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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 훔쳐 710억 챙겨도 고작 4년형...엄벌로 경고해야”
안동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사이버수사과장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시대흐름 못따라가
범죄 막으려면 반드시 합당한 처벌 뒤따라야”

정지은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장
“기술유출 범죄 재판, 전문성·효율성 더 높여야
재판에 필수적으로 전문가·피해자가 참여해야”

“기술 유출로 710억원을 벌어도 징역은 4년에 그친다. 양형 기준을 조정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안동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사이버수사과장)

“특정 법원에 기술 유출 범죄 재판을 집중해 재판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정지은 대전지검 특허범죄조사부장)

검찰이 기업 이익과 국가 안보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기술 유출 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수백억원의 피해를 입히고도 집행유예나 벌금에 그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양형위원회에 엄벌을 요청하기로 했다. 재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형사 재판 관할 집중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기술 유출 범죄 기소·공소 유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안동건 부장검사와 정지은 부장검사에게 기술 유출 범죄 솜방망이 처벌 현실과 대안을 물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112건에 달한다.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9월 기준) 2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산업기술은 산업자원통상부 등이 지정해 관리하는 기술로 지난해 6월 기준 총 4090개다. 국가핵심기술 유출만 5년간 36건에 이른다.

안 부장검사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기술유출 사건을 보면 (1심 기준) 국내 유출의 경우 대부분 1년 6월형 이하로 선고되고 있다”며 “해외 유출도 1건을 제외하면 최대 선고형이 2년에 불과하다. 징역형이 선고돼도 4명 중 3명 꼴로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해 10월부터 기술유출 범죄를 지휘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양형 기준이다. 법관이 형을 선고할 때 참작하는 기준으로, 양형위원회가 정한다. 안 부장검사는 “2019년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이 개정되면서 산업기술, 국가핵심기술, 영업비밀 등 기술 침해 범죄에 대한 법정형이 상향조정됐지만 관련 양형 기준은 2017년 개정 이후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영업비밀 침해의 경우 해외 유출 최대 10년에서 15년, 국내 유출 최대 5년에서 10년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양형위원회의 영업비밀침해행위에 대한 기본 양형은 국내 침해 8개월~2년, 해외 침해 1년~3년 6개월에 그친다.

대검찰청은 오는 4월 출범할 9기 양형위원회에 양형기준 조정을 제안할 예정이다. 특히 양형 판단 기준 중 감경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피해’가 경미할 경우 감경 사유가 되는데, 피해 규모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형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2018년 발생한 한 중소기업 LCD 제조 자료 유출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 회사의 산술적인 피해 규모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피고인은) 초범이고, 일부 범행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피해 기업은 100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피해액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재판부의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안 부장검사의 판단이다. 그는 지난 2월 1심 선고가 난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SEMES)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을 언급했다. 안 부장검사는 “(해당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 규모를 당장 명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없어도 손해를 가벼운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4년을 선고했다. 기존 선고 사례에 비해 무거운 형벌”이라면서도 “유출한 기술로 장비를 만들어 수출한 판매 대금만 710억원이다. 기소된 10여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일부 주범 2년 6개월, 나머지는 집행유예로 여전히 형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관할 집중도 중요한 과제다. 기술 범죄 재판을 전담할 법원을 지정해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정지은 부장검사는 “복잡한 기술 유출 범죄 특성상 재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몇 년만 지나도 피해 기술의 가치가 낮게 평가된다. 재판이 길어지면 피해자측에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국내 기업의 패널 유리 제조 기술이 해외에 유출된 사례가 있다. 4년 걸린 1심에서 무죄가 나왔고, 2심에서는 법정 구속이 됐다”며 “객관적인 자료나 전문가 증언이 있었다면 훨씬 빠르게 재판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필요성을 공감하고 논의에 착수했다. 대통령 직속 산하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지난 2월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 전문성 제고 특별전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지은 부장검사는 지식재산권 특위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재판 전문성 확보를 위한 보완책 마련도 주문했다. 기술 유출 재판 과정에 필수적으로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부장검사는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소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현실적으로 검사나 판사가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 반면 피고인은 대규모 변호인단을 선임해 대응한다”고 말했다. 기술 범죄 재판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피고인측은)이미 알려진 기술이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안 된다며 해외 논문을 제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피고인측) 자료의 신뢰성과 해석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객관적인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 재판부가 상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도 제안했다. 정 부장검사는 “피해 기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공판에서 적극적으로 진술하는 환경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통상 법정에서 피해자가 의견을 진술할 기회가 많지 않다. 피해자 입장에서 공판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추가 유출될 것을 우려해 진술을 꺼리기도 한다. 정 부장검사는 “일본은 영업비밀 관련 심문 등에 관한 절차를 법률로 명시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안심하고 형사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공판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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