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 [연합] |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판매자는 언제나 소비자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 제품에 대한 확신이 없는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까지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지인까지 동원해 실패 가능성을 줄인다. 그러나 언제나 성공 가능성은 작다. 제품을 소유하기 전까지 그 품질을 알 수 없어서다. 대표적인 ‘레몬 마켓(lemon market)’, 중고차 시장 이야기다.
이는 가격이 정해진 신차와 달리 상태와 현재 가치가 불분명한 자동차 고유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판매자는 중고차의 사고·교환 이력과 세세한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정보는 소비자에게 온전히 닿지 않는다. 무너진 신뢰 속에서 양질의 매물은 사라지고, 정작 좋은 차마저도 제값에 판매하지 못하는 ‘비대칭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국내 완성차 업계가 내년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지난 2019년 중고차매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만료 이후 약 3년 만이다. 중고차 시장의 완전 개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이 1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관련 시민단체는 결정을 미루는 중소벤처기업부에 대한 감사원 국민감사를 추진 중이다.
중고차는 높은 구매력과 달리 가격 하락 폭이 큰 소비재다. 상품성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지만, 품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성능에 따라 유지비(연비)부터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편의장비 등 가격을 형성하는 요인이 복잡하고 입체적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직영 중고차와 수입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가 호황을 누린 이유다. 기업이 중고차를 사들이고 관리해 상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차를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이 비싼 가격표의 문턱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본격화한 비대면 판매 방식의 효과도 컸다.
중고차 시장 개방 문제가 법정 결정시한 기준으로 1년 7개월이 지난 사실이나 관련 법률인 ‘소상공인 생계형적합업종 특별법’ 등 필수적인 사안은 소비자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핵심은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자 이를 지지하는 댓글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소상공인의 대규모 실업이 초래될 것이란 일각의 목소리에도 여론은 싸늘하다. ‘자업자득’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연식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편협한 무대책이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업계의 목소리와 중첩되는 대목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글로벌 선진국 가운데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국가는 없다”며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분야 진출로 인한 골목상권의 피해를 고려해 상생 협력안을 도출하고자 시간을 끈 것이 형평성 문제로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완성차 업계의 진출 이후 중고차 시장이 고품질 상품이 가득한 ‘피치 마켓(peach market)’으로 변모할지는 미지수다. 수입차 업체와 경쟁 속에서 중고차의 가격 인상 요인과 완성차 업계의 독과점 폭리 등 과제도 많다. 결국 완성차 업체의 행보가 중요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불가피한 중고차 시장에서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 불신의 영역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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