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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된 연금 개혁…성공해도 상처 깊어 [저출산 0.7의 경고]
프랑스 파리에서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모습. [AP]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는 연금 개혁의 필요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커지는 갈등은 연금 개혁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로 만들고 있다.

연금 개혁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2019년 과업을 완수한 브라질이 보여준다.

브라질은 2019년 10월 상원 2차 투표 결과 최종적으로 개혁안이 통과되면서 약 8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수급연령 상향 및 납부 기간 확대로 향후 10년간 8000억헤알의 공공지출을 줄이는 내용이 핵심이다. 애초 정부 초안인 1조2000억헤알보다는 적지만 기존 논의안이었던 4500억헤알보다는 큰 규모다.

2017년 3월 테메르 정권이 처음 제안한 내용을 보우소나루 정권이 그대로 승계할 정도로 연금 개혁은 정권을 뛰어넘는 이슈였다.

브라질 연금 지출 규모는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를 크게 웃돌아 큰 부담이었다. 연금 지출 탓에 브라질 정부 부채는 2013년 GDP 대비 51%에서 2018년 76.7%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재정 적자는 브라질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혔다.

더군다나 인구 고령화로 2019년 전체의 9.5%인 65세 인구가 2060년에는 25.5%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급 구조상 수령 시점 상향 등 제도 개혁 없이는 재정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하지만 위기의식을 공유한다고 해서 개혁안이 수월하게 통과된 것은 아니다.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고 급기야 여당인 사회자유당(PSL) 내부에서 보우소나루 정권 정책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탈당해 별개의 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연금 개혁이 얼마나 격렬한 저항을 불러오는지는 현재의 프랑스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신년 연설을 통해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며 2023년을 연금 개혁의 해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은퇴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점진적으로 65세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19년 12월 초파업의 극심한 저항을 경험했음에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을 내비쳤다.

의회는 이견이 분분하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2일부터 연금 개혁 법안 심사에 들어갔다. 상원은 그나마 연금 개혁에 비교적 우호적인 우파 공화당이 장악한 덕에 심사라도 할 수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하원은 아직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하원 좌파 연합 뉘프와 극우 성향 국민연합은 개혁안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의회 승인이 없어도 정부가 헌법 특별 조항을 발동해 연금 개혁을 밀어붙일 순 있다. 그러나 이는 오는 7일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예고한 노동조합의 분노에 기름만 더 부을 뿐이다.

권위주의 국가들에서도 연금 개혁은 시민 저항을 불러오는 민감한 문제다.

‘21세기 차르(러시아 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8년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개혁안의 뼈대는 다른 나라처럼 일하는 기간을 늘리고 연금 수령 시기는 늦추는 것이었다. 러시아 연금은 2014년부터 세입보다 세출이 더 커졌다. 때문에 특단의 대책 없이는 연금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정치권의 호소가 이어졌다. 2005년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절대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푸틴이 ‘배신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문제였다.

하지만 80% 고공행진을 하던 푸틴의 지지율은 60%대로 추락했고, 야당을 중심으로 한 비판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결국 푸틴은 남성의 연금 수급 연령은 그대로 두되 여성은 63세에서 60세로 2년 앞당기는 수정안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다.

중국의 연금 개혁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음에도 미리 매운맛을 경험하고 있다.

14억명의 노후를 공적연금만으로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변화까지 맞물린 탓에 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60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해 2억8004만명으로, 전체의 19.8%라고 밝혔다. 애초 2035년은 돼야 노인 인구 비중이 20%에 달할 것이란 기존 전망보다 훨씬 앞당겨진 것이다.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 총재는 최근 “중국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연금 시스템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연금 재정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에서 발생한 ‘백발시위’ 모습. [SNS영상 캡처]

문제는 역시나 극심한 저항이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대규모 시위가 사라졌던 중국에서 지난해 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벌어진 데 이어 최근엔 은퇴한 고령자들의 이른바 ‘백발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젊은 시절 낸 의료보험료를 의료보조금으로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온 노인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왔다.

의료 보험 문제로 촉발된 백발시위는 언젠가 더 규모가 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제도를 손봐야 하는 중국 당국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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