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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억! 집 아니고 침대 얘깁니다” 아이유·제니 꿀잠 위해 눕는 그곳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아이유가 공개한 V로그 영상 가운데, 침실에서 스웨덴 브랜드 해스텐스(Hästens) 침대가 포착된 모습. 아이코닉한 체크 패턴 디자인이다. 평소 불면증을 겪는 아이유가 숙면을 위해 선택한 침대로 대중의 관심을 샀다. [유튜브 '아이유TV']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살짝 보이는 옆모습에 왠일인지 눈길이 간다. 예쁜건지 촌스러운건지 헷갈리지만 존재감은 확실하다. 아이유와 제니의 안방을 떡하니 차지했다. 가격을 들으면 ‘억’ 소리가 난다. 174년 전통의 스웨덴 하이엔드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Hästens)가 그렇다.

[해스텐스]

해스텐스 침대는 세계 4대 명품 침대로 불리는 스웨덴 덕시아나(DUXIANA), 영국의 히프노스(Hypnos), 바이스프링(Vispring) 중에서도 가장 비싸다. 말총과 양모 등 100% 천연소재를 쓰고 수공예로 제작한다지만, 이 정도 안 하는 명품이 있었던가. 최대 7억원까지 치솟는 가격은 값비싼 원가와 장인정신 그 이상이다. 가장 비싼 모델을 사면 보증기간 25년간 꽉 채워 사용해도 하루에 7만원씩 쓰는 꼴이다. 구입하고도 최장 6개월을 기다리는 수고로움은 일종의 의식이다.

‘침대계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에 “대다수 사람들은 차보다 침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발칙한 답변을 내놓은 이 브랜드, 비싸도 너무 비싼데 계속해서 팔리는 비결이 뭘까. 해스텐스마저 혀를 내두른다는 20억원짜리 침대는 또 어떻게 생겼을까.

“왕자는 우리가 낫지?”…진짜 스웨덴 왕자가 디자인 한 하이엔드

스웨덴 명품 침대 해스텐스는 영국 하이엔드 침대 브랜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왕실 마케팅에 능수능란한 영국 경쟁 브랜드에 뒤지지 않기 위해 해스텐스도 왕자를 초빙했다. 단, 고객이 아닌 ‘디자이너’로서다.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칼 필립 스웨덴 왕자(왼쪽 사진). 칼 필립 스웨덴 왕자와 모델 출신인 그의 아내 소피아 헬크비스트(오른쪽 사진).스웨덴은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페인 등과 함께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칼 필립은 칼 16세 구스타프 왕 과 실비아 왕비 사이 외아들이자 세 자녀 중 둘째로, 왕위 계승 서열은 그의 누나인 왕세녀 빅토리아와 두 조카에 뒤이은 4위다. [해스탠스·연합]

2017년 해스텐스가 디자인을 의뢰한 베르나도트와 길버그 듀오 가운데,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왕조 성 씨다. 본업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스웨덴 왕자 칼 필립이 소속된 듀오다. 칼 필립이 2012년 설립한 디자인 듀오는 안경, 식기, 의류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 디자인을 선보여왔다.

다만 해스텐스가 칼 필립과의 협업을 진행한 배경엔 그의 디자이너로서의 명성보다 ‘왕실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CNN이 뽑은 4대 명품 침대에 함께 이름을 올린 경쟁사 가운데, 영국 왕실의 후광을 입은 브랜드만 두 곳이다. 1901년 영국에서 설립된 ‘바이스프링’ 침대는 2011년 영국 윌리엄 왕자가 결혼 당시 선택하면서 대외적으로 홍보 효과를 누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잠의 신(神) 이름을 딴 ‘히프노스’ 또한 1929년 설립 이래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왕실 로얄 패밀리들의 침대로 이름을 떨쳤다.

윌리엄 영국 왕세자(왼쪽)와 부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윌리엄 왕세자는 결혼 때 영국 명품 침대 브랜드인 바이스프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

영국 왕실을 등에 업은 두 브랜드를 눈앞에 두고, 왕가가 남아있는 스웨덴이 ‘왕실 찬스’를 카드로 꺼내든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게다가 왕자인 칼 필립은 예전부터 스타성을 자랑하던 인물이다. ‘백마 탄 왕자’ 이미지를 탈피해 스포츠카를 타고 레이싱을 즐기는 파격을 선보였고, 모델 출신 소피아 헬크비스트와 자유연애 끝에 결혼한 개인사 역시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빼어난 외모도 유명세에 한몫 했다. 그런데 마침, 본업까지 디자이너였던 것.

