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012년 CCIP로 TSMC, 인텔 등과 공동 지분투자
EUV 장비 구매 경쟁 치열, 실적 확대→지분가치 상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삼성전자가 보유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의 보유 지분 가치가 지난해말 6조원에 육박했다. 10년 전 투자했던 금액과 비교하면 16.5배 수준으로 급증, 투자만으로 5조원 넘게 벌었다.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업계 ‘슈퍼 을’로 불리는 ASML이 삼성전자의 투자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며 기업가치를 높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1일 삼성전자가 최근 공시한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ASML 지분가치는 5조97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금액인 3630억원에서 무려 1545.8% 늘어났다.
전년 3조3505억원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깝다. 장부상 가치는 지난해만 78.3%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ASML 주식 629만7787주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지분의 1.5%다. 2012년 3%를 매입했으나 2016년 보유한 지분 절반(1.5%)을 매각했다.
ASML은 2012년 고객공동투자프로그램(CCIP)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3개사를 대상으로 의결권이 제한된 주식을 발행했다. 이 투자금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개발하는데 쓰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경영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
ASM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치열한 생산확대와 설비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반도체 생산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에 대한 구매 경쟁도 치열하다.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장비인 만큼 삼성전자와 TSMC 입장에선 얼마나 많이, 누가 더 빨리 가져가는 지가 관건이다. ASML이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슈퍼 을’로 불리는 이유다.
장비 확보를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글로벌 반도체 3개사의 투자로 EUV 장비를 개발해 ‘슈퍼 을’에 오른 ASML은 최근 인텔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체제가 강화돼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됐다.
ASML에 의하면 3개 사 중 현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 하나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지만 아직 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진 만큼 ASML과의 관계나 장비 수급에서도 TSMC·인텔보다는 유리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와 TSMC의 장비 확보 경쟁으로 ASML의 지난해 연매출은 전년대비 33.1% 늘어난 186억1100만유로(약 25조2557억원)를 기록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순이익 역시 58억8320만유로(약 7조9837억원)로 65.6% 증가했다.
한국 매출은 62억2300만유로(약 8조4448억원)로 대만(73억2793만유로)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많았다. 한국과 대만 매출은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같은 실적확대는 주가에도 영향을 미쳐 지분가치가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ASML의 주가는 지난해초 500달러에서 지난해말 796.14달러로 59.2% 급등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국내 최대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코리아 2022’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SML의 고객일 뿐만 아니라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 매우 중요한 나라”라며 “ASML과 한국은 힘을 합쳐 반도체 생태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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