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갤럭시 Z 폴드3 [삼성전자 제공] |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4년 전 푸드테크 취재로 미국 출장을 갔을 때다. 스몰홀드라는 스타트업은 뉴욕 맨해튼 중식당에 직접 버섯을 재배하는 장치를 공급하고 있었다.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으로 메뉴별 최적화된 버섯을 기르는 미니팜이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컴퓨팅을 통해 직접 식물을 재배하는 스타트업이 봇물을 이뤘다. PC 같은 장치로 원하는 맛의 상추, 허브 등을 기른다고 해서 PFC(퍼스널푸드컴퓨터)라고 불렀다.
이듬해 이 PFC는 MIT로부터 가장 크게 실패한 기술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MIT는 해마다 ‘가장 큰 기술 실패(the biggest technology failures)’를 선정해 발표한다. PFC가 실패 기술로 찍히면서 전체 푸드테크 스타트업도 신뢰도에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실패 오명에도 스몰홀드는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를 통해 건실한 버섯 재배 푸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지 업계서는 스몰홀드의 연매출을 680만달러(80억원)로 평가한다. 세인트루이스 PFC 스타트업들은 관련 기술을 코딩 등 학교 수업용으로 제공하며 교육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폴더블폰도 PFC와 같은 해(2019년) MIT 기술 실패 대상에 지목됐다. MIT는 “사용 하루 만에 완전히 깨지고 쓸 수 없게 됐다”는 블룸버그 리뷰를 인용하며 삼성 폴더블폰 기술력을 저격했다.
지금은 상황이 어떤가. 3번째 시리즈까지 나온 현재 삼성이 사실상 전 세계 폴더블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삼성처럼 폴더블폰을 만들지 못하겠다며 포기하거나 아예 삼성 제품과 유사한 폴더블폰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삼성이 실패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 기술력을 높여 새로운 시장을 지속해서 개척한 결과다.
현재 글로벌 OLED TV 패널을 장악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도 숱한 시도 끝에 지금의 기술력을 구축했다. CES2019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았던 ‘OLED TV R’은 4년 이상의 실패와 좌절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
LG디스플레이 OLED.EX [LG디스플레이 제공] |
올해 주요 그룹 신년사의 공통 키워드는 ‘실패’와 ‘도전’이다. 총수와 CEO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기업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20년 간 배터리에 투자하면서 여전히 자금을 잃고 있다. 어마어마한 자본지출(CAPEX) 규모가 두려울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 국민연금 움직임은 이 같은 기업의 도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시민단체·노동계 입김이 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장 기업들은 다중대표소송에 이어 주주대표소송까지 강화되면 경영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주주가치 보호 명분 아래 실패 사례들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온갖 리스크를 감내하며 투자와 연구개발을 키우고 있다. 거듭된 실패도 리스크의 일부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고 기업가치도 올린다. 따라서 실패는 기업의 권리기도 하다. 이런 기업의 권리까지 막는 것이 진정 주주를 위하는 일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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