칼 필립 스웨덴 왕자와 아내 소피아 헬크비스트(왼쪽 사진). 베르나도트와 길버그 듀오가 디자인 한 해스텐스 침대와 협탁(오른쪽). 베르나도트와 길버그 듀오는 2017년 블루체크를 세련된 감성으로 재해석한 Marwari와 Appaloosa 침대를 디자인했다. 침대와 함께 배치하는 입체파 스타일의 협탁도 함께 선보였다. [AFP=연합] [해스텐스]

각종 특권을 자진반납한 스웨덴 왕가를 향한 호의적 시선도 마케팅엔 득이다. 약속 없이 방문한 손님에겐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단호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답게, 왕족들은 스스로 특권을 내려놨다.

일례로 2019년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왕위 승계 1순위인 빅토리아 왕세녀와 두 자녀를 제외한 다섯 명의 손주들을 모조리 왕족에서 제외했다. 왕족에서 제외된 손주들은 ‘왕실’이나 ‘왕족’ 관련 직함을 쓸 수 없고, 왕가 일원에게 지급되던 급여도 받지 않게 된다. 왕조가 없는 한국 사례에 대입해 보면, 전직 대통령이 예우보조금을 알아서 삭감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블루체크 패턴에 해스텐스 로고인 말 문양을 조합한 패턴. [해스텐스]
침대에 ‘파란 체크’ 웬말?…40년 앞서간 디자인, 모험은 ‘진행형’

소재와 기술력 이상으로 디자인에 승부수를 띄운 해스텐스지만 초창기 평가는 혹독했다. 1978년 탄생한 해스텐스의 상징과도 같은 ‘블루 체크’ 패턴은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파격적이다. 브라운, 그린, 오렌지 컬러가 주류였던 1970년 인테리어 업계 역시 이 패턴을 보고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기존 집안 인테리어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엔 지나치게 존재감 넘치는 패턴이었기 때문.

블랙핑크 제니가 올린 침실 셀카. 뒤편에 해스텐스 침대가 보이도록 촬영했다. [제니 인스타그램]

그러나 눈에 띄는 패턴과 어마무시한 가격은 결과적으로 시너지를 냈다. 돈을 쓰면, 쓴 티가 제대로 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아이유 개인 유튜브 채널에 살짝만 노출돼도, 제니 셀카 뒤편에 배경으로 걸리기만 해도 ‘저건 해스텐스’라는 걸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 특유의 체크 문양이다. 아이유와 제니는 오리지널 블루 컬러 대신 따뜻한 베이지톤 컬러를 선택했지만, 특유의 체크 무늬 덕에 브랜드의 정체는 삽시간에 퍼졌다.

캐나다 출신 건축가 페리스 라파울리(Ferris Rafauli). 해스텐스 모델 가운데 가장 고가 라인인 그랜드 비비더스를 디자인했다. [해스텐스]

1852년부터 6대째 가업을 이어온 해스텐스지만, 새로운 디자인을 향한 열망은 여전하다. 오래된 브랜드에 신선한 감각을 더하기 위해 침대 제작 경험이 없는 건축·패션 등 분야 디자이너와의 지속적인 협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북미와 영미권 시장을 겨냥해 각 지역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한 부분에선 영리한 마케팅 전략도 엿보인다.

일례로 캐나다 출신 건축가 페리스 라파울리(Ferris Rafauli)는 캐나다 출신 유명 래퍼 드레이크가 73억원짜리 캐나다 토론토 맨션을 의뢰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스웨덴 출신의 파리 이민자인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라스 닐슨(Lars Nilsson)은 발망, 디올, 랄프로렌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딴 남성 브랜드 Mr. Nils.을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떨쳤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세 크로포드 (Ilse Crawford)와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페리스 라파울리가 설계한 캐나다 래퍼 드레이크의 집. [Jason Scnmidt/Architecural Digest]

