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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열했던 내삶 마지막집 ‘멋진할아버지집’…자서전이 된 건축 [건축맛집]
이기철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주 자서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어울리는 집을 구현
카페 ‘투트라이앵글’ 개별 전망들이 각자의 존재감 가질 수 있게
부산에 어울리는 2.7미터의 발코니…홈파티 공간으로 활용
‘멋진할아버지집’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집을 짓다 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집을 짓는 과정은 고민해야 할 것이 넘쳐나고 고생스러운 과정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부지는, 규모는, 설계는 누구에게 등의 굵직한 것부터 콘센트 위치, 수전, 손잡이 색깔 등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산더미다. 거기에 집은 건축주의 삶의 방식, 성향, 기질까지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건축가를 만났다.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10여 번의 미팅과 60회가 넘는 감리 등을 거쳐야 합니다. 집주인이 원하는 공간, 삶의 경험, 주변과의 관계 등이 건물에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품을 들여야 하죠. 건축주의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 놓고서야 결국 건축이 시작됩니다. 더욱이 집은 살아가는 공간인 만큼 디자이너가 ‘살아가는 이’의 삶의 방식에 대해 깊은 교감을 거쳐야만 진정한 의미의 집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기철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설계를 의뢰받으면 클라이언트의 살아온 과정을 듣는다. 경상남도 김해 시골 마을에서 은퇴 후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건축주의 바람을 담고 있는 ‘멋진할아버지집’도 평범한 대화에서 시작됐다. 커피를 가운데 놓고 나눈 사소한 대화 속에서 만들어진 ‘멋진할아버지집’은 지난해 아시아건축사협의회(ARCASIA)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건축가가 이 시상식에서 부문별 1위에 해당하는 골드메달을 받은 것은 2016년 이후 6년만이었다.

건축주와 이 대표는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시골집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건축주는 촌집에서의 유년 시절, 마도로스를 꿈꾸며 바다를 누볐던 항해,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40대까지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머릿속으로 건축주의 자서전을 쓰며 건축 전문가로서 그에게 어떤 집이 어울릴지 고민한 결과다.

투박한 시골집이지만 아파트처럼 편안한 기능성 또한 놓칠 수 없었다. 이에 한국건축이 가진 불필요한 장식들을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서구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이 대표는 “베이비부머 세대인 건축주는 시골집의 감성과 추억을 원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시골 촌집’을 강조했다”면서 “편의성을 위해 툇마루는 개별공간들과 만나 테라스로, 처마는 차양 역할을 하며 기와 지붕은 골강판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는 생활공간, 취미공간, 명상공간 세 개의 개별된 독채공간을 마련해주길 원했다. 안채와 별채를 적당한 거리로 나눠 긴 지붕 아래 하나로 연결시켰다.

특히 33㎡쯤 되는 취미공간은 시골집에 놀러 오는 손님들의 게스트룸 역할도 해줘야 했다. 이에 취미공간 내부는 전통 미닫이 창호를 밀고 닫음으로써 공간을 변화시켜 여러 가지 활동이 가능하게 했다. 미닫이를 여는 방향에 따라 악기수납장이, 서예도구장이, 국선도를 할 때는 미닫이를 활짝 열어 개방감을 줄 수 있게 했다.

‘멋진할아버지집’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김해는 전통적인 대나무 산지로 부지 인근 상동면 무척산 일원에는 대규모 대나무 군락지가 위치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건물 역시 외관이 탄화된 대나무로 둘러싸여 대나무 숲을 연상시켰다. 콘크리트 외관에 대나무를 고정했는데 질감이 거칠고 무채색인 콘크리트 벽돌 사이로 이끼가 자라나면서 세월의 흔적까지 엿볼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수수한 재료는 자연상태에서 많이 다듬어지지 않은 재료입니다. 멋진할아버지집의 건축적 의미를 배가시키는 재료는 이런 수수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건축주와 함께 인근 대나무숲을 찾아 답사 후 건물 외관에 쓰일 나무 하나하나를 선별한 후 작업에 임했습니다.”

지난 9월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건축상과 지난해 울산광역시 건축대상을 수상한 카페 ‘투트라이앵글’은 찾는 이들에게 압도하는 바다 전망을 선보인다. ‘멋진할아버지집’과는 다르게 한두 명의 삶의 공간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찾는 곳. 이 대표는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인상적인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울산 바다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한 ‘투트라이앵글’은 동쪽으로는 망망대해가, 남쪽에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이 보이는 작은 항구가 위치한다.

두 대비되는 전망 모두를 담기 위해 각각의 전망에 하나씩의 삼각형을 마련했다. 두 개의 삼각형이 모여 사다리꼴을 만들면서 동남쪽의 바다뷰를 모두 바라볼 수 있게 배치했다.

‘투트라이앵글’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이 대표는 공간에 들어와 바다를 바라보는 손님들의 순간, 순간이 더욱 극적으로 고조됐으면 했다. 이를 위해 복도와 계단은 채광을 위한 천장을 제외하고는 외부를 볼 수 없다. 특히 동선의 마지막, 계단식 좌석으로 구성한 극장형 공간(오션 시어터)은 이전에 아래층에서 경험한 바다뷰 스케일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폭 23.4m, 높이 9.3m, 두께 25mm의 스틸커튼월로 바다 풍경의 클라이막스로 전체 여정을 마무리하게 했다.

이 대표는 “마치 검은 화면-풍경-검은 화면-풍경이 반복되는 영상을 시청하는 것처럼 개별 전망이 각자의 존재감을 느끼게 했다”면서 “동선들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교차하게 연결해서 여러 루트를 만들어 고객들이 풍경의 순서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손님들은 다음에 펼쳐질 극적인 뷰를 기대하며 장소를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외관에서 건축물을 봤을 때는 인공 구조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인다. 바다와 실내의 경계선을 지우기 위해 노출콘크리트와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용해 단조로운 외관을 연출했다. 공간마다 서로 다른 마감 방식을 사용해 같은 콘크리트지만 시선에 따라 다른 질감과 분위기가 느껴진다.

‘투트라이앵글’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이를 위해 건물로 향하는 출입구의 전면은 매끈한 콘크리트의 표면을 공구, 기계, 고압수 등으로 거칠게 만들어 표면적을 늘리는 치핑콘크리트 공법을 사용했다.

부산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부산에만 어울리는 공동주택을 만들고 싶었다. 해운대 공동주택은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부산시민들에게 발코니 라이프를 강조하는 형태의 주거문화를 선보이고자 했다. 조만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대표는 “미국의 경우 뉴욕과 마이애미는 다른 날씨만큼이나 집의 구조부터 외관까지 큰 차이를 나타낸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과 부산의 집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면서 “1년에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부산에서 이 지역 날씨에 어울리는 집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아파트 발코니의 폭을 2.7m로 확장했다. 일반 아파트의 두 배에 가까운 폭을 가진 발코니는 식탁을 가운데 놓고 양쪽으로 앉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여유롭다. 발코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거실 앞 발코니에 가스설비도 배치해 홈파티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 나머지 두 개의 발코니를 이용해 카페로도, 홈짐(gym)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해운대 공동주택.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에게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의 미적감각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미적감각을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꾸준히 찾아내고, 구조물에 표현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건축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솔한 자신의 얘기를 꾸준히 저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듣고 시각화 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이죠. 건축주의 일반적인 니즈를 반영하는 것에서 뛰어 넘어 삶의 철학까지 투영해주는 건축물을 짓고 싶습니다.”

이기철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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