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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엔저라도 베트남 안 돌아가” 만족하는 노동자들 [저출산 0.7의 경고-일본 이민을 보다]
일본 식료품공장 르포…근로자 80여명 중 10명은 외국인 노동자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 “일본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 한국은 인기 없어”
전문가들 “한국, 최근 선호도 떨어져…홍보 부족, 절차 복잡”
지난 12일 오후 마루센센베이 식료품공장에서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작업 중이다. 안세연 기자

[헤럴드경제(이바라키현)=안세연·박지영 기자]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마루센센베이 식료품공장. 위생복과 위생모, 마스크를 착용한 근로자들이 완성된 쌀과자를 봉지 안에 포장했다.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임박하자 이들은 일본어로 소통하며 서둘러 청소했다. “잔업이 없는 날엔 5시에 퇴근한다”고 말한 노동자들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연매출 13억엔(약 118억원) 규모의 마루센센베이 근로자 80여명 중 10명은 외국인 노동자다. 마루센센베이 공장은 21년 전부터 가동됐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전이다. 마치다 이사오(63) 사장은 “21년 전엔 일본인이 많이 채용됐지만 지금은 아무도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며 “최근엔 일손이 너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인과 임금 동일, 정착도 가능=외국인 노동자라고 해서 임금·처우 등에서 일본인 노동자와 차이는 없다. 시급은 1년차 기준 약 1만원. 주중에 8시간씩 일하고 주말은 모두 쉰다. 잔업이 많을 땐 하루에 2시간 더 일하고 수당을 받는다. 잔업이 많은 시기는 1년에 3번 정도다. 주거는 기숙사가 제공된다. 방이 2개인 아파트를 둘이서 나눠쓰고, 임금에서 기숙사비가 일부 차감된다.

외국인 노동자 10명은 모두 ‘특정기능 1호’ 비자를 이용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노동력 확보를 위해 2019년에 도입한 것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정착시킬 제도’로 평가받는다. 1호의 경우 최대 5년간 일본에 머물 수 있고, 향후 시험을 통해 2호로 전환되면 무제한 체류가 가능하며 가족도 데려올 수 있다. 한국엔 비슷한 제도로 ‘고용허가제’가 있는데 일본과 달리 체류기간이 최대 9년8개월이고, 가족 초청도 금지다.

일본이 한국보다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출신 응우엔 티타오(26) 씨는 “일본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며 “고향보다 임금이 약 2배 더 높다”고 했다. 응우엔 후와이투(24) 씨도 “엔저(엔화 가치 하락)라도 마찬가지”라며 “당분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마루센센베이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응우엔 티타오(26·왼쪽) 씨, 응우엔 후와이투(24) 씨. 박지영 기자

마치다 사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향후 ‘특정기능 2호’ 비자를 받겠다고 하면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일을 잘하면 관리직까지 맡기고 싶고, 일본에 가족도 불러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 대신 일본 간다=베트남 출신 노동자들에게 ‘왜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택했냐’고 묻자 “한국은 절차가 복잡해서 인기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한국 대신 일본’ 선호 현상은 통계로 확인된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가 지난 1분기 베트남인이 선호하는 이주 희망 국가 10개국을 조사한 결과, 일본이 압도적인 1위였다. 베트남 주요 인력송출지역 17~40세 5800명 중 2127명은 일본을 가장 선호했다. 이는 2위인 미국(792명)보다 약 3배 더 높은 수치다. 한국은 10위권 밖으로,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같은 현상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확인된다. 인도네시아의 외국인력 송출담당부서인 BNP2TKI 자료에 따르면 자국인들은 희망 국가로 2019년엔 일본보다 한국이 선호됐지만 2023년엔 일본이 한국을 앞섰다. 국가별 노동자 배치 순위가 2019년엔 한국이 7위, 일본이 24위였는데 2023년엔 일본이 5위로 도약했다. 반면 한국은 7위로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다. 이는 일본이 2019년 특정기능제도를 도입한 뒤 4년 만에 생긴 변화다.

윤도연 유엔 국제이주기구 책임은 “최근 실시된 조사결과들을 보면, 한국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어째서일까. 윤 책임은 “최근 일본 정부·기업 측 홍보활동이 매우 적극적”이라며 “베트남 등을 직접 방문해 어떻게 이민장벽을 낮출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소통하고, 일본에선 외국인 노동자가 장기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확률이 타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을 홍보한다”고 설명했다.

최병기 한국산업인력공단 베트남 고용허가제(EPS) 전 센터장은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

최 전 센터장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고용허가제 등 취업비자 발급이 하늘의 별 따기”라며 “취업 알선을 기업과 연계한 민간 조합이 주도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국가가 주도해 요건이 까다롭다”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행을 단념하고, 일본·대만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박창덕 한국이민전문가협회 국제교류협력본부장 역시 “한국 법무부에 가장 바라는 건 절차의 간소화”라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인력이 부족하다고 난리인 조선소 용접공의 경우도 대학졸업증·경력증명서·4대보험 가입증명서 등 수많은 서류를 요구하는데 이를 간소화하고 실기평가 위주로 가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단순히 절차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의견도 있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가 정착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취지다. 이젠 20년 전에 설계된 한국의 고용허가제를 뜯어고쳐야 한국·일본 이민경쟁 시대에서 앞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notstrong@heraldcorp.com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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