해스텐스는 올들어 북미 시장 개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미 최고 명품 유통체인 MadaLuxe와 손잡고 향후 5년 내 미국 전역에 20개 매장을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경기가 침체되면 부자들도 사람들 앞에 내보여지는 럭셔리 아이템에 많은 돈을 지출하기를 꺼려한다. 다만 업계는 남들 눈에 덜 띄는 절제된 명품 소비는 예외로 보고 있다. 이를테면 집 안에서 사용하는 침대나 가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스텐스 유통에 나선 애덤 프리드 MadaLuxe CEO 역시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웨어, 시계, 가방 같은 대표적인 명품 품목 소비는 줄겠지만 소비하는 품목은 더욱 다각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스텐스]
알고보면 여기도 ‘말 무늬’…“괜히 말총 쓴 게 아니네”

체크 패턴만큼 해스텐스를 대표하는 또 다른 축은 말 무늬다. 에르메스, 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해스텐스 역시 '마구' 제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대 창업주인 펠 아돌프 얀손(Pehr Adolf Janson)은 18살 나이로 말 안장 견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말 안장 제작자는 안장과 마구 외에도 최고급 말총 매트리스와 가죽 제품을 제작했다. 침대 제작에 사용되는 말총 역시 마구를 제작하던 장인들이 다루던 재료 중 하나다. 훗날 침대에 집중하게 된 해스텐스의 DNA가 여기에서 나왔다.

[해스텐스]

해스텐스는 시대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2대 오너 투레 얀손(Thure Janson)은1917년 1차 세계대전으로 스웨덴에 자동차가 등장하자 교통 수단의 변화를 예측하고 사업 방향을 틀었다. 마구 이외의 말총 매트리스, 시트, 쿠션 등 품목들을 집중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것.

이같은 해스텐스의 결정은 마구 제작업체로 남지 않고 사업 방향을 튼 에르메스, 구찌 등 럭셔리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투레 얀손은 마구 제작업체라는 자부심을 강조한 에르메스처럼 해스텐스도 말 문양을 로고로 남겨뒀다. ▶관련기사 2023년 4월 16일자 "골린이·테린이 지겹다면?" 취미계 '에르메스'라는 이것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네덜란드 건축가 얀야프 라이제나르스(Janjaap Ruijssenaars)의 ‘플로팅 베드’(Floating Bed). [유니버스 아키텍쳐]
“해스텐스 가격표에 놀랐다고?”…세계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따로 있다

해스텐스도 초고가 브랜드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따로 있다. 가격이 20억원에 달하는 네덜란드 건축가 얀야프 라이제나르스(Janjaap Ruijssenaars)의 ‘플로팅 베드’(Floating Bed)다. 미 유력 주간지 타임이 뽑은 ‘최고의 발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이 침대는 출시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자랑한다.

네덜란드 건축가 얀야프 라이제나르스(Janjaap Ruijssenaars)의 ‘플로팅 베드’(Floating Bed) 측면 설계도. [유니버스 아키텍쳐]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침대와 바닥 사이의 약 40cm 간격이다. 말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이 침대와 침대 아래 자석을 내장해 극과 극을 밀어내는 반발력을 활용했다. 공중에 띄운 침대의 균형은 네 모서리에 부착한 케이블로 위치를 고정시켜 유지시킨다.

건축가는 “지구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편재(遍在)하는 힘은 중력”이라며 “이 침대는 아래가 아닌 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중력을 비웃는 ‘예외’를 만든 침대”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형태 덕에 다이닝 테이블, 소파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Monolith).

육면체 직사각형으로 만든 단순한 디자인은 스탠리 큐브릭의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돌기둥 모노리스(Monolith)를 재해석했다는 후문이다.

모노리스는 ‘하나의, 또는 고립된 바위’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작품 속에선 각변의 비율이 1:4:9인 직선 모서리를 가진 육면체로 묘사된, 외계인의 고성능 컴퓨터로 나온다. 극중 유인원들에게 ‘인간 문명’을 전수하는 매개다.

‘플로팅 베드’(Floating Bed)의 모티프가 된 SF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Monolith). [유니버스 아키텍쳐]

모노리스를 닮았든 아니든, 침대는 그 자체로 인류 문명사의 상징이다. 일부 귀족 계층을 제외한 인류 대다수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침대에서 자게 된 지는 불과 200년도 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형태의 코일 스프링 매트리스는 1865년에 출현했고, 고무원료를 쓴 라텍스 매트리스는 1926년이 돼서야 출시됐다. 대중 대다수가 편안한 잠을 허락 받은 '축복'과 누군가는 누리고 있을 수억짜리 침대의 '파워'가 공존하는 세상. 수면(睡眠)의 세계에도 양극화는 치열하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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