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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학교는 지옥” 교사 유서에도 ‘순직’ 아냐…교육공무원 자살 순직 인정률 15% [공무원재해법 5년]
2018~2023년 교육공무원 자살 순직
20건 중 3건만 승인…인정률 15% 그쳐
소방 54%, 경찰 57%, 일반 30%
업무상 원인 찾기보다 개인사로 축소

[헤럴드경제=박지영·박혜원 기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만두지 못하며 매일매일 지옥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힘들다. 나에게 학교는 지옥이다. 뭔가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야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학교에 나와 다른 선생님 얼굴 마주치는 것도 두렵다. 이젠 끝내고 싶다.”

2018년 만 44세의 나이로 사망한 교사 A씨의 유서다. A씨는 새로운 학교에 부임한 이후 4개월 만에 교실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폐교위기인 학교에 부임해 3개월 동안 6개의 신규 사업을 진행했다. 퇴근 후 집에서 계속 일을 했고, 주변에는 학교 업무로 힘들다는 말을 부쩍 자주했다. A씨가 소화불량으로 찾은 병원은 A씨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A씨가 공무가 아닌 ‘개인적 이유’로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교육공무원 10명 중 8명은 A씨처럼 학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도 순직(업무상 사망)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공무원 자살 순직 승인율의 절반도 못 미친다. 지난 2020년 아동학대로 고소당해 자살한 부산의 교사 A씨는 사망장소가 집이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고, 2021년 6개월 간격으로 사망한 경기 호원초 교사 2명도 순직이 아닌 단순 추락사로 처리됐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시민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

20일 인사혁신처가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공무원 직종별 자살 순직 현황’에 따르면 자살 교육공무원에 대한 순직 승인율은 15%에 불과했다. 2018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20명의 자살 교사 유가족이 순직 인정을 신청했고, 이 중 3건만 순직으로 승인됐다. 교육공무원에는 유치원 및 초·중·고교·특수학교 교사와 교장·원장, 대학교와 전문대학 교수와 조교, 기타 교육연수기관 종사자, 장학관과 교육연구관 등 교육전문직 등이 속한다.

순직을 결정하는 기관은 인사혁신처다. 유가족이 순직을 신청하면 공무원연금공단은 사실조사서를 작성해 인사혁신처에 넘기고, 인사혁신처는 심의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불복할 경우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교육공무원의 순직 인정비율은 다른 직종에 비해 특히 낮은 편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직종별 순직 승인율은 ▷소방공무원 54.16% ▷경찰공무원 57.89% ▷일반(소방·경찰·교육직을 제외한 직종) 30.43%이며, 교육공무원을 포함한 전체 공무원의 순직 승인율은 36.36%였다. 2018년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으로 더많은 공무원과 유가족들이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직종별로 편차가 유지되는 등 개선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업무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판단 기준, 사회적 편견 등 순직 인정을 막는 불합리한 요인은 여전히 많다.

황유진 교사노동조합연맹 수석대변인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면 일단 쉬쉬하고, 원인도 우울증 등 개인사로 종결하는게 대부분이다. 서이초 사건도 발생 초반 곧바로 우울증 이야기가 나왔다”며 “중요한 건 우울증이 발병한 원인이다.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업무관련성을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으니 순직 사례가 축적되지 않고, 이는 (다음 사망자와 유가족이) 순직을 신청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A씨의 사례를 살펴보면 인사혁신처는 “표면적인 업무량은 현저히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 경찰 내사 자료에서도 업무과다로 인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다”며 개인 성격상 취약성과 신경쇠약증이 주된 사망 원인이라고 불승인 이유를 적었다. A씨의 유가족은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은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인사혁신처가 제시한 초과근무 내용에는 체험학습 관련 내용만 있어 그 외 사업계획 및 시행작업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귀가 후 자택에서 추가 업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자살장소와 시간이 교실과 업무시간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세가 악화됐다고 판결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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