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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유 보냈더니 국어가 안돼”… 학원들 배만 불렸다[문해력 붕괴 세대]
‘영어유치원’ 출신 아이들, 이제는 국어학원으로 ‘뺑뺑이’
말 배울 나이 영어·국어 함께 배운 후유증… ‘글자 거부’ 부작용도
서울 용산구 소재 독서논술학원에서 학생들이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이곳 학생 대부분은 영어유치원 출신이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안효정 기자] #.지난 12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독서논술학원. 이곳에 다니는 학생 150여명 중 대다수는 영어유치원 출신이다. 이날 토론수업에선 13세 초등생 3명과 12세 1명이 “뱀이 개구리를 ‘통째로’ 삼켰다가 맞아, ‘통채로’ 삼켰다가 맞아?”란 질문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이 학원엔 올해 영재교육원에 진학한 중학생도 있다. 이 학원 A원장은 “영어는 참 잘하는데 막상 한글을 몰라 오는 상위권 친구들도 많다”며 “수업을 하면 다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한다”고 했다.

“영유 출신들 따로 논다는데…한글 못 뗐지만 어쩔 수 없어요”

한 아이가 영어 알파벳 그림표를 바라보고 있다. [123RF]

사회 전반의 문해력 저하 현상 이면엔 조기 ‘영어교육’ 열풍 영향도 있다.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유아기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다 한글 습득마저 느려지며 이중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최근 언어치료센터엔 조기 영어교육 이후 한글과 영어 모두에 부진해 ‘글자 공포’를 호소하는 청소년도 많다.

10년째 독서논술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문해력 저하 추세를 절감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한글을 마치 외국어처럼 받아들인다. 문제를 주면 직접 읽고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직접 읽고 해석해주세요’라고 말해오곤 한다”며 “보고 읽는 것이 아닌 듣는 것에 훨씬 익숙해진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운영 초기와 비교하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수준이 확연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영어·국어 사교육 병행은 최근 학부모 사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조기 영어교육을 시작한 자녀의 한글 습득이 늦어져 불안을 느낀 학부모가 논술학원을 함께 보내는 식이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이모(35)씨의 6세 자녀는 현재 월180만원인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영어 과외도 진행할 생각이지만, 최근 이씨는 국어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이씨는 “아이가 ‘highway’는 아는데 ‘고속도로’는 모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영어교육에만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 수능 국어도 어려우니, 결국엔 국어로 판가름난다는 생각이 들어 국어도 놓칠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유모(41)씨는 내년부터 4세 자녀가 다닐 영어유치원을 미리 등록하고, 현재 주2회씩 독서논술학원을 보내고 있다. 유씨는 “요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영어유치원 출신들만 모여서 논다고 들었다”며 “한글도 제대로 다 떼기 전에 영어부터 공부시키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어쩔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영어·국어 동시 사교육에 ‘글자 공포’ 호소도
용산구의 독서논술학원에서 7세 학생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박혜원 기자

영어 교육을 받다 ‘글자’ 자체에 거부감을 호소하며 언어치료센터를 찾는 학생들도 늘었다. 7세 A양은 영어유치원에 다니다 돌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학생을 맡았던 혜원인지학습발달센터 황리리 원장(교육학박사)은 “정서적 불안과 학습 거부가 심해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진행했다”며 “영어교육을 일찍 받으면서 글자에 대한 공포심 자체가 커져 치료를 받는 학생들이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역시 조기 영어교육과 문해력 저하에 연관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국어를 통해 스스로 체계적 생각을 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유치원부터 다니는 건 자연스러운 언어 학습 과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유미 호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영어유치원을 다닌다지만 실상은 깊이 있는 대화가 아닌 ‘thank you’ 정도의 토막 영어 수준”이라며 “사실 유아기에는 사고의 기틀을 잡고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한국어로 해도 쉽지 않은 것이라, 소중한 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문해력과도 연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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