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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공익법인 ‘다문화 공생’ 협력 30년…법률 상담, 의료 통역까지[저출산 0.7의 경고-일본 이민을 보다]
시즈오카현 국제교류협회 가보니
법률 상담, 의료 통역, 일본어 교육 등 밀착 마크
다문화공생사업 주체는 지자체
공익법인 위탁 사업으로 실행력 키워
하마마쓰 국제과 직원 40%가 외국인
시즈오카현 국제교류협회(SIR)가 진행 중인 외국인 대상 일본어교육사업이 진행 중이다. [SIR 제공]

[헤럴드경제(시즈오카)=박지영·안세연 기자] 지난달 11일 찾은 일본 시즈오카현 국제교류협회(SIR) 사무실. 어두운 표정의 중국인 A씨가 협회 문을 열었다. 일본에 온 지 6개월 만에 금전적인 부분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SIR에서 한 달에 2번 외국인 대상 법률상담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중국어 전문통역사와 변호사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40분 후 사무실을 나서는 A씨의 얼굴은 한결 후련해진 모습이었다. 기자와 만난 A씨는 “일본어가 서툴러 상황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당장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자국 내 외국인 거주를 환대하지 않던 일본이 변했다. 인구감소대책으로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의 ‘공생’을 위해 근로·생활·법률·교육 등 다방면에서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지방자치단체와 공익법인 주도의 ‘밀착 지원’이다.

지자체 손잡고 34년 노하우 축적

SIR은 1989년 시즈오카현(県)과 시즈오카시(市)의 재정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34년간 지자체와 협업해 취업 지원, 일본어 및 문화교육, 법률·의료상담 등 다문화 공생을 위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재원 대부분은 현과 시의 기탁금에서 온다. 현재 9억2000만엔(약 82억원)의 예금에서 나오는 이자로 운영된다. 최근에는 일본어교육사업 등 현·시 위탁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금도 유용한 재원이다.

SIR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상담이다. 일본에서 살며 겪을 수 있는 각종 분쟁에서 외국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변호사 외에도 한 달에 2번씩 노무사, 행정사, 입국관리국 관계자 등을 불러 총 8회 분야별 무료 상담을 진행한다.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등 8개 언어 통역도 지원한다. 대면상담, 온라인상담 모두 가능하다. A씨를 상담한 변호사 B(46)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무료 상담을 오는데 외국인들도 많은 법률 문제를 겪는다.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가 책임을 떠안은 사례, 인터넷 투자 사기를 당한 사례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가야마 이소코 시즈오카현 국제교류협회(SIR) 사무국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SIR이 처음부터 ‘공생’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가야마 이소코 SIR 사무국장은 “초창기에는 일본인과 외국인의 교류의 장을 만드는 사업을 주로 진행했다”며 “오래 사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쓰레기, 소음 등 생활·문화 부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2007년 SIR 중점사업으로 ‘공생’ 부분을 만들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즈오카현은 정주 외국인 비율이 66.8%로, 일본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도 가장 높다. 정주 외국인은 정주 비자(재류자격)를 소지한 자다. 정해진 기간에 맞춰 비자를 갱신해야 하지만 취업에 제한이 없어 영주권에 근접한 자격이다. 정주 외국인이 많은 시즈오카현 특성상 장기간 거주를 전제로 한 시책의 필요성이 더 컸던 셈이다.

SIR은 최근 ‘정주 외국인 정사원(정규직) 고용촉진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야마 사무국장은 “정주 외국인과 그들의 2세, 3세가 자립할 수 있도록 경력관리를 돕는 것이 목표”라며 “일본에 10년, 20년 살 사람이라면 매년 월급이 인상되고 일자리를 보장받으며 퇴직금도 받을 수 있는 정사원이 되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 또한 외국인들이 장기적으로 회사를 책임지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일본인과 동등하게 인식해야 한다. 기업과 외국인 모두를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현 단위 공익법인으로서 선도 모델을 발굴하는 것도 SIR의 역할이다. 의료통역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SIR은 2014년부터 시즈오카현 거점 병원 일부에 의료통역사를 파견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와 의사소통이 어려울 경우 병원이 SIR에 연락, 통역사를 부를 수 있다. 비용은 병원이 지불한다. 의료통역사 양성을 위한 연수회도 개최했다.

지역 주도 ‘보텀업’ 정책
지난 1월 일본 군마현 오이즈미정에서 열린 외국인집주도시회의에서 ‘오이즈미정 브라질인 학교’ 학생들이 전통춤 공연을 하고 있다. [외국인집주도시회의 홈페이지 캡처]

지역 주도의 촘촘한 밀착 지원은 일본 다문화 공생사업의 특징이다. 인구감소로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지역을 중심으로 다문화 공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국제교류협회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1년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市)를 중심으로 13개 도시가 모여 결성한 외국인집주도시회의(外国人集住都市会議)가 시발점이다. ▷공립학교에서 일본어 지도 내실화 ▷취학 지원 강화 ▷의료보험 검토 ▷외국인 등록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실제 총무성, 법무성, 외무성, 문부과학성, 후생노동성, 문화청, 사회보장청 등 7개 정부 부처가 받아들여 일본 다문화 공생 정책의 기반을 닦았다. 외국인집주도시회의는 해마다 열려 올해까지 23개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도시 간 네트워크이자 정책 싱크탱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게야마 유리나 하마마쓰시청 국제과 주임이 지난 10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세연 기자

개별 시 차원의 노력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2007년 세계도시화 비전을 세운 하마마쓰시는 2012년부터는 ‘다문화 공생도시 비전’으로 이름을 바꿔 5년마다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발표된 제3차 다문화 공생도시 비전(2023~2027년)은 ▷지원사업 디지털 전환 ▷일상생활 지원 체제 구축 ▷외국 인재 활용 촉진 ▷재해·위기관리 체계 강화 등 4개 시책을 중점 목표로 삼았다.

가게야마 유리나 하마마쓰시청 국제과 주임은 “외국인 지원사업을 30년 정도 하고 나니 ‘공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같이 생활하기 위한 방법을 꾸준히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고민은 국제과 구성에도 녹아들었다. 전체 직원 12명 중 5명이 외국인이다. 브라질인 3명과 영국인 1명, 아일랜드인 1명이다. 국제과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브라질인 이시이 유미 씨는 “(2007년) 제가 왔을 때도 이미 2명의 외국인이 국제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과 외국인들은 자체 사업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시청 다른 부서에서 요청하는 문서를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마마쓰시의 경험은 일본 전역으로 퍼지는 중이다. 특히 2019년 특정기능비자제도 도입 등 일본 전국이 외국인 근로자의 문을 연 뒤로는 하마마쓰시를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늘었다.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국제과를 방문한 지방자치단체만 20곳이다. 학부, 대학원 등에서 찾아온 곳까지 합하면 이보다 더 많다”고 덧붙였다.

지영임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교수는 “지역 사정을 알고 있는 지자체가 직접 지원해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을 적극적으로 행한다. 국제교류협회는 지자체와 NPO(비영리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도 NPO, 학교 등과 연계를 촉진할 수 있는 구성체가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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