에선 분양 가격, 입주 시기 등 정해진 것이 없어 불확실성이 크고 분쟁의 소지가 있어 꺼릴 수밖에 없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공사비 급증, 지자체 인허가 지연 등 사업이 지연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커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2021년 사전청약을 전면적으로 확대해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이미 사회에 정착된 선분양 제도의 경우 분양가와 입주 시기가 확정되고, 건설사가 수분양자에게서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사업비로 활용할 수 있어 자금조달 부담이 적다”고 했다. 그는 “반면 사전청약은 정해진 것이 없고,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않아 공급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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