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 7년
200명 혐한 시위, 3명 규모로 줄어
지자체 ‘외국인 차별 금지’ 조례도 연달아
“한국, 다문화 공생 위해 미리 준비해야”
일본 법무성이 올해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7년을 맞아 시행한 인식 개선 캠페인. '차별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길에 걸려있다. [법무성 홈페이지 캡처] |
[헤럴드경제(가나가와)=박지영·안세연 기자] #. 지난달 9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市) 일본철도(JR) 가와사키역 앞.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역 앞에 검은 두건을 쓴 한 남자와 검은 양복 차림의 또 다른 남성이 번갈아 마이크를 넘기며 소리치고 있다. 경찰이 친 경계선 바깥에는 우비를 입은 남자가 두 남자의 발언에 맞춰 북을 두드린다. 1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간간히 “맞다”며 맞장구를 친다. 지나가던 시민들 대다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겨 역으로 향한다.
세 남자의 정체는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히노마루(일장기) 거리 시위 클럽(日の丸街宣倶楽部) 회원이다. 가와사키시 등 일본 일부 지역에는 여전히 외국인 혐오 시위가 일어나지만 2013~2016년 혐한 시위 규모와 비교하면 크게 쪼그라들었다. 2016년 통과된 헤이트스피치해소법(본국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외국인 차별·혐오 방지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시바시 가쿠(52) 가와사키 신문 편집위원은 이민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 또한 다문화 공생을 위해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관련 법 등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시바시 기자는 17년 전부터 일본 내 외국인 차별·혐오 문제를 취재해온 전문가다.
지난 13일 이시바시 가쿠 가와사키 신문 편집위원이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
재일 한국인이 많은 가와사키시는 한때 혐한 가두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다. 2016년 1월에는 2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재일 한국인이 모여사는 사쿠라모토 마을 앞을 찾아 위협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르다. ‘흥미’로 외국인 혐오 시위에 가담하는 시민은 더이상 없다는게 이시바시 기자의 전언이다.
이시바시 편집위원은 “히노마루 클럽의 시위 규모는 계속해서 작아지고 있다. 2021년에는 1년 동안 28회를 했지만, 올해는 6회에 그쳤다. 주도 참가 인원도 3명까지 줄어들었다”며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가와사키시의 조례,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은 2010년대 초반 혐한 시위가 일본 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만들어졌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그 자녀에 대해 차별적 언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추진할 의무도 담았다. 일본 법무성을 올해 법 제정 7년을 맞아 ‘차별은 용서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거리 광고를 게시하기도 했다.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된 이후 일본의 지자체는 조례를 만들어 내용을 구체화했다. 가와사키시는 2019년 외국인 혐오 발언에 벌금 50만엔(한화 약 45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에서 혐오발언 형사처벌을 규정한 지자체는 가와사키시가 유일하다. 이시바시 기자는 “폭력을 조장하는 발언, 바퀴벌레 등에 비유해 비하하는 발언,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발언 등 3가지를 연달아 말하면 벌금 대상”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 조건을 한정 지었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시바시 기자는 법과 조례가 다문화 공생으로 가는 분명한 한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조례가 통과된 이후 재일 한국인이 사는 사쿠라모토 마을의 한 할머니가 ‘이제야 가와사키시의 시민이 된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며 “법과 조례는 공생으로 하는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제한된 내용의 법이라도 외국인들의 사회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된지 7년이 지났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다시 외국인 혐오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갈등의 불씨도 살아나는 모습이다.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市)에는 최근 터키에서 건너온 쿠르드인을 반대하는 집회가 규모를 키우고 있다. 지난 9월 22일 40명 규모였던 쿠르드족 반대 시위 참여자는 지난달 9일 8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일본의 룰을 지키지 않는 쿠르드인 강제 송환’, ‘치안 악화’ 등 플래카드를 들고 발언을 이어갔다.
이시바시 기자는 외국인 혐오 발언 조례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일본의 해결 과제로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 또한 외국인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혐오 시위가 (조례가 없는 곳으로) 옮겨다니는 것은, 바꿔 말해 법과 조례 없이는 일본인과 외국인이 동등하게 공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일본의 경험을 거울 삼아 한국은 미리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곧바로 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를 만드는 등 차근차근 밟아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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