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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시대, 2300만 근로자의 든든한 뒷배 되겠다”
내년 70돌 ‘e-노동위 시스템’ 구축
시대 맞춰 공정노동위로 명칭 변경
취약계층 비조합원 권리 구제 강화
노동개혁은 정부가 하는 것
노총이나 경영계가 하는게 아냐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노조가 없는 직장인은 권리를 침해 당했을 때 도움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노동위원회가 그들의 ‘뒷배’가 되겠습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 중노위 집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내년이면 설립 70주년을 맞이하는 노동위원회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한 갈등 해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 ‘e-노동위원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근로자는 2300만명 가량이지만 노조 조직률은 14% 남짓으로 대다수는 비조합원”이라며 “‘e-노동위’ 구축이 완료되면 저소득·취약계층의 비조합원들의 권리구제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2021년 기준 집단분쟁보다 개별분쟁이, 이익분쟁보다는 권리분쟁이 85%”라며 이런 시대 변화에 따라 노동위원회 명칭도 시대 변화에 맞춰 ‘공정노동위원회’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위 전문성 제고를 위해선 조사관 증원과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쟁조정방식 역시 맞춤형으로 미국의 ‘대안적 분쟁해결제도(ADR)’를 노동위 조정과 심판에 접목해 분쟁 예방기능을 강화하고, ADR 확대를 위한 고도화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이면 노동위원회 출범 70주년이다. 시대가 변화한 만큼 노동위원회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노동위원회는 1953년 3월 8일 만들어질 당시 집단분쟁 해결기구로 출범했다. 흔히 ‘노동분쟁’이라고 하면 노조와 회사, 사업주와의 다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70년이 지난 지금은 개별분쟁이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노동위원회가 지난해 처리한 노동분쟁 사건이 1만6000건을 돌파했는데 노동쟁의 조정, 복수노조, 부당노동행위 등 집단분쟁 사건은 2499건으로 전년 대비 17.4%(525건) 감소했다. 부당노동행위·복수노조 관련 판결 및 판정례가 축적되고, 산업현장에서 노·사, 노·노 간 분쟁해결 역량이 어느 정도 확충된 덕분에 자연스럽게 비중이 줄었다. 하지만 부당해고와 징벌, 차별시정 사건 등 개별적 노동분쟁 사건이 5.8%(741건) 증가했다. 개별 분쟁의 성격도 해고나 징계에서 차별과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확대됐다. 또 금전문제에서 비금전문제로 확대됐다.

―노동분쟁에 대한 해결도 시대 흐름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단체교섭이 결렬 위기에 처한 노사가 ‘조정전치주의’로 10일간의 짧은 조정기간 때문에 노동위원회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파업에 처하는 문제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노위는 노동계 출신 공익위원과 ADR(대안적 분쟁해결)을 활용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ADR방식은 제3자의 판정이나 판결보다 당사자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분쟁해결 과정에 참여하고 분쟁의 성격에 맞게 해결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하도록 하는 식이다. 분쟁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분쟁해결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나 감정을 배려하며 조정하고 판정에서도 중재를 접목하는 것이다. 미국은 성희롱 등 괴롭힘 분쟁의 85%는 조정으로, 권리분쟁의 98%는 중재로 해결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e-노동위 시스템’이란 것은 무엇인가.

▶e-노동위 시스템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위에 도움을 청하는 이들은 90%가량이 저소득층이다. 챗GPT가 나오는 시대인데도, 이들이 노동위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직접 찾아와 억울함을 설명하는데 하루를 허비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덜기 위해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톡 등을 활용한 영상회의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개인 사생활 보호도 보다 강화할 수 있다. 노조가 없는 직장인은 권리침해를 당해도 ‘빽’이 없다. 노동위원회 사건처리 비용은 무료이며,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근로자는 무료 법률대리인을 지원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뒷배’가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지난 만큼 중앙노동위원회 명칭도 ‘공정노동위원회’로 변경하고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근로자들의 권리구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공정노동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자는 건 어떤 의미인가.

▶과거 노동위원회를 만들 당시엔 말 그대로 노조의 ‘분쟁조정’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사건 대부분이 개별사건이고 노동시장 질서에 관련된 부분이 많다.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원리는 ‘공정’에 있다. 지금 우리는 중앙과 지방노동위원회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는 권위적인 발상이다. ‘공정’에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가 다를 수 없다. 그래서 공정노동위원회로 바꿔야 한다. 미국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공정노동기준법’이라고 ‘Fair(공정)’를 앞에 붙이고, 영국도 마찬가지다.

―명칭을 바꾸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

▶명칭을 바꾸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노동위원회 업무의 양과 질이 증가한 만큼 투자가 필요하다.미국의 경우 3개 기구, 영국과 호주, 일본 등은 2개 기구가 한국의 노동위원회 일을 맡고 있다. 모두 상근체제다. 우리는 인력이 부족한 탓에 업무 과중으로 육체·정신적으로 힘든 조사관들이 많다. 조사관 증원이 필요하고,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노동위원회는 취약계층의 권리를 구제하는 기관이다.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으려면 노동위를 잘 활용해야 한다. 공정노동위원회와 ‘e-노동위원회’를 통해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에 ‘제동’이 걸렸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근로시간 제도를 합리화하려고 나섰지만, 정치적인 공격거리가 된 상황이다. 극단적인 경우에 ‘주 최대 69시간’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불가능한데, 지금은 숫제 ‘주 69시간제’로 불린다. 이미 일반근로자는 하루 8시간 주 5일 총 40시간을 근무하는 형태가 굳어졌다. 일부 뿌리산업, IT업종 등에서만 연장근로 비중이 높다. 장기간 근로보다 오히려 주 15시간 이하로 일하는 ‘초단시간 근로자’가 많이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불안 심리를 자극한 탓이다.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 ‘주60시간’ 상한선을 두자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숫자에 너무 얽메이지 않아도 된다. 60시간 논쟁은 ‘달을 보라고 하니, 손가락을 보는 꼴’이다. 지금은 소통이 더 중요한 과제다. 근로시간 제도개편에 대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보다 수렴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근로시간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를 수렴해서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 짧게 일하고 잘 쉬려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개편안의 핵심인데 잘 전달이 되지 않은 부분이 특정주엔 장시간 근로를 할 수 있지만, 전체 근로시간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제도가 너무 복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근로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려면 간단명료해야 한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동인권이 탄압받는 시대에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특히 고소득 전문직들의 경우에는 법으로 근로시간을 정해 보호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 대표 사례가 지난 2000년 프랑스 ‘오브리법’이다. 당시 프랑스는 근로시간을 주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했는데, 초단시간 비정규직이 늘면서 취약계층의 삶이 팍팍해졌다. 경제성장이 지상 과제이던 시대엔 정부가 잘라줘야 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깊이 개입할수록 불평등은 커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 과정에 노조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하는 것이다. 노총이나 경영계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지금 노동시장 구조를 보면, 노조가 있는 근로자와 비노조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30% 가량 벌어졌다. 다른 나라는 10% 가량 더 받는다. 노조가 ‘과보호’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노조’를 방패 삼아 채용을 강요한 건설노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조 특권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고,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하지 말자고 하는 건 노동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근로시간 제도개편 과정에서 중노위 역할을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

▶노동위원회는 권리구제 기관이다. 만약 장시간 근로로 건강권이 침해를 받거나 갈등이나 분쟁이 생긴다면 법을 개정할 때 노동위에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근로기준법 상 원하지 않을 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노동청에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산정할 땐 다툼이 생긴다. 회사를 떠날 때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임금을 제대로 받게 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노동위원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명시할 필요가 있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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