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은행이 30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석달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지난달 3.8%까지 올랐지만, 높아진 경기 부담에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7차례 연속 묶어뒀다.

실제 한은은 이날 함께 낸 경제전망에서 종전 전망치보다 물가는 더 오르고 경기는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수정했다. 특히 올해 1%대 저성장에 이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2.2%에서 2.1%로 소폭 낮췄다. 하향 폭은 작지만, 사실상 잠재성장률 2.0% 수준의 저성장이 예고된 셈이다.

동시에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5%에서 3.6%로 올려잡고, 내년에도 2.6%로 기존 예상치(2.4%)보다 상향했다.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불확실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진 가운데, 통화정책의 움직임도 제한되게 됐다. 이에 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를 올리기에는 경기가 힘에 부친단 판단에 ‘긴축적 동결’ 기조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사실상 금리 인하 시점은 더 늦춰지게 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3.8% 상승했다. 지난 8월 3.4%, 9월 3.7%에 이어 더 높아지면서 7개월만의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작년 7월 6.3%를 정점으로 올해 7월 2.3%까지 내려온 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으로 3%대에서 고점을 높인 셈이다.

한은은 물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3.6% 내년 2.6%로 예상되면서 연간물가상승률 2.1%로 전망되는 2025년이 돼야 물가안정목표 2.0% 수준에 닿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물가가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코로나19 이후 경기를 밀어올렸던 소비의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용 견인 인플레이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을 오히려 깎아 먹으며 나타나는 인플레라는 것도 유의점이다.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억제되지 않는 상황도 통화정책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한은 ‘2023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2분기 말(3월 말·1861조3000억원)보다 0.8%(14조3000억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을 뜻한다. 가계신용은 지난해 4분기(-3조6000억원)와 올해 1분기(-14조4000억원) 잇따라 감소했지만, 세 분기 만인 2분기(+8조2000억원) 반등한 뒤 3분기에 다시 새로운 정점을 기록했다.

문제는 금리 인하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계 취약차주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빚을 갚기 어려운 이들이 늘어난 가운데 과거와 비교해 높은 금리를 내년 상반기까지 정면으로 견뎌야 한다. 이미 자영업자 등 일부 계층은 한계에 직면했다.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시도별 자영업 다중채무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6월) 현재 전국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743조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치다. 작년 2분기 말(700조6000억원)과 비교해 6.2% 늘었다. 1년 사이 연체액(13조2000억원)과 연체율(1.78%)은 더 크게 뛰었다.

실제로 자영업자 이자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통합서비스(MDIS)로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이자비용은 2분기 22만1000원을 기록했다. 1분기 16만8000원에서 5만3000원이 늘어났다. 두번째로 이자비용이 많이 증가한 계층도 자영업자였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나홀로 사장)’의 이자비용은 10만9000원에서 12만4000원으로 1만5000원(13.7%) 불어났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과 부채 부실 위험이라는 딜레마 속에 갇힌 셈이다. 현재는 상방도 하방도 ‘룸(여력)’이 없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동결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금리를 높이자니 금융부실이, 낮추자니 물가가 우려되기 때문에 현재 금리는 3대 거시경제 정책 수단 중 사용할 수 없는 수단이 됐다”며 “증권가에서 5월 미국 금리 인하를 말하는데 일부 학계에서는 내년 하반기가 돼야 인하가 가능하다는 관측도 있고, 결국 내년 물가를 봐야 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내년 금리는 가봐야 아는 것이다”며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상황 속 ‘올릴 수 있다’고만 하는데, 립서비스로 기대 인플레를 잡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