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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수학이 생명에 필요한 순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가장 기다리던 사람 중 하나는 12년간의 수험생활을 끝내고 성인이 된 학생들일 것이다. 긴 수험생활 중 누구나 한 번쯤 ‘수학을 왜 배워야 할까?’고민을 해봤을 터. 이 질문은 수학교사가 학생들에게 받는 가장 당황스러운 질문이라고 한다. 수학자인 필자 역시 학창 시절 수학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돌아온 것은 “좋은 대학 가려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답이거나 “논리력 증진에 좋다”는 추상적인 대답. 심지어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이 난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군대에서 찾았다. 우연히 보게 된 신문에서 ‘해외에서는 수학자가 심장이 어떻게 뛰고 심정지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연구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 덕에 수학을 이용해 의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수리생물학 분야를 알게 됐고, 국내에서 몇 명 안 되는 수리생물학자 중 하나로 지금도 연구를 펼쳐가고 있다.

숫자와 문자가 나열된 수식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명을 탐구할 수 있는 걸까. 최근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의생명 수학그룹 연구진이 보고한 연구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약물의 효과를 예측하는 데에는 수학 공식이 활용된다. 약은 간 등 장기에서 진행되는 대사를 통해 몸에서 제거된다. 복용량은 제거 속도를 토대로 결정된다. 그런데 다른 두 종류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면 한 약물이 다른 약물의 대사 속도를 급격히 증가시켜 약효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약물 상호작용’이라고 하며, 이를 예측하는 것은 신약 개발 및 의약품 처방에 필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FDA 가이던스’를 통해 약물 상호작용을 예측하는 수식을 제공한다. 수많은 약물의 상호작용을 모두 실험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 수식을 이용해 약물 상호작용을 간편히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수식으로 계산된 값이 실제 약물 상호작용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남대 연구진과 함께 해결책을 찾았다. 미카엘리스-멘틴 식이 근사하려고 했던 원래 미분 식에서 변수들을 치환하고, 중학교 때 배웠던 ‘이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사용했더니 효소의 농도와 상관없이 항상 정확하게 근사할 수 있는 새로운 수식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수학을 이용해 새롭게 유도한 수식의 예측력은 놀라웠다. 기존 FDA 식의 정확도는 30% 정도에 불과했는데 새로운 수식의 예측정확도는 80%에 달했다.

수학과 약학의 협력 연구로 도출된 새로운 수식이 도입되면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의약품은 FDA 가이던스에 따라 약물 상호작용을 평가했다. 제시한 보다 정확한 식을 도입하게 되면 약물 상호작용을 재평가해 기존 우리가 복용하던 약물의 효율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가 FDA가 우리 연구를 고려해 가이던스를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 수학자들이 만든 ‘K-수식’이 머지않아 세계 표준이 될 것이란 기대다. 교과서 속의 수학은 이처럼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단서를 제시하는 데 쓰인다. 지금 이 순간, 근의 공식 및 미적분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학생들이 좀더 수학에 매력을 느끼게 되길 기대해본다.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 의생명 수학그룹 CI(수석연구자급 연구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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