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13곳 중 6곳 野 단독 의결
尹 대표 예산 줄이고 李 예산 증액
법안 처리도 ‘증오·이념 대결’ 계속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임기를 6개월 앞둔 21대 국회가 여전히 ‘협치’ 대신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거대 의석을 지닌 더불어민주당의 연이은 예산 단독 삭감과 이에 대한 여당의 반발로, 마지막 정기국회 예산 정국에서 여야의 충돌은 절정에 다다랐다. 법안 처리를 둘러싼 민주당의 강행과 정부·여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의 반복 진통도 끊이지 않고, 장관·검사 등에 대한 탄핵 추진 등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국면이 얼어붙고 있다. 아울러 정책 경쟁 대신 상대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기대는 모습 역시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무관심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증오’가 들어서면서 21대 국회 역시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6일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중 내년도 예산안 예비 심사를 마친 곳은 총 14군데로, 이 중 절반에 달하는 6곳에서 민주당의 단독 의결이 이뤄졌다. 민주당이 단독 의결한 상임위는 ▷행정안전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이다.
이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 예산 심사가 이처럼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는 이유는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헌법에서 규정한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마치 자기들에게 예산편성권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청년 관련 예산과 당 대표의 과거 대선 공약일지라도, ‘윤석열’만 붙으면 무조건 반대에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사업 예산인 원전 예산 1814억원과 청년 취업 예산 2382억여원을 전액 삭감한 반면, 이른바 ‘문재인·이재명 표’ 예산인 신재생에너지 예산 4501억원과 지역 화폐 예산 7000억원은 대폭 증액했다. 민주당이 삭감한 원전 사업 예산에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후속 사업이자 이재명 대표의 대선 당시 공약이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예산도 포함됐다. 민주당은 또한 국토교통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의결하면서, 이재명 대표의 제안인 ‘3만원 청년패스’ 사업에 대해 약 2900억원을 책정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부자 감세’를 바로 잡고 삭감된 ‘민생 예산’을 복원한 것이란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지난 정부 때 편성된 올해 예산안 중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6000억여원을 전액 삭감했지만, 민주당의 반발로 3500억여원이 반영됐다. 올해 역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전액 삭감해 ‘0원’으로 제출했고, 민주당은 단독 의결을 통해 이를 증액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당연한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해 먼저 나서도 모자랄 판에, 정부·여당은 민생을 위한 예산은 삭감하고 야당이 이를 바로잡는 뒤바뀐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다”며 “정부·여당이 국민의 속 타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초부자 감세와 긴축재정 기조를 더 이상 고집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린 가운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고 있다. 이날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국민의힘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포기하고 퇴장했다. 이상섭 기자 |
상임위별 예산안 예비 심사에서 ‘전액 삭감’, ‘보복 삭감’, ‘단독 증액’ 등 여야의 타협 없는 일방적 처리 모습에 일각에선 양당 모두 총선을 앞두고 진영 논리에 기반해 강성 지지층의 표심을 겨냥한 예산 심의 방침을 세웠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증오와 이념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을 과반 의석을 통해 본회의까지 통과시켰지만, 결국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대상 법안이 돼 폐기됐고 후속 입법에 나섰다. 민주당은 또한 지난 9일 본회의에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2·3조를 개정하는 ‘노란봉투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개정하는 ‘방송3법’을 사실상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 역시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과 여당의 거부권 건의가 반복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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