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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입금지 안해도 이미 도심은 노시니어존”
‘60세이상 출입금지’ 카페 논란
노인 “청년층 위주, 갈곳이 없다”

“커피 마니아인데도, 카페에 앉아있으면 괜히 나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못 앉는 것 같기도 해서 빨리 일어나줘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자격지심인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에서 만난 김모(60)씨가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몇 년 전 퇴직했다는 김씨는 도심의 카페는 물론, 영화관에 들어서기도 어렵다고 한다. 김씨는 “뭘 자꾸 눌러야 하는 키오스크도 어려워 가족과 함께가 아니면 영화관에도 가기 어렵다”며 “젊은 사람들 위주로 빠르게 영업을 해야 하는 사장들 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60세 이상은 방문할 수 없도록 한 ‘노시니어존’ 카페가 최근 논란을 샀다. 그러나 정작 노인들 사이에선 출입을 금지하지 않더라도 청년층 위주로 운영되는 주요 상권 분위기나 키오스크등 디지털 기기에 치여 갈 곳을 찾기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노인복지 전문가들은 “한국의 도심 자체가 이미 ‘노시니어존’”이라고도 지적했다.

22일 찾은 실버영화관에는 평일 오후부터 관객 20여명이 찾아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등 6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버영화관은 티켓값 2000원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2008년 개관한 서울 지점은 하루에 500여명의 관객이 찾는다.

이곳에서 만난 노인들은 거주지 인근, 혹은 도심 상권 편의시설을 이용하면서 겪는 고충을 각자 털어놨다. 박대근(68)씨는 “일반 영화관은 티켓도 사기 어려운데다 자막도 작아 읽을 수 없었다”며 “나라고 옛날 영화만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종로만 벗어나도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여기에 온다”고 했다.

경기 분당에서 거주하는 박모(70)씨는 “강남역 같은 도심에서도 이미 노인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곳들이 있어 여기까지 나와 3시간씩은 시간을 보내다 간다”고 했다.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정구형(86)씨 역시 “집 근처에는 갈 곳이 없고, 종로까지는 와야 그나마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특히 코로나 확산 기간에 카페, 음식점들이 디지털화되면서 노인들이 주요 상권에서 소외되는 추세가 더욱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상권 위주로 간판과 메뉴판 등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추세 역시 노인들의 접근성을 낮춘다는 호소도 나온다. 양천구에 거주하는 이모(79)씨는 “카페 메뉴판부터 어려워, 쳐다보고 있으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실버영화관 인근 상권인 경복궁 인근 일대 카페와 음식점 10곳 중 5곳은 한글 없이 영어 등 외국어로만 간판에 가게명 등을 표시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카페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수요에 맞춘 것”이라고 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노년학회장)은 “아이들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처럼 드러내놓고 노인 출입을 금지하는 업체는 아직 많이 없지만, 주요 도심의 영화관, 카페 등은 젊은 사람 위주의 공간으로 사실상의 노시니어존처럼 운영돼 왔다”며 “고령화 시대인만큼 노인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많은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고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혜원 기자·박지영 수습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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