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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복 점포, 창고로 전락한 지 오래”…공장 가동률도 ‘뚝’ [저출산 0.7의 경고]
남대문 아동복 전문매장 가보니 30%가 공실
제조업 생산량 ‘뚝뚝’…대형마트 매출도 반토막
‘발등에 불’ 떨어진 중소업체들…정부는 뒷짐만
남대문 시장 한 아동복 전문 매장 내부. 문을 닫은 점포가 창고로 변했다. 김벼리 기자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입점 준비 중’.

11일 점심 무렵 남대문 시장 아동복 전문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2~3평 정도 크기의 점포들이 빼곡했다. 매장과 매장 사이 아동복과 액세서리 등 제품 사이로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대략 4~5개 점포를 지날 때마다 1개 점포가 공실이었다. 벽에 붙은 ‘입점 준비 중’ 표지판이 공허한 느낌을 줬다. 일부 공간에는 비닐에 싸인 제품들이 쌓여있었다. 공실 매장은 그렇게 먼지만 쌓이는 창고로 전락했다.

통로를 지나며 숫자를 세어보니 190곳 중 60곳이 빈 상태였다. 주변 상인들은 재작년부터 공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매장 책임자 김모 씨는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문을 닫는 매장이 순식간에 늘었다”면서 “남은 가게들도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다들 (폐업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곳에서만 40년간 아동복을 판매한 70대 이모 씨는 ‘매출이 얼마나 떨어졌냐’는 질문에 “매출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이도 손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보다 지금이 훨씬 힘들다”면서 “손님이 없는 지금처럼, 주말에도 찬바람만 분다”고 했다. 실제 30분 동안 이 가게를 지나친 손님은 2명에 불과했다. 20년 넘게 아동복 장사를 한 김모 씨도 “가게에 있는 물건을 판매하러 나온다기보다 임대료를 내니까 그냥 나오는 날이 많다”며 “언제까지 (장사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국내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유아용품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다. 국내 부부 한 쌍이 낳는 아이 수가 평균 1명도 안 되는 숫자다. 내년에는 이 수치가 0.68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아용품 판매량은 날이 갈수록 계속 감소세다. 제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는 유아용품과 관련된 모든 산업군의 경영환경도 ‘악화일로’다. 남대문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10년 뒤에는 유아용품을 팔던 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며 “지금 장사하는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계속 한다”고 토로했다.

[헤럴드경제DB]

유아용품 제조업계의 어려움은 여러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인형·장난감 제조업계의 생산능력지수는 2015년 11월 123.7에서 지난해 11월 66.4(잠정치)로 8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능력이란 사업체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생산할 때 최대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을 말한다. 가동률은 같은 기간 95%에서 92.2%로 떨어졌다. 생산액 역시 2003년과 2019년 사이 각각 3705억원에서 2806억원으로, 과 사업체 수는 219개에서 69개로 줄었다.

영유아식 제조업도 어둡긴 마찬가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영유아식 업계의 생산량은 2016년 6만5815t(톤)에서 2020년 2만8934t으로 4년 만에 56% 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생산액은 3013억원에서 2607억원으로 떨어졌다.

유통사의 유아용품 매출도 추락하고 있다. A 대형마트의 경우 2021년 대비 지난해 유아패션 용품 매출은 5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유·이유 용품은 23.8% 줄었고, 베이비 스킨케어·세제와 기저귀도 각각 11.2%, 8.1%씩 감소했다. B 대형마트도 2018년 대비 지난해 유아용품 매출이 10% 역신장했다. 같은 기간 C 백화점은 유아동 카테고리 매출은 4% 줄었다.

특히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 제조사와 유통업자의 고충이 크다. 일부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생산라인을 성인 제품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마저 임시방편일 뿐이다. 부진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업체도 점점 늘고 있다.

[헤럴드경제DB]

금천구에서 유모차 장식품과 어린이용 물놀이 용품을 만드는 한 봉제공장은 재작년부터 7~9월에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있다. 직원도 절반만 출근한다. 최근 판매량이 줄어든 데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급격히 생산량을 줄인 것이다. 공장 관계자는 “재작년 매출이 전년 대비 20%가량 줄었다”며 “일부 제품을 성인용으로 대체해 수급을 조절하고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유아용 특수 의류를 제작해 판매하는 다른 제조사도 재작년 판매량이 급감하자 지난해 발주량을 약 85% 줄였다. 이 회사는 중국과 방글라데시 등 해외 공장에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만든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로 들어온 제품은 물류창고에 먼저 입고되는데 재작년부터 판매가 줄면서 재고가 아직도 많이 남은 상태”라며 “그만큼 발주를 줄였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유아 시장의 상황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정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심지어 업계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 유아용품 업계를 따로 분류하지 않았다. 관련 통계나 별도의 관리도 진행 중인 것이 없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마찬가지다. 중앙회 관계자는 “유아용품 관련 중소기업협동조합이 따로 없어 현황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전 중소기업학회장)는 “저출산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브랜드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도 상황은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전반적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유아 제품과 관련된 중소기업에 대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사업 전환 등 여러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마포구 한 대형마트에 장난감들이 진열돼 있다. 김벼리 기자